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자가 사역하는 교회 정신2.
박영철교수
모든 교인이 사역자라는 개념의 의미
"모든 교인이 사역자"라는 말과 혼용 또는 병용되는 것이 "평신도 사역자" 또는 "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 "평신도 운동," "전신자 사역"등과 같은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용어들이 사용될 때 그 의미를 살펴보면 약간씩 다르거나 그 근본 전제를 달리하는 것들을 보게된다. 우선적으로 구분해야 할 개념은 평신도 운동 또는 평신도 사역이다. 평신도 운동에 관한 관심이 한국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말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시기로부터 불러일으켜진 평신도 개념과 평신도 운동의 방향은 성직자들(목회자들)과의 대립 관계 속에서 설정됨으로써 적지 않은 부정적 성향을 띠기도 했다. 비록 이러한 성향이 오늘까지 확산되거나 지속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개념이 잔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 듯 싶다. 모든 교인이 사역자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점에서도 목회자와 평신도의 대립구도(이 경우 교회 속에서의 주도권 다툼과 같은 차원에서의 대립) 속에서 이해되어서는 아니 되며 오히려 사역의 책임과 의무라는 면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또 다른 관련된 개념으로는 "평신도가 사역하는 교회"를 들 수 있다. 1979-80년에 걸쳐 7,000명의 교회를 운영하며 유지하는데 필요로 하는 평신도 사역자가 몇 명인지를 과학적으로 연구 조사한 미국의 헐리우드(Hollywood) 제일장로교회의 헐버슨(Hulverson)박사는 그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평신도 사역자가 370명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연구결과를 받아들일 경우 전체 교인들 중 불과 1/20이라는 작은 숫자만이 일해도 7,000명 교회는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말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교인은 구경꾼 또는 방관자로 남아 있어도 좋다는 공식적 허락과 사역 면제를 선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모든 교인이 사역자"이며 "모든 교인이 사역하는 교회"란 문자 그대로 교인의 숫자가 얼마이든 한 사람도 사역으로부터 면제해주거나 제외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전신자(모든 신자)가 사역하는 교회란 이러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의 영적 성장 정도가 어떠하든지 그 수준에 적합한 복음을 위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그 어느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든 교인이 사역한다는 말이다.
지상명령과 전교인 사역자 실현, 그리고 셀 교회
모든 세대의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진군 명령과 같은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교회는 지난 2000년 동안 계속 사역해 오고 있다. 2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이 최대의 명령을 수행해 온 교회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가설적으로 교회가 이 일을 위한 수많은 경험을 해 온 결과 다양한 노하우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지금쯤이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은 어느 정도 완성되었어야 마땅할 충분한 시간이 지나갔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를 주님의 충성스러운 제자로 양육하여 주님의 복음을 위한 또 다른 사역자가 되게 하는 일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과 경험의 집적(集積)은 오늘날에 이르러는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세계 복음화의 완성 단계나 마무리 단계에서 그 감격스런 결과를 누릴 수 있게 해야 마땅할 것인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한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왜,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한 때는 전 세계를 통치하던 로마제국이나 기독교화 되었다는 서구 유럽이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계 인구의 2/3 이상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순종하고 있다고 말하는 지상명령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를 심각히 재고하게 만든다.
기독교의 모든 사역은 결과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께로부터 부여받은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지극히 당연하고도 명백한 관심사요 고민 거리는 여하히 자신들이 속한 교회를 통하여 모든 족속을 제자로 만들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그 말씀대로 살도록 도울 것인가에 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 수행해야 할 지상명령의 내용을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지상명령이 제시하는 목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키 위한 전략으로는 “가는 일”(going)과 침례를 “주는 일”(baptizing)과 “가르치는 일”(teaching)과 그리고 “지키게 하는 일”(observing)이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전략들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가에 관한 반성을 토대로 새로운 도전이 시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가는 일”이 있어서 교회는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랄프 네이버 2세(Ralph Neighbour, Jr.)는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의 교회 구조 자체가 "오라는 구조"(come structure)이지 “가는 구조”(go structure)가 아님을 지적한 바 있다. 즉 교회가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고 사람들을 교회로 오도록 요청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을 뿐 잃어버려진 영혼들을 찾아가는 구조가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오늘날의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생활 패턴은 더 이상 교회로 오라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초청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교회가 이러한 복음전도 대상자들을 향한 접촉에 있어서 시대착오적인 타성을 버리고 지상명령의 전략에로 환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전략으로서의 “침례를 주는 일”(baptizing)은 어떠한가? 침례가 가지는 의미가 자아 중심의 죄악 된 삶에 대하여는 완전히 죽은 자로서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하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침례 의식이 한낱 의식으로 전락하는 것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다는 말이 단순히 죄 용서받고 구원 얻었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자신의 삶의 목적과 동기와 이유가 더 이상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바뀌어졌음을 의미하는 엄숙한 신앙고백 행위가 되어야 한다.
가르쳐(teaching) 지키게 하는 일(observing)은 어떠한가? “가르치는 일”은 그런대로 수행한다 할지라도 배운 내용대로 살아가도록 돕는 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로 비중을 싣고 행하고 있는가? 신앙과 생활의 괴리 현상이 한국 기독교인들의 중대한 병폐임을 지적 받아 온지 오래이건만 그러한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자신들이 배운 바를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반문해 본다면 그러한 문제가 상존 하는 것이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을 듯 싶다. 지상명령이 수행되는 일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지연되거나 비효율적이어서는 아니 된다. 모든 족속, 곧 어떠한 사람이든지 예외 없이 충성스러운 제자로 성장하여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돌봄을 받아야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지상명령은 교회를 행한 주님의 진군 명령과 같은 것이다. 혹자는 이 명령을 기독교 사역의 대장정(Magna Carta)이라고도 표현한다.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사역의 근본이요, 과정이요, 그리고 목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교회의 모든 사역과 활동들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이 명령을 수행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신자 제사장직 교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전략이 곧 지상명령의 수행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모든 교인들을 충성스러운 제자로 성장토록 훈련시키고 개발시키는 일의 결국은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는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제자훈련의 바탕에 근거하여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복음 사역자의 심정과 태도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상명령 수행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새로운 각성과 시도는 지난 반 세기 동안 각 곳에서 시도되어 왔다. 특히 1930년대에 태동하여 1950년대에 이르러 세계 각처에서 진행된 현대제자훈련운동, 전신자 제사장직 교리의 재발견으로 인한 평신도 각성 운동, 복음의 새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담을 것을 주장하는 새 가죽부대 운동(New Wineskin Movement), 그리고 지역 교회라는 영적 생활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은 셀 교회라는 모델을 낳고 그러한 교회들이 지난 20여 년간 전세계 각처에서 성장해 오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교인을 복음의 사역자로 개발시키는 전략으로서 셀 그룹 교회의 성서적, 신학적 배경과 실제적인 면들을 보다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우선 전신자 제사장직 교리를 검토함으로써 전신자 사역자화라는 목회의 목표에 관한 신학적, 교리적 바탕을 확고히 한 뒤 셀 그룹 교회의 실질적인 면들을 개념, 구조, 기능 등을 중심으로 검토한다. 그 다음 셀 그룹 교회로의 전환을 위한 전략들을 고찰하며 마지막으로 전신자 사역 개발 목회를 위한 선결 조건 등을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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