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독은 습관에서 비롯된 행동장애로, 우리 삶의 중요한 일상이 돼버린 인터넷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어디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누구나 게임 중독에 빠질 수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를 찾아 인터넷 중독의 예방법과 치료법을 알아보았다.
한 대뿐인 컴퓨터를 놓고 아침저녁으로 전쟁을 벌이는 집이 많다. 초등학생 경호는 새벽까지 몰래 게임을 하다 잤는지 눈 밑에 초승달이 걸려 있다. 겨우 깨워서 학교에 보내놓으면 한 시간도 안 돼 전화가 걸려온다. “어머님, 경호가 아직 학교에 안 왔네요. 어디가 많이 아픈가요?” 엄마는 대꾸도 못하고 속병을 앓는다. 아들이 게임에 미쳐 동네 PC방으로 등교했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한다.
일이 이쯤 되면 게임 중독을 의심하게 된다. 누구 말처럼 ‘취미’와 ‘중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중독에는 단순히 좋아한다는 감정을 넘어선 어떤 고집이 담겨 있다. 이젠 내성이 생겨 만족을 얻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처럼 금단증세에 시달려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몸이 아프다며 자퇴를 하고 PC방에 가거나, ‘경험치’를 올린다며 동생에게 주먹을 날린다면 문제가 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 장애가 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면 인터넷 중독이다.
게임과 인터넷은 가장 친근한 놀이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한 e스포츠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PC방을 전전하는 하숙생들이 크게 늘었고, 인터넷을 통한 쇼핑, 검색, 주식, 블로깅, 카페 활동 등이 일상화되면서 그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수업시간에는 컴퓨터로 검색을 하면서 자료를 찾는다.
또 무선 인터넷이 가능해지면서 휴대전화 외에도 넷북, PMP 같은 전자기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닌텐도 DS나 소니 PSP 같은 휴대용 게임기를 비롯해 아이팟 터치 같은 멀티태스킹 기기를 한 손에 들고 생활하는 것이 현실이다. 온라인 게임에 지나치게 몰두해서 심장마비나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고 안심하기에는 인터넷 환경이 너무 잘 갖춰져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에 근무하는 장우민 선임연구원은 “요즘 아이들이 혼자 하는 놀이에 익숙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다양한 콘텐츠로 무장한 전자기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어해요. 밖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친분을 쌓기보다는 혼자 TV를 보거나, 휴대용 게임기를 갖고 놀거나, MP3를 듣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죠. 게다가 최신 기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부의 상징이기도 해요. 이런 과시욕이 더해져서 미디어 기기에 더 집착하게 되죠.”
그런데도 부모들의 대응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애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만날 게임만 해요. 나중에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어요. 컴퓨터 코드를 뽑으면 밖으로 나가서 PC방에 간다니까요.” 부모들은 일단 문제가 생기면 공부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강요한다. 아이들은 이를 잔소리로 알아듣는다. 싸움은 불을 보듯 뻔하고, 게임에 대한 욕구는 말릴수록 커져만 간다.
가족 갈등과 스트레스를 게임으로 풀어
우리나라는 정보통신 강국임을 강조한다. 아이들은 젖을 떼자마자 장난감 삼아 마우스를 쥐고, 유치원도 가기 전에 인터넷 게임부터 배우는 실정이다. 특히나 무선 인터넷이 발전해 야외에서도 손쉽게 접속할 수 있는 IT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미디어 통신기기를 다루는 일에 너무나 익숙하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연예인 기사를 검색하면서 댓글을 달고, 카페에 가입하고 블로깅을 한다. 또 미니홈피에 휴대전화 사진을 올리고, 친구와 채팅을 하고 근처 PC방에서 만나 게임을 즐긴다. 아이들에게 인터넷은 가장 쉬운 도피처다.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한다. 그러다 부모의 불화로 가정에 문제가 있거나 경제적인 위기로 겉돌게 되면 아이는 더욱 인터넷에 집착하게 되고, 그 안에서 생겨난 애착과 관계 망을 벗어나기 힘들어한다.
