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우리들이 믿고있는 거짓말5. - 크리스 터먼

문성식 2011. 12. 20. 05:00

 

 

우리들이 믿고있는 거짓말5. - 크리스 터먼

 

제 2 부 - 우리가 믿고 있는 거짓말들

5. 사실을 왜곡시키는 거짓말들

 

 

세상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수록 우리 마음은 거짓과 오해와 착각들로 어리둥절해지고, 또한 마땅히 행할 바를 결정하거니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들도 저하되기 마련이다.
스코트 펙(Scott Peck)

당신이 대수롭지도 않은 사소한 일을 부풀려서 이야기했던 때가 최근 언제였습니까?
만사가 너무 주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항상”이나 “절대로”라는 단어들을 얼마나 자주 사용합니까?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지는 않습니까?
솔직하게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위에 열거한 질문들에 대해 어떤 대답이 나오겠습니까?
위에 열거한 각 질문은 사실의 왜곡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종종 실상을 왜곡합니다. 그러한 습관이 우리가 믿는 대부분의 거짓말들에 대한 토대가 됩니다. 왜곡된 생각들은 매우 관련이 있으며, 또한 유사한 거짓 생각들을 자꾸만 배양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왜곡된 생각들과 부채질하는 거짓말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과장 - 작은 일을 침소봉대하여 말하는 것
주관화 -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양극화 - 흑백논리로 보는 것
선택적 추출법 - 나무만 보고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
지나친 일반화 -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는 투
감정적인 추론 -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나는 위의 열거한 대로 여러 왜곡된 생각들을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사실적인 바탕에서 일어난 여러 일상적 사건들과 대화들을 곡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저마다 그런 경향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왜곡된 생각들을 너무 당연히 여겨 마치 그것들이 정상적인 생각의 일부인 것처럼 만들어 버린 데는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각각의 왜곡된 생각들이 우리로 하여금 거짓말을 믿도록 부추기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잘못된 부분들이 들추어내야 합니다. 자 이제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작은 일을 침소봉대하는 것
“과장”이라고 하는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어떤 사건을 실제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크게 확대해서 보게 됩니다. 사건을 실제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비약함으로써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과음을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확대시키려는 경향은 사실을 왜곡하는 아주 흔한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극히 미미한 가치밖에 없는 사건들을 매우 큰 값어치가 있는 사건인 것처럼 여겨 쓸데없이 감정을 낭비하곤 합니다(이러한 과장의 이면에는 또한 어떤 사건을 실제보다도 훨씬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경향도 있는데 이것 또한 똑같이 건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감정의 낭비는 실제 현실에 걸맞지 않은 것입니다. 사건을 과장하면 할수록 감정적인 낭비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이런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사건을 자신과 지나치게 연결 지어 평가해 버립니다.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평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거나 당신이 말하고 있는데 불쑥 끼여들거나 약속을 잊어버리거나 하면 우리는 종종 그 행동이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멸시하려는 고의적인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부들에게도 이렇게 사건을 주관화시키려는 경향이 매우 짙습니다. 남편이 더러운 양말을 방 한가운데 벗어 놓는다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거나 대화를 안 하려고 하면 아내는 그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또 아내가 늘 밤마다 모임들에 참석한다거나 남편이 심각하게 말하는데 귀담아 듣지 않는다거나 남편이 아주 좋아하는 향수를 아내가 사용하지 않을 때면 남편도 그런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자의 행동에 무관심하게 반응해야 한다거나 혹은 배우자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것은 상대방인 나를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어떤 사건을 자신의 입장에서 주관화시켜 버리면 별것도 아닌 일에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남게 되고 도리어 쓸데없는 분노와 분개와 쓰라린 감정만이 쌓이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억울한 대우를 받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그 일이 내 가치를 100% 반영하는 사건인 것처럼 여길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를 하나 인용해 볼까요?
“20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한다. 40세가 되면 우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60세가 되면 우리는 남들이 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이 고속도로에서 끼어 들기를 한다거나 전화를 해 주기로 하고 안 한다거나 신문을 보고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펼쳐 둔다거나 하는 일이 다시 생기면, 일반적으로 타인의 행동은 당신보다도 행위자 자신에 대해 시사해 주는 바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이 그런 사건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하느냐는 것은 당신의 실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흑백논리로 보는 것
양극화된 사고가 좀더 심각하게 고착화된 유형 중 하나는 “속물/성인”식 사고입니다. 나를 찾는 환자들 중에는 자신을 지독한 속물로 보거나 완전한 성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고, 때로는 사실과 관련해서 최근에 왔다갔다 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결코 속물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결코 성인처럼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말 역시 거짓말일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 대부분은 때때로 두 가지 모습을 다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나 남들에게서 단지 극단적인 면만을 본다면 그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처사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속물” 혹은 “성인”과 같은 꼬리표를 붙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나는 속물이다”라는 생각이 내적으로 고착되면 낮은 자존감과 우울증이 나타나고 “나는 성인이다”라는 생각은 교만과 “너보다 내가 낫다”라는 우월감을 갖게 합니다. 자신처럼 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독단 뒤에 숨어 있는 교만을 깨닫게 하는 일은 대게 엄청나게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교만은 당신의 약점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죄를 저지를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합니다.
자신을 속물로 여기든지 성인으로 여기든지 간에 두 가지 거짓말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특별한 장점이나 혹은 못된 점에 대해 잘못되고 왜곡된 신념을 갖게 하는데, 그 어느 것도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양극화된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인생의 모든 사건들을 흑백논리에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그 사건들이 흑백논리에 맞을 때에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일들이 회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게 되거나 감정의 상처를 받게 되고 맙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어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흰 것은 흰 것으로 보고 검은 것은 검은 것으로 보고, 그 사이에 있는 회색 지대는 그때마다 알맞은 명암의 회색으로 해석할 만큼 충분히 “명암의 정도‘에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훌륭한 판단력을 사용하여, 상황들이 갖는 ’명암의 정도”를 좀더 정확하게 식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만 보고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
양극화라는 거짓말에서 파생한 또다른 거짓말은 “선택적 추출법”이라고 하는 거짓말로서 나무만 보고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고의 왜곡 현상입니다. 당신은 다른 모든 문제들은 제쳐놓고 사소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 아주 어리석은 말을 한마디 해 놓고는 집에 돌아와서 밤새도록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걱정해 본 적은 없습니까?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 중에는 제대로 잘 된 일보다는 자신과 관련된 잘못된 일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 때문에 병을 얻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결핍된 것”만 주목하는 안경을 끼고 있는 듯합니다. 잘못된 일에만 주목할 때 우울증은 어느새 우리 곁으로 가까이 오게 됩니다.

