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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암릉산행 | 르포 | 군위 아미산] 3분만 땀 흘리면 작은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문성식 2011. 9. 25. 10:37
[가을 암릉산행 | 르포 | 군위 아미산] 3분만 땀 흘리면 작은 공룡능선이 펼쳐진다
아미산~방가산 종주 10.2km

지도에 없는 길이었다. 새로 생긴 군위댐 탓에 지도에 표시된 길과 마을은 물 속에 잠겨 있었다. 지난해부터 담수를 시작해 이번 가을 폭우에 호수의 모양새를 갖추었다.


▲ 훤칠한 암봉과 수목이 조화로운 아미산 바위 연봉. 뒤에 솟은 암봉은 앵기랑바위다.
미술관이라도 들어섰나 싶은 현대적인 건물은 새로 지은 고로면사무소다. 옆엔 7개의 오래된 마을 표석이 서 있다. 수몰된 마을의 옛 표석은 고향을 잃은 이에겐 묘비석일 것이다. 물 아래 마을로 이어진 옛 콘크리트길과 물 밖으로 잎사귀를 내민 나무는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며 보는 호수는 산뜻한 분위기만은 아니다.

아래 잠긴 것들의 슬픔이 차올라 어딘가 어둡고 쓸쓸하다.

아미산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둥글둥글한 육산들 속에서 혼자 뾰족하게 솟은 바위가 일반인들 사이에 연예인 한 명이 선 것 마냥 눈에 띈다. 입구는 구름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산 앞에 위천이 흐르는데 주차장과 산 입구를 잇는 다리를 놓고 있다. 잦은 비 때문에 공사가 늦어졌다는 인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얕은 개울이지만 며칠간 내린 비로 물살이 세다. 농수로가 지나는 3m 높이의 좁은 콘크리트 다리를 약간 긴장된 걸음으로 지난다. 산행은 나무계단을 오르며 시작된다. 시작부터 인위적인 시설물을 만나는 게 반갑진 않지만, 초반 바위능선이 하이라이트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음직한 시설이다.

오른 지 3분 만에 능선이다. 앞에는 바위로 된 공룡의 이빨이 거칠게 솟았고 양 옆 절벽으로는 풍경이 펼쳐진다. 단정하게 선을 그은 논밭의 다양한 초록이 보기 좋다. 둥글둥글한 곡선의 성격 좋아 뵈는 산등성이들로 둘러싸여 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이런 멋진 풍경을 맛봐도 되는 건지, 공짜로 산의 속살을 맛보는 기분이다. 가야 할 능선에는 더 크고 건장한 암봉들이 불쑥 솟아 있다. 

본격적인 암릉산행이다. 아찔한 구간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지만 의외로 길은 편안하다. 바위 능선 사이사이와 위로 길이 나 있고, 정녕코 위험한 데는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처음 맞닥뜨리는 위험구간이 앵기랑바위다. 바위 연봉 중에서 가장 날카롭게 치솟았으며, 설악산 범봉의 모형을 보듯 균형을 이룬 것이 미학적이다. 양지마을에서 보면 애기동자승을 닮았다 해서 그리 불린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고 아래 사면으로 우회로가 나 있다. 출입금지 줄을 넘어 바위가 어떤지 살펴본다. 오래도록 비바람에 닳아 푸석푸석하다. 고정로프도 없고 잡을 만한 홀드가 없는 절벽이라 위험하다.

사면 아래로 우회한다. 바위 아래로 둘러가는 길, 반짝하고 빛나는 볼트가 보인다. 과거 한국산악회 대구지부에서 훈련용 등반루트를 개척했다고 한다. 우회길은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빼곡해 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선선하다. 두꺼운 굴피나무가 여럿 있어 특유의 푹신푹신한 촉감을 손으로 느끼며 오른다. 가파르고 발 디딤이 조금 모호하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군위군청에서 로프 난간을 만들어둬 수월하게 오른다. 

우회해서 오른 능선 뒤편 암봉에 고정로프가 있다. 양쪽으로 절벽이지만 등산객이 많이 다니지 않아 바위 결이 살아 있어 로프를 잡고 오르기에 어렵지 않다. 암봉 위에서 바라보니 뒤로 앵기랑바위가 훤칠한 위세로 솟은 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른편 발아래엔 908번 지방도로 지나는 차가 장난감처럼 보인다. 두 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안부에 땅이 있어 고정로프만 잡고 올라서면 이후부터는 비교적 안전하게 경치를 즐길 수 있다. 결이 살아 있는 바위들 사이에는 용틀임하듯 몸을 꼰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있어 마치 산수화 속을 거니는 듯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다. 