또 성적 하락으로 자신감을 잃거나, 학업 스트레스로 부모와 갈등을 겪다보면 반항심까지 더해져 더욱 게임에 몰두하게 된다. 이사나 전학처럼 의도하지 않았던 환경의 변화로 왕따를 당했을 때도 억눌린 분노와 공격성을 풀기 위해 인터넷에 의존한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걱정과 달리 공부와 인터넷을 별개로 보고, 단순한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인터넷 중독에 노출되기가 더 쉽다.
“인터넷을 안 하면 그 시간에 뭘 해요? 도리어 아이들이 저한테 그렇게 물어요. TV도 못 보고, 인터넷도 못하게 막으면 딱히 할 게 없는 거예요. 학교 마치고 학원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뭘 하겠어요? 인터넷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 요즘 애들은 형제자매 없이 외동으로 자라서 혼자 하는 놀이에 익숙해요. 인터넷이나 게임만큼 편한 놀이가 없죠.”
장우민 연구원은 프리스타일 같은 농구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농구교실에라도 보내는 편이 낫다고 한다. 바쁘게 몸을 써서 움직이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도록 하라는 얘기다. 일이 커져 인터넷 중독으로 발전하면 품행장애, 은둔형 외톨이, 섭식장애 등 정신 건강마저 해치게 된다. 되도록 일찍 아이의 인터넷 사용 습관을 파악하고, 처음 컴퓨터를 접할 때부터 올바른 습관을 들여 중독에 이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게임머니가 아닌 돈의 가치를 알게 하라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를 찾은 사람들을 상대로 성격유형검사(MBTI)를 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검사 결과를 보면 인식형(Perceiving)과 감각형(Sensing)이 대부분이다. 이런 유형은 오감에 의존해서 현재에 초점을 두고 살며, 계획이나 규칙, 정해진 일정을 싫어한다. 한마디로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획성 없이 사는 것이다.
문제는 인터넷이나 게임이 이런 유형의 아이나 청소년에게 손쉬운 도피처가 된다는 점이다. 요즘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어릴 때부터 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학교 수업도 모니터를 보면서 할 때가 많아 활자를 통해 얻는 언어적 상상력이 부족하다. 여기에 일 때문에 바쁜 부모의 무관심과 이를 돈으로 보상하려는 심리 때문에 아이들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용돈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만화에 나오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메이플 스토리’는 초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게임이다. 아이들은 레벨을 올리기 위해 현금으로 아이템을 사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어렵다. 그래서 부모에게 받은 용돈이나 휴대전화를 활용해 캐시 결제를 한다. 천 원의 가치가 얼마인지, 만 원으로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기도 전에 무분별하게 돈을 쓰는 것이다. 아이템 하나를 살 돈으로 현실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확실히 알려주는 것도 부모가 할 일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생일잔치를 패스트푸드점에서 해요. 아이들이 다 모이면 초대받은 친구들이 생일선물로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내놓죠. 그게 요즘 아이들 사이의 룰이에요. 그럼 엄마는 애들한테 햄버거 세트를 사주고, 2차로 PC방에서 놀 수 있게 카드를 충전해줘요. 문화상품권을 받은 애가 그걸로 책을 사보겠어요? 천만에요. 인터넷으로 캐시를 충전해서 음악을 내려 받거나 아바타를 꾸미거나 게임 아이템을 사는 데 써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생일잔치를 하고 축구공을 선물해서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몸으로 하는 놀이가 온라인 게임보다 훨씬 재밌다는 생각을 하려면 경험을 쌓게 하는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아이와 함께 야외로 자주 다니고, 방학에는 찾아서라도 여름 캠프에 보내는 것이 좋다. 꽉 짜인 시간표대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 사회성도 길러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도 알게 된다.
중독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상담을 받아야
전문가들은 인터넷 중독을 정신이상이 아닌 행동장애로 본다. 정신의 문제로 생긴 증상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의해 생기는 행동장애라는 것이다. 정신이상은 약물을 동반한 치료가 필요하지만, 행동장애는 무엇보다 상담이 우선이다. 일단 상담센터를 찾은 아이가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으로 판단되면 최소 3개월의 시간을 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상담을 받게 된다. 습관화된 행동을 고치는 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고, 진로 상담과 병행하면서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중독은 원인이 다양하지만, 보통은 가정 문제와 결부된 개인사와 관련이 깊다.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게임에서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평범한 아이가 어느 순간 게임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상담 사례 중 석원이는 경찰 공무원인 엄한 아버지 밑에서 소심한 아이로 자랐다.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하다 게임의 세계에 빠졌고, 1학기에는 학사 경고를 받았다. 그러자 부모님은 2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오게 했고, 석원이는 가출을 반복하며 PC방을 전전했다.
