우리들이 믿고있는 거짓말3. - 크리스 터먼
제 2 부 - 우리가 믿고 있는 거짓말들
3. 세속적인 거짓말들
진리는 근본적으로 이 세상과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상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할 만큼 선한 적이 결코 없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죄뢴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
모든 즐거움을 만끽하라!
제일인자가 되도록 하라!
자기 좋을 대로 하라!
“당신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인생은 당신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인생 자체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먹은 과자는 손에 남지 않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진리에 입각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거짓말을 긍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고 까지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고통이나 고생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안정되어 있거나, 지적으로 뛰어나가거나, 지적으로 뛰어나거나. 외모적으로 매력이 풍부하거나 혹은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우리도 한 건만 하면 그럴듯하게 사는 남들과 같이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자 노력한 결과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갖게 되었지만, 그 소유를 완성시켜 주는 단 한 가지, 즉 행복은 얻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짓말의 결과는 자기 소유에 대한 불만족과 바람을 잡으려는 듯한 허탈감입니다. 많은 이들이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사고 방식에 사로잡혀, 그 남의 떡을 얻으려고 열심히 애를 씁니다. 그러나 막상 그 떡을 얻어 낸 사람들은 그들의 기대가 실제 모습보다 너무 컸음을 종종 깨닫습니다.
요점은 간단합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어 더 이상 남의 떡을 갈망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결코 종착역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얼만큼 가졌건 간에 늘 부족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많은 것을 기대하면 할수록 만족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운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거짓말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를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살도록 하면서 남은 인생을 값싸게 만드는, 실현 불가능하고 건전하지 못한 꿈입니다. 그 거짓말에 오염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리 모두는 그 거짓말에 따라 살아갈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업적이 당신의 가치를 나타낸다”
우리는 성과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한 인간의 인격이나 성실성을 한 인간의 겉껍데기와 뒤섞어서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판매원은 물건을 많이 팔아야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가 경쟁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사람들이 인간을 그 최종적 “성과”만큼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자존감의 기초가 돼야겠습니까? 저는 그 기초가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분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수직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업적이나 성공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수평적인 창원”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편 8:5).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시편 139:14).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린도전서 6:2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아주 귀하게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존감의 바른 토대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는 것보다 이 사실대로 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사람의 인격보다 그의 업적을 더 강조하는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건전한 자기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긍정적인 자존감을 얻고자 업적과 권력과 성공과 물질적 소유와 성적 호기심들을 갈망하며 솔로몬의 전철을 밟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결국 발견한 것 은 대개 솔로몬이 발견했던 것과 같은 허탈감뿐이었습니다. 이 거짓말과 그것이 요구하는 피곤한 노력을 피하는 것만이 그와 같은 비참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제외한다면 당신은 과연 누구입니까? 자신의 타고난 가치를 이해하기 위한 굳건한 기초를 찾고자 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만 합니다. 그런 후에 스스로 확고한 대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인생은 편하게 살아야만 한다”
자동 식기 세척기, 파워 핸들, 차고 문 개폐기, 냉난방 장치. 이러한 기기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현대인들은 삶은 더 용이하게 대주기 위해 고안된 기계 장치들에 너무 길들여 있습니다. 그 기계 장치들에 너무 길들여 있습니다. 그 기계 장치들을 소유하자마자 우리는 그것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능한 한 어려움 없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 자체에는 별 잘못이 없는 것 같습니다. 좀더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 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태도가 종종 극단적인 편의주의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생각에 빠지다 보면 결국은 자신을 쾌락 욕구 본능에 내맡기게 됩니다. 