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자가 사역하는 교회 정신4.
박영철교수
전신자 제사장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간증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복음을 위한 사역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삶의 목적이 이 사명과 직결될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이 변할 수 밖에 없다. 복음 전파를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든 삶을 그 사명완수에 연결시켜 새로운 삶에 대한 해석과 재조정을 시도한다. 만일 이러한 삶에 대한 재조정이 결여된다면 그 사람의 헌신이 아무리 엄청난 말로 표현된다 할지라도 그 헌신의 진실성은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적어도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지상명령으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목포의 한 자매는 자신이 복음의 제사장이라는 말을 듣고 난 뒤 제사장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기를 진지하게 기도했다. 그녀는 가게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꼈기에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 가지 지혜를 주셨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즉각 행동에 옮겼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가게를 이용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고객관리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카드들을 한 장씩 들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서 복음을 들을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실 것을 기도했다.
고객들이 가게를 들를 때마다 자신의 간증을 들려주는 등 복음을 제시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펼쳐갔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사람들의 변화 또는 준비되는 상태별로 200여장의 카드를 A급, B급, C급 등 세 부류로 분류했다. A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복음을 전해도 무리 없이, 또는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B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점차 복음에 관심을 가지는 마음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었고, C굽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아직 복음에 관하여는 전혀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C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B급으로 변화되도록 기도했으며, B급에 있는 사람들이 A급으로 변화되도록 기도했다. 그녀는 고객관리카드를 만들기 시작한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200여장의 카드를 가지고 매일 기도할 수 있었으며 20여명의 결신자를 얻을 수 있었다.
대전의 한 대학 교수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학 교수로 삼아주신 이유를 대학생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하도록 하시기 위해서라고 믿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반을 조직하고 학생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과 함께 복음 전하는 일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그는 대덕 연구단지에 자신의 집을 지을 때 지하실은 캠퍼스에서 함께 성경을 공부하며 복음을 전하는 학생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찾아와 기도하며 교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그리고 1층은 거실과 식당을 분리시키지 않고 넓게 트인 공간으로 만들어 교인들이나 학생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함께 식사하며 교제할 수 있도록 했으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언제든지 유할 수 있는 게스트 룸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이 사용하는 전용 공간은 2층으로 제한한 집을 건축한 것이다. 복음의 제사장임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와 같이 집을 지어도 복음을 위해 소용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집을 짓는 간증을 보인다.
복음의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이나 거주지 역시 제사장직분을 수행하는 일을 염두에 두고 결정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주의 오클랜드에 있는 한인 중심으로 구성된 한 침례교회가 보스톤에 지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온 교회가 개척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을 때 지교회로 개척 나가게 될 담임목사 부부가 그 동안 자신들이 양육하고 훈련시킨 20여명의 교인들에게 함께 보스톤으로 개척하러 갈 것을 권고했다. 미국 서부해안으로부터 정반대인 동부해안 도시인 보스톤으로 이사를 가서 함께 교회를 개척하자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미국 대륙을 건너가자는 제안이었다. 그들은 진지하게 그 제안을 놓고 기도했으며 결국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교회를 개척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목적을 위해 수천 마일에 해당하는 이사 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기 위해 준비하던 형제 부부도 있었는데 그들은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께서 자신들을 교회개척을 위해 부르시는 것을 믿고 변호사 사무실을 포기한 채 미국의 동부로 이사하는 결단을 내린 형제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교회개척은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나, 특별히 개척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잘 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제사장이라면 교회를 개척하는 일 역시 목사나 선교사들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이 분명하다. 자신의 직업이나 거주지조차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조정하는 것이 마땅한 그리스도인의 라프스타일(lifestyle)인 것이다.
필자는 미국 유학 시절에 한 달간 유대인 회당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한 달간 유대인 회당에 다니면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을 참관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유대인 회당에서의 한 달간의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곳을 방문한 첫날 회당에서 랍비로부터 그 회당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나서 질문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필자는 약간은 엉성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금부터 한 달간 이 유대인 회당에 출입하게 되면 유대인들의 눈에는 필자가 명백한 이방인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얕보거나 우월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랍비, 당신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은 랍비는 한참동안 필자를 쳐다보더니 유감스러운 마음을 가득 담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답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우리 유대인을 너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요. 우리 유대인들은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 같은 이방인이 자신의 발로 우리 유대인 회당에 들어온 것을 우리 유대인 모두는 당신을 환영하는 자세를 가지고 대할 것입니다.”
이러한 답을 들었을 때 필자는 매우 놀랐으며 한편으로는 무언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구약과 신약성서시대의 유대인들이 잘 못된 선민우월사상(選民優越思想)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기신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저버렸었으나 지난 2천년을 나라 없이 방랑하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본연의 신분인 제사장 나라의 위치를 다시 찾았다는 사실을 들을 때 오히려 오늘날 참 이스라엘이며 영적 이스라엘로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2천년전의 유대인들과 흡사한 모습을 보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그 랍비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요원(agent of Kingdom of God)들로서의 신분의식에 투철할 뿐 아니라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은 모두가 메시아 왕국 건설요원으로서의 사명감으로 강력한 동지애로 똘똘 뭉쳐있다고 확신 있게 덧붙였다. 그는 계속해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이 감기에 걸리면 택사스(필자가 유학하면서 한 달간 다녀본 회당이 택사스에 있었다)에 있는 유대인들이 재치기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자신이 메시아 왕국 건설 요원이라는 신분의식에 충일한 상태로 전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반드시 영적 이스라엘로서 하나님 나라의 요원이라는 본연의 신분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신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인류구속계획을 완성시키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독특하게 구분되는 구분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화목을 이루게 하는 거룩한 사명이야말로 하나님 백성을 하나님 백성 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이러한 신분의식과 사명의식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스타일을 독특하게 만들며 세상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삶의 과정을 드러내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이다. 그들은 마땅히 교회공동체 안에서 힘을 얻고, 그 속에서 다른 요원들의 삶을 통하여 도전을 받으며, 나아가 그러한 삶을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신 이유와 목적이기도 하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로지 복음의 제사장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게 위해 헌신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살아있는 간증은 그 공동체 속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도 소중한 모델이 되며 격려가 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속에서 이러한 간증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그리고 신선하게 보고 듣는 기회가 있는가? 교회가 공동체로서 그 구성원 상호간의 유기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을 때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존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의 교회는 무언가를 크게 결여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셀 교회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로서의 유기적 관계인 교회 본질을 회복하고 실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람이 공동체의 유기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으려면 구성원 상호간에 관계를 경험할 수 있을 만큼 그 숫자가 적어야 한다. 수 백, 수 천명의 사람들이 서로간에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 구성원들이 보다 적은 숫자로 구성된 소그룹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직면하게된다. 이것은 단순한 추론에 의해 주장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직접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제자들의 숫자를 열 두 명으로 제한시키셨다. 그런가 하면 초대교회들은 모두가 가정에서 모였으며 그러한 소그룹을 통하여 복음을 강력히 전파하는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제사장이며 사역자라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셀 그룹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도전이 되며 모델이 되어 서로를 부추켜 세우는 일이 가능하다. 인격적인 신자들간의 관계성이야말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는 중요한 영적인 장소이다. 이러한 면에서 셀 교회는 모든 구성원들로 하여금 제사장직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님의 방법이며 대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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