▲ 아미산 암릉지대는 안전 시설물이 잘 정비돼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앵기랑바위의 훤칠한 위세 눈에 띄어

오를수록 상쾌하다. 바윗길을 이리저리 오르며 딛는 맛과 더 화려해지는 경치 때문이다. 앞으로 나타날 바위들이 기대되고 뒤로는 저축을 해둔 것 마냥 지나온 바위들이 뿌듯하다. 산행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아미산은 당뇨가 걱정될 정도로 달콤한 풍경 속으로 사람의 발길을 이끈다. 이어서 오르는 바위는 멀리서 보면 옆으로 퍼진 거대한 두꺼비처럼 생겼다. 옆으로 퍼진 슬랩엔 로프난간이 있어 긴장감 없이 오를 수 있다.

느리게 경치를 즐기며 올랐는데도 벌써 바윗길의 끝이다. 1km 거리의 짧은 바윗길이 아쉽다. 그만큼 높이는 낮지만 경치가 훌륭해 더 짧게 느껴진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 바위능선을 뒤로하고 흙길을 오른다. 암릉구간이 끝나자 산은 빽빽한 숲의 육산이다. 긴장감 없이 편하게 흙을 딛고 진동하는 숲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다. 마치 6성급 호텔에서 양식을 먹다 갑자기 시골집의 구수한 청국장을 먹는 듯 다르지만 나름의 산 타는 맛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달콤한 것을 먹어서인지 풍경 하나 없는 오르막은 더 길고 가파르게 느껴진다. 이젠 산을 오르는 시간이다.  

▲ 앵기랑바위를 뒤에 두고 오른다. 앵기랑바위는 마을에서 보면 애기동자승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능선으로 완전히 올라서자 거친 숨결을 예상했다는 듯 벤치가 기다린다. 능선을 따라 오르니 돌탑이 있는 숲으로 빽빽한 봉우리다. 여기서 능선이 갈라지는데 왼쪽 길이 더 넓어 보이지만 오른쪽의 하산길처럼 느껴지는 길목에 표지기가 무수히 걸렸다. 어떤 이들은 알록달록한 색깔의 표지기가 공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길을 잘못 드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달아둔 선답자들의 배려라고 볼 수 있겠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도 표지기가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길 찾기 어려운 곳에 길잡이 노릇을 하는 표지기는 권장해도 좋겠다. 다만 자기홍보를 위한 무분별한 표지기 남발은 등산인 스스로 삼가야겠다.

왼편 석산리 쪽에서 뭔가 시끄러운 마이크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라디오 방송이다. 한적한 산의 고요함을 깨는 스피커 소음이 원망스럽다.

무시봉 정상은 3평 정도 되는 좁은 터에 작은 대리석으로 만든 표석이 있다. 조망 없는 숲 속이므로 바로 지나간다.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은 한적한 숲길이다. 신갈나무와 소나무, 굴피나무 등이 가득하고 경치가 없어 거의 비슷한 길이다.

▲ 능선에는 동양화에 나올 법한 멋진 소나무들이 많다.
방가산은 평범한 육산이지만 땀 흘린 뒷맛은 개운

아미산 정상은 산행 초반의 화려한 바위지대와 달리 평범하다. 나무로 빼곡하고 작은 표지석과 이정표가 있다. 북동쪽으로 시야가 살짝 트여 있다. 곡선을 이룬 둔덕 같은 산줄기가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특색은 없으나 능선의 흐름이 우아하다. 산 이름은 아름다운 눈썹을 뜻하는 아미(蛾眉)에서 음을 빌려와 높고 위엄 있다는 뜻의 아미(峨嵋)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 한가운데에는 콘크리트 바닥이 있다. 헬기장이라기엔 숲이 빽빽하고 터가 반듯하다. 신갈나무 숲 사이로 햇살이 투영해 초록색 조명이 뿌려진다. 자연스러운 숲의 오후를 걷는다.