이렇게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들만 보는 사고 방식은 우리 자신의 인격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성경의 가르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엄청나게 낭비하게 만듭니다.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는 투
래리는 체중 문제 때문에 상담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먹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분이 안 좋으면 마구 먹어댔는데, 먹고 나서는 절망감을 느끼고 그 절망감 때문에 또 먹고 하다 보니 결국 비만증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일종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런 습관을 「결코」 뿌리 뽑을 수가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항상」 뚱뚱한 상태로 살아야 될 거예요.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라고 그는 자포자기하며 말했습니다.
그가 한 말에서 두 개의 핵심 단어를 찾으셨습니까? 바로 “결코”라는 말고 “항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두 단어가 바로 “지나친 일반화”라고 하는 일종의 왜곡된 사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왜곡된 사고에 걸려들게 되면, 시험에 떨어졌다거나 부부 싸움을 했다거나 하는 사건이나 행동을 겪을 경우 앞으로도 똑같이 그런 일이 불가피하게 반복될 것이라는 거짓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 생각 속에는 역사는 항상 반복된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결혼한 부부들 사이에서도 “지나친 일반화”라는 사고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도 결코 원만하지 못할 거예요”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서로를 비난하고 시시한 일을 가지고 골머리를 앓는 과거와 똑같은 행동 양식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그러한 행동이 실제로 그들의 부정적인 확신을 더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왜곡된 예측이 들어맞게 되면 그 부부들은, “거봐요. 나는 우리가 결코 원만하게 살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요!”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 부부들이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일종의 투쟁과도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행복해지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황을 지나치게 일반화시키는 자신의 사고 방식과 불행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따라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것
감정적 추론이란 “내가 그것을 사실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이다”라는 식의 왜곡된 사고입니다. 대개, 우리는 이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거짓말들 속에 숨어서 우리로 하여금 마치 그 거짓말들 이 사실인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감정적인 추론은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왜곡시킵니다. 그러나 감정은 어디까지나 감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감정이란 매우 변화가 심하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종종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고 방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감정들이 종종 “사실”을 잘못 평가하기도 한다는 것을 당신도 아마 알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문화는 감정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고 싶다고 느끼면 그렇게 하라.”

