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인가? 쇼인가? (A.W.토저) -3부
이 글은 A.W. 토저의 저서 "예배인가? 쇼인가?"에서 발췌한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
[3부] 사이비 예배를 중단하라
★ 11장 쇼비지니스 연예오락이 예배를 타락시키고 있다
연예오락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실패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거의 성도들이 소중히 여겼던 하나님과의 관계와
경건의 훈련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이다.
깊이 없는 사랑, 속 빈 신앙관, 재미에 치우치는 신앙 집회,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
종교적 형식에 의지하려는 태도, 동호회 모임과 같은 친교 활동, 세상적 판촉 활동의 도입,
인간의 열정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오해. 결국 이런 비극적 결과들을 낳고 말았다.
목회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 사는 목회자와 교회는 질적 가치를 희생해서라도 양적 팽창을 추구하고,
정상적인 성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과장을 통해서라도 얻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린다.
연예오락과 흥밋거리에 따라서 운영되는 교회는 신약성경이 보여주는 교회의 참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주일마다 사이비 기독교의 자극으로 짜릿함을 느껴보려는 '세례받은 속물 집단'은
참신자들의 무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말로는 성경을 믿는다고 주장해도 그들은 참그리스도인들의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
종교적 쇼를 중단하라
쾌활하고 자신감에 차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는 그다지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들은 경축의 종을 울리는 일을 좋아하고 마치 게임 쇼의 진행자처럼 활력이 넘친다.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만 세상의 나이트클럽에 마음 놓고 갈 수 없어서
교회를 나이트클럽처럼 활용하는 것뿐이다.
'종교적 쇼'에는 악취가 난다.
종교적 쇼의 진행자들이 성소로 들어갈 때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이상한 불을 드리는 위험스러운 짓을 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종교적 쇼는 신성모독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그것은 기도와 성령님의 감동을 대신하려는 가련한 시도에 불과하다.
참기쁨이 없는 곳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그 많은 카우벨(무용 음악에 쓰이는 타악기)와
연주용 톱과 쇼와 영화와 흥미로운 도구들을 사용하고,
사람들을 부추겨 축하해주고, 분위기를 북돋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리즘을 경계하라
아마추어들은 훈련받지 못했고 준비되지 않았으며
영적이지 않은 야심에 찬 수다쟁이가 신앙의 길로 돌아선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이다.
참예배자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종교 프로젝트에 빠지지 않는다.
예배를 드리려는 자는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가 언제나 즐거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필요에 따라서 자신의 삶의 어떤 것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배는 연예오락이 아니다
거룩함 가운데 주 예수님께 예배하는 것은 방해할 수도 있는,
추하고 보기 흉하고 불경스러운 것들이 우리 마음에서 제거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교회 안의 연예오락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 위에 우뚝 서야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이다.
결국 그들의 견해도 십자가 아래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얄팍하고 세상적인 지도자들은 심지어 성소 내에서조차 연예오락을 좋아하는
기독교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십자가를 왜곡시킨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영적인 재앙을 불러들이는 일이며,
어린양이 사자처럼 분노하시도록 만드는 일이다.
교회는 단순한 종교 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공연자들이 공연하고 관객이 돈을 지불하는 종교 극장이 아니다.
교회는 구속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하나님에게 인도함을 받아 그리스도께 나아온 그들은
그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이들이다.
교회 안의 이단
종교적 연예오락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너무나 타락시켰기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은 그것이 '이단'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전 세계 수백만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적 연예오락에 몰두해 있다.
세상 프로그램들
세상의 프로그램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 바쳐지고 있으며
신앙적 가치는 도처에서 홀대받고 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의 어린애 같은 입술에 음식을 떠먹여주시기 원한다.
이런 사람은 성경이 우리에게 온전함으로 나아가라고 촉구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죄악된 쾌락들
미국의 기독교 소설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성(性)을 이용한다.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만일 낭만과 기독교를 결합시켜서 한편의 이야기를 만들면
순수 기독교 소설을 읽지 않을 보통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읽고
복음에 접하게 될 것이라는 얄팍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육욕적 충동과 성령님의 깊고 감미로운 감동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성애, 즉 에로스가 영광의 주님을 섬기는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죄가 우리 인간에게 가져다준 가장 비극적인 결과 중 하나는
우리의 올바른 감정이 질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비성경적인 수단들
교회에서도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적인 위치에서 일한다.
그러다보니 성령님의 은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인식되거나 사용되지 못한다.
우리의 교회는 성령님이 비추어주시는 빛으로 밝혀져야 한다.
최근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 얄팍한 비성경적 수법들은 성령님을 슬프게 만든다.
우리는 빛을 약화시켰고, 성전 진설병의 떡을 말라버리게 했다.
분향단에서는 향기가 사라졌다.
많은 교회가 예배드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예배가 밀려난 자리에는 '프로그램'이라는 이상하고 낯선 것이 들어와 있다.
본래 무대와 관련하여 사용되던 '프로그램'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지혜로 예배에 적용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이제는 아예 예배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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