이것은 고통은 최소로 줄이고 쾌락은 최대로 늘리려는 근본적인 경향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종종 현실, 즉 삶의 진짜 모습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세상은 성공할수록 불편함이 줄어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인생이란 편한 인생이고, 만일 우리 삶이 편하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에게 이 거짓말을 너무 큰 소리로 말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을 몹시도 믿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거짓말이 진실임을 확신하면서 늘 자연스럽게 동의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편한 인생”이라는 거짓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생의 쓴맛이 눈앞에 다가오면 다른 이들보다 더 쉽게 좌절합니다. 진정한 그리스 도인이라면 걱정 없는 “꽃밭”과 같은 삶을 살기 마련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일 그런 삶을 살지 못하면 그들의 신앙이 진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특별한 위로를 약속하시는 한편, 그들의 삶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해 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우리는 삶을 쉽게 살라는 거짓말 때문에 위로의 말씀만 듣고 경고의 말씀은 듣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기독교가 제공해 주는 멋진 약속들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론 8:28)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꽃밭”과 같은 새빨간 거짓말에 대항하려면 이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불행이나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좋지 않은 상황을 통해서도 선을 이룰 수 있지만 그 결과적 선을 깨달을 수 있으려면 인내와 수고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은 공평해야만 한다”
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거짓말에서 파생된 이 공평한 삶에 대한 거짓말 역시 도처에 만연해 있고, 그 영향력 또한 막강합니다. 그것은 욕심에 이끌린 생각이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생각입니다. 길을 가던 젊은이가 음주 운전자의 차에 치어 숨지기도 합니다. 자기보다 실력이 못한 사람이 취직 시험에 합격하기도 합니다. 선두 주자가 바로 뒤에 오는 주자의 발에 걸려 넘어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우리는 대뜸 “그것은 공평하지 않아”라는 대꾸부터 합니다. 마치 그렇게 말하면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솔로몬은 인생이 얼마나 공평하지 않은지를 이해하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인도 있는 것이라” (전 8:14).
정말이지 공평하지 않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엄청난 부자가 된 마약 밀매상들, 교묘히 법망을 피하는 살인자들, 바른말 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독재 정부 등, 이 모든 것들이 전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인생이 공평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생이 항상 불공평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큰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거룩한 성품은 종종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정정당당히 행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 기대가 바로 문제입니다. 이 거짓말에 속아서 수십 년 동안 분노를 품어 온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입니다. 타당한 사실에 바로 서기 위해 현재에 균형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두 번의 대가(한 번은 과거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또 한 번은 그 과거로 다시 현재의 삶을 침몰케 할 때)를 치르지 않기 위해 불공평함을 적절히 다루는 일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기다리지 말라”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거짓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행하라는 거짓말도 이와 같은 맥락의 거짓말입니다. 그 둘은 같은 충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데 왜 망설이는가? 왜 “지금 당장”구입하지 않는가? 신용카드를 원하는 대로 쓰라,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거든 참지 말고 맞서 싸우라.
기다리지 말라는 거짓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신과 의사가 자신들의 삶을 고통에서 즉시 구해 줄 마술적인 말들을 해줄 것으로 생각하고서 도움을 구하러 옵니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 길고도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이들은 그 후로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를 통해 즉시 변화를 받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더 오래 살고 있지만, 오히려 더 바빠진 느낌이 듭니다.
시간이 길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짧아진 것 같습니다. 아무도 기다리는 것을 멋진 인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1달러를 벌면 단지 2센트만을 저축한다고 합니다(전례 없이 낮은 저축률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평균 한 사람이 자신이 번 돈의 단지 1/50만을 저축이라고 하는 “후일의 만족”을 위한 장치에 맡긴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의 중요성이 성경의 거의 모든 장엔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천국에서 영원한 상급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서 잠시 쾌락을 보류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런 견해가 확실히 더 기분 좋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악한 쪽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세 가지 중요한 근거들도 있습니다.
첫째 / 인간 상호간의 관계
인간 관계라는 차원에서 볼 때 인류 역사는 자기 희생, 사랑, 평화보다는 오히려 욕심, 증오, 갈등 그리고 살인으로 점철된 경향을 보입니다. 숱한 종교 전쟁들과 스페인이 벌인 이단자에 대한 종교 재판(1478 - 1834)은 선을 가장한 악의 전형적인 사례들입니다. 금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대량 학살과 핵전쟁의 위협은 이런 견해를 지지하기에 충분합니다.