한 예로 이런 말이 우리의 감정을 의사결정의 궁극적인 기준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감정에 따라서만 처신한다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감정대로 행동한다면 나는 눈으로 봐서 맘에 드는 것은 모두 사고, 고속도로에서 내 앞에 끼여드는 사람들에겐 총을 쏴 대고서는 바하마(미국 플로리다 반도 남동쪽에 있는 군도, 독립국 - 편집자 주)로 도주를 할지도 모릅니다. 감정에 기초한 인생은 고작해야 혼돈뿐입니다.

그렇다고 감정을 무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감정은 생활에 많은 풍요로움과 양념을 제공하고, 감정 역시 의사결정의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감정이 유일한 고려 사항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합니까? 그 결정들이 그 순간 당신의 감정에 지배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사실과 감정이 제대로 조화된 결정을 내립니까? 감정에 기초한 결정들이 사실에 입각한 결전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내 생각으로는 어떤 일이 중요하든지 사소하든지 간에 당신의 머리와 당신의 가슴 둘 다에 기초한 의사결정이 훨씬 더 안전하리라고 봅니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상담할 때면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면밀히 살핍니다. 두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들이 갈등을 적절히 해결하고 있는가? 그들이 많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가? 그들이 결혼함으로써 영적인 삶이 더 강건해질 것인가? 만일 그들이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은 원치 않는다면 이런관찰을 통해 얻어지는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사실들이 그들의 감정을 인도하는 안내자로 삼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감정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도움을 얻기가 훨씬 더 힘이 듭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감정은 단순히 감정으로 끝나도록 해야 합니다. 감정을 불변의 사실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당신의 현재 모습과 미래 모습을 사실에 입각해서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자아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을 고려하는 동안 감정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이 거짓말들의 감옥의 갇혀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물리치는 방법
첫번째 방법 / 인식 가능한 왜곡된 사고 방식 규명법
예를 들어 당신이 더 크고 긍정적인 상황들을 계속해서 부정적인 사실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제는 썩어 가는 몇몇 나무들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숲 전체를 보라는 내용과 관련된 자신과의 대화를 써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방법 / 정반대 사고
이 방법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거짓말들은 사실과 정반대 되는 경우가 자주 있으므로 거짓말과 정반대 되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의외로 쉽게 실제적 사실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정반대 사고가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깝습니다. 정반대 사고는 인생의 여러 사건을 좀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사고를 재조정해 줍니다. 우리가 믿는 거짓말과 정반대로 생각을 해도 진실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 사소한 일인 줄 알았던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일지라도 정반대로 사고하는 습관을 사건을 제대로 된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적절히 반응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갖게 되는 셈입니다. 즉, 거짓말에 지배당하지 않고 당신이 직접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