그 전까지 석원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욕구나 바람이 생기면 그걸 억누르고 복종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며 살아온 것이다. 석원이처럼 게임 속 가상현실을 자아실현의 통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고,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실패할 경우 통제력을 잃고 인터넷이나 게임에 몰두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인터넷 중독은 예방이 우선이지만, 정도를 넘어선 상태라면 더 악화되기 전에 상담센터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홈페이지(www.kado.or.kr/IAPC)에 가면 인터넷 중독 자가진단을 해볼 수 있으며, 로그인 후 면접상담 또는 가정방문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또 연중무휴로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새벽 2시까지 전화나 메신저, 채팅 상담을 해주는 ‘아름누리상담콜’을 운영하고 있다. 전화 상담은 1599-0075번이며, 전국에 있는 센터와 연결된다.
집에서 인터넷 중독을 예방하려면?
1 컴퓨터 사용 일지를 쓰게 하라
예쁜 공책을 컴퓨터 곁에 두고 컴퓨터를 할 때마다 일지를 쓰게 한다. 몇 시에 컴퓨터를 켜고 껐는지, 어디에 접속해서 어떤 게임을 했는지, 그 게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별표 5개로 스스로 평가를 내리게 한다. 부모가 검사를 해서 혼을 내려고 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주의하면서, 솔직하게 적게 한다. 6주 정도 지나면 아이의 컴퓨터 사용 패턴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컴퓨터를 너무 오래 한다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재미난 대안활동을 찾아주는 것이 핵심이다.
2 게임으로 잃어버리는 것을 스스로 파악하게 하라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이런 말은 잔소리로만 들린다. 그보다는 게임에 매달려 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렸는지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난의 화살을 아이에게 돌리지 말고, 책임 소재가 나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솔직히 터놓고 대화해야 한다. 너랑 등산을 같이 가고 싶었다거나, 같이 장을 보러 가고 싶었다고 차분히 이야기하면 의외의 효과를 볼 수 있다.
3 시간 관리의 개념을 심어주자
시간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해 무의미하게 보내는 아이들이 많다. 일단 게임에 중독되면 제어가 안 돼 일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을 힘들어한다. 어릴 때부터 생활 계획표를 쓰는 버릇을 들여 내가 할 일을 죽 나열해놓고, 스스로 평가를 내려 우선순위를 정해서 행동하도록 한다.
4 아이가 제 삶의 주인공이 되게 하라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그 외의 일들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둬서는 곤란하다. 엄마가 시켜서 잘하는 아이는 커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억지로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탈출구로 게임에 빠져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캐릭터에 강한 집착을 보일 수 있다. 작은 일부터 아이가 선택할 권리를 주고,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잘한 일에는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녀와의 약속으로 인터넷 사용 시간 줄이기
●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도 오락시간으로 인정하고 일정한 시간에 할 수 있게 한다.
● 자녀가 스스로 인터넷 사용 시간 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 인터넷 사용 시간 계획도 실효성 있게, 자녀의 현재 인터넷 사용 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 인터넷 사용 시간을 정할 때 한 번에 3시간 이상 인터넷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특히 3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자녀가 정한 시간을 스스로 지킬 수 있게 격려한다.
● 인터넷 사용 시간도 공부시간처럼 충분히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 약속한 시간보다 오래 인터넷을 했을 때 주어지는 처벌에 대해서도 자녀와 미리 상의하도록 한다.
● 자녀 스스로 인터넷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고, 정해진 시간을 어겼을 시 처벌에 대한 동의를 구한다.
● 수면시간을 정해서 충분히 잘 수 있게 한다.
● 인터넷 사용에 대해 가족 모두 활동일지를 쓴다.
● ‘인터넷 休요일’을 정해 하루만큼은 인터넷을 하지 않는다. 컴퓨터 모니터에 ‘인터넷 休요일’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여성조선
취재 성재경 사진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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