능선은 낮은 안부로 한없이 내려섰다가 부드럽게 일으켜 세운다. 육산이지만 오르내림이 심하다. 조망이 없고 나무로 가득 차 일행의 관심은 빨리 가는 것에 집중된다. 이정표가 곳곳에 있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군위군청에서 제법 신경 쓴 것을 알 수 있다.
작은 바위가 주인처럼 버티고 있는 756m봉을 넘어 간다. 756m봉은 사실 아미산~방가산 종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아마도 아미산이나 방가산, 756m봉 모두 높이가 비슷하고 별다른 특색이 없어 그리 굳어진 것인 듯하다.

▲ 아미산의 바위는 푸석한 편이지만 등산객이 많지 않아 바위의 결이 살아 있어 발이 잘 밀리지 않는다.
좁은 오름길을 제법 숨 가쁘게 올라치니 돌탑봉이다. 군위에서 만든 지도에 그리 표시해 놓았으나 봉우리 이름을 붙이기 무색하게 좁고 초라하다.

능선의 오르내림에 몸을 맡겨 꾸준히 오르내리면 방가산이다. 755.8m로 아미산보다 높지만 별다른 개성 없는 육산이다. 그래서 군위에서도 두 개 산 종주를 그냥 아미산 산행이라고 한다. 정상은 숲으로 둘러싸인 좁은 터에 표지석과 삼각점, 이정표가 있다.

무덤을 지난 곳에 갈림길 벤치가 있다. 이정표는 직진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오른쪽 지능선으로 내려가도 휴양림으로 연결된다. 산 입구 안내도에 그리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장곡자연휴양림 관계자의 말을 따르면 오른쪽 길로 휴양림에 내려와 빈 방의 문을 따고 들어가 무단으로 시설을 사용하는 등산객들이 많아 이 길을 폐쇄하고 철책을 칠 예정이라 한다.

직진하여 묘 2기가 있는 곳을 지나자 하산 갈림길이 있는 안부다. 이정표는 없으나 표지기가 몇 개 달려 있다. 이 길은 군청에서 정비하지 않은 길이라 좁고 가파르다. 길에 떠밀려 빠른 걸음으로 내려서니 휴양림으로 이어진 임도다. 계곡에 내려가 얕지만 시원한 계곡물에 머리를 푹 담가 열을 식힌다. 한바탕 땀을 쏟은 터라 몸이 개운하다. 바윗길의 짧은 달콤함을 육산의 긴 여운으로 간직하라는 아미산의 가르침이다.

[ 산행 길잡이 ]

공룡능선 윗부분만 뎅강 잘라놓은 듯한 미니 설악산
산행 초반 1km에 비경 집중돼 있어…초보자도 갈 수 있는 쉬운 암릉산행지


이 능선은 설악산 공룡능선의 바위 봉우리 윗부분만 싹둑 잘라 옮겨둔 것 같은 축소판이다. 공룡능선을 가고 싶지만 힘든 산행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못 간다는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산 전체를 보면 육산이지만 산 입구부터 1km에 이어진 바위 연봉이 산행의 백미다.

산행길은 세 가닥이 있다. 양지마을~암릉구간~큰작사골삼거리~대곡지~양지마을로 도는 4km에 2시간 30분 걸리는 짧은 코스, 암릉구간~절골삼거리~대곡지로 도는 6km에 3시간 30분 걸리는 중간 코스, 암릉구간~아미산~방가산~장곡자연휴양림으로 도는 10km에 6시간 걸리는 긴 코스가 있다. 짧은 코스와 중간 코스는 원점회귀 산행이며 승용차로 왔을 경우 긴 코스는 택시를 불러 타고 되돌아가야 한다.

암릉산행이라 해도 계단이나 시설물이 잘 되어 있어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며 임의로 출입금지 바위에 오르지 않는 이상 크게 위험한 곳은 없다. 암릉구간 이후로는 모두 흙길 위주의 육산이며 아미산과 방가산 정상에는 나무가 높아 조망이 없다.

장곡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 긴 코스의 능선은 꾸준히 오르내림이 있고 화려한 경치가 없어 자칫 산행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어 길찾기는 쉬운 편이지만 756m봉 갈림길에서 오른쪽 내리막으로 잘못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간간이 지능선이 주능선마냥 뚜렷한 곳이 있으므로 이정표와 표지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산 입구의 등산 안내도에는 방가산 지나 갈림길에서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이 표시되어 있으나, 휴양림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산길을 변경해 기존의 하산로에 철책을 설치해 길을 막을 예정이라 한다. 대신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직진해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을 이용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염동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