둘째 / 인간의 내면
우리 자신을 살펴볼 때 인간성은 자기 성장만큼이나 자기 파괴의 경향을 보이는 듯합니다. 육체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도 않습니다. 정서적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혼란을 겪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만큼 심각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의 전반적인 사실들을 잘못된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영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며, 그렇다고 해서 상당한 일관성이나 깊이를 가지고 인생의 의미를 추구해 나가지도 않습니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나 타당한 명분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 성경의 증거
나는 인간이 죄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타락했으며, 그 성품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놓여지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 우리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5:19 - 21).
사람은 완전히 선하다가 혹은 전적으로 부패했다거나 하는 철저한 신념들은 똑같이 파괴적입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온전한 접근을 하는 것, 즉 사람들이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으며, 악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저는 환자들에게 제시합니다. 내게는 그것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균형 잡힌 접근 방법입니다.
거짓말을 물리치는 방법
이제까지 당신이 일기장에 ABC 접근 방식으로 사건들을 적어 왔다면 이제는 그 거짓말들을 수정할 때입니다. 거짓말들을 물리치기 위해 해야 할 다음 단계에는 친숙해진 ABC 접근 방식을 확장함으로써 그 거짓말들에 도전하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두 단계, 즉 D와 E단계를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바대로 A는 당신의 감정에 방아쇠를 당긴 어떤 상황을 상징합니다. B는 당신이 그 사건을 해석할 방편이 되는 거짓말이나 거짓말과 진실이 혼합된 “자신과의 대화”였습니다. C는 당신의 감정적인 반응을 상징합니다. 이제 추가될 새로운 단계들은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D-이것은 진실한 대화입니다. 의식적으로 당신은 이런 종류의 자신과의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당신이 B에서 자신에게 했던 거짓말을 반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E-이것은 A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좀더 적절한 감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A-발생한 사건: 당신이 슈퍼에서 계산대에 줄을 서 있는데 앞에 있는 한 여자가 시간을 오래 끌고 있어서 당신은 조바심이 나고 실망하고 화가 났습니다. 당신이 B에서 당신 자신에게 했던 거짓말들은 이런 것들이지요.
“이 줄이 빨리빨리 줄지 않으면 나는 기분이 나빠.”
“저 여자는 저런 행동을 하면 안 돼.”
“저 여자가 시간을 저렇게 잡아먹고 있으니 내가 화가 안 날수가 없지.”
이러한 거짓말들은 진실에 부딪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D-진실한 대화: 그러한 거짓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하면 됩니다.
“나는 일이 내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
“사람들은 별 수 없는 인간일 뿐이야. 사람들은 종종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화를 잔뜩 내 봤자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야.”
“나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여자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
그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머리 속에서 당신 자신에게 이런 사실들을 되풀이해서 말해보고 그로 인해 감정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사건이 얼마나 진정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십시오.
E-올바른 감정적 반응: 아마도 좀더 침착한 반응일 것입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강렬한 감정을 촉발시키고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일어난 상황에 대해 진실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함으로써 더욱 건전한 수준으로 당신을 진정시킬 수 이을 것입니다.
E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ABC 상황에서 D와 E단계를 추가해 보는 것이 주는 도전은 진실을 취하여 그것을 거짓말에 대항할 무기로 삼는 것입니다. 처음 얼마 동안 노력을 했으나 당신의 태도나 감정에 어떤 즉각적인 발전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거짓말에 아주 오랫동안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변화시키기란 어렵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믿는 거짓말을 모국어라고 간주하고, 그에 반해 진실은 종종 발음하기도 어렵고 잘 외워지지도 않는 외국어라고 생각해 봅시다. 충분한 노력과 연습을 해야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진실을 유창하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인내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방법입니다. 진실은 겉으로 요란을 떨지는 않지만, 만일 당신이 시간을 들이고 인내한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정서적인 균형과 안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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