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고도 다양한 여성 우울증
우리는 주위에서 ‘주부 우울증’이라는 아리송한 말을 쉽게 듣는다.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왜 이런 말이 널리 쓰일까?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2~3배 정도 우울증에 쉽게 걸리고 30~40대에 가장 흔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우울증의 유병률이 높다는 사실뿐 아니라, 산후 우울증, 월경 전 불쾌장애, 폐경기 우울 등 독특한 유형이 여성에게 존재하며 임신과 연관된 문제가 있기에 우울증은 여성에게서 매우 중요한 병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한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①생물학적 원인
-뇌의 변화, 신경전달물질 및 호르몬의 영향 등
②사회적 원인
-스트레스,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
③심리적 원인
-자신을 향한 적개심, 학습된 무기력
④ 유전적 원인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여성에서 우울증은 사춘기 이후에 급증하여 폐경이 지나면서 감소하기 때문에 생리와 연관된 성호르몬의 변화가 사회적 요인(사회적 차별)과 함께 주요 원인으로 주목 받고 있다.여기에서는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유형의 우울증과 임신 동안의 치료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월경 전 불쾌장애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울증으로 분류하진 않는다. 그러나 우울감을 포함한 다양한 기분 증상이 나타나므로 우울증의 큰 범주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는 흔히 월경 전 증후군 (Premenstrual Syndrome)으로 알려졌던 병이다. 월경 전 불쾌장애는 월경주기와 관련되어 다양한 정신적 및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고, 이 증상들로 인해 당사자의 사회적 기능이나 활동성이 현저히 영향 받는 경우를 일컫는다.
주로 20대에 시작해(10대에 시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대개 30대에 병원을 찾으며, 증상은 좋아졌다 나빠지는 주기를 반복한다. 심한 경우에는 내내 누워만 있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증상들은 크게 3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우울감, 긴장, 감정의 격변, 흥분성 등의 기분관련 증상군
② 흥미저하, 집중력 감퇴, 피로감, 식욕과 수면의 변화, 자신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느낌 등의 행동상의 증상군
③부종, 두통, 소화장애 등의 신체 증상군 등이 그것이다.
전체 증상 중에서 최소한 5가지의 증상이 있고(이 중 적어도 한가지는 기분 증상이어야 함), 월경 전 1~2주에 시작하여 월경 시작 직후 또는 월경 며칠 내에 모든 증상이 사라질 때 이 질병의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월경 전 불쾌장애는 가임 여성의 20~50%가 경험하며, 75%는 적어도 한가지 증상을 겪을 만큼 흔한 질병이다. 그러나 병원을 찾기보다는 자가투약으로 해결하고 있는 실정이며, 동반되는 신체증상 때문에 진단이 헷갈려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월경과 연관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원인은 아직 분명치 않다. 난소의 정상적인 기능이 중추신경계 및 기타 표적장기 내에서의 월경전 불쾌장애와 관련된 생화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성호르몬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 progesterone의 상대적 부족, 세로토닌(serotonin) 변화 등도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치료로는 식사조절 및 영양소 섭취, 지속적 운동, 스트레스 조절 등의 보전적 요법이 있으나 병원을 방문할 정도라면 대개 전문적인 치료를 함께 해야 한다. 이밖에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이하 SSRI)를 비롯한 약물치료, 호르몬 치료, 정신치료 등이 있다.
산후 정신질환
산후 정신질환은 크게 알려진 바가 없으며 최근에 와서야 특정 질병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증상이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분장애로 본다. 진단기준 상으로는 출산 후 4주 이내에 발생한 경우를 지칭하나, 출산 후 1년 이내에 생긴 정신질환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시각도 있다. 임신 동안 주요 정신질환의 발생률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그러나 산후에 정신질환의 발생률은 급격히 증가하며 1년까지는 그 위험성이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
정도와 양상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분류한다. Postpartum Blue는 말 그대로 우울한 기분 정도이지 병적인 상태는 아니다. 산후 정신병(Postpartum Psychosis)은 기분 증상과 정신병적 증상(망상, 환각)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그렇다고 정신분열병과 같은 심각한 질병은 아니며 비교적 예후는 좋은 편이다. 산후 비정신병적 우울증(Postpartum Nonpsychotic Depression)은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우울증인 경우이다.
산후 질병 | 빈도 | 임상 특징 | 경과 |
Blues | 50~80% | 울음, 초조, 때로는 들뜸 | 출산 후 3~10 일 |
Depression | 10~15% | 멜랑콜리아(우울), 신경쇠약, 불면증, 신체증상 |
80%가 3일~6주 이내 시작 기간: 6~9개월 |
Psychosis | 0.1~0.2% | 대부분이 정신병이 아니고 기분장애 조증 현상의 가능성 고려 망상, 환각, 섬망, 혼동 등의 증상 |
2주 이내 갑작스런 발병 비교적 좋은 예후 기간: 2~3개월 |
1) Postpartum Blues
정신질환으로 보진 않는다. 질병으로 인한 기능의 저하도 뚜렷하지 않고, 출산 후 약 50~80%에서 나타날 정도로 매우 흔하다. 증상의 특징은 우울하고 쉽게 울고 잘 흥분하는 것이지만, 기분의 변화가 심하거나 때로는 조증처럼 들떠 지내기도 한다. 대개 출산 3일 이후에 발생하여 1주일 이내에 저절로 사라지는 편이다(5일째에 절정). 출산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 때문으로 여겨지며 약물치료보다는 교육, 안정, 안심시킴 등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단기간 약물을 투여한다.
2) 산후 우울증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이 산후 2~3주째에 서서히 발생하여 점점 심해지면서 몇 주 또는 몇 달간 지속된다. 주된 특징은 우울증상 외에도 신체적 증상을 흔히 호소한다는 점이다(특히 지나친 피로감). 산후 4~5개월이 돼서야 증상이 분명해 지는 경우도 있을 뿐 아니라 신체 증상을 흔히 호소하므로 진단을 놓치기 쉽다(산후 1~2년 까지도 가능하다). 우울증이라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조울병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로 불안정한 기분이 잘 나타난다.
첫 출산의 10~15%에서 나타나나 그 다음 출산에서는 50%(기분장애의 과거력이 없는 경우) 정도로 높아지며, 기분장애와 산후 우울증의 과거력이 모두 있는 경우에는 거의 100% 나타난다고 본다. 모유 수유 여부와 산과적 요인(임신기간, 분만시간, 질식분만/제왕절개, 출생체중)은 위험요인이 아니다.
조기에 발견하는 대로 빨리 치료한다. 항우울제가 기본 치료약이나 조증 증상이 있다면 기분조절제를 사용한다. 때로 소량의 항정신병약물의 병합투여가 효과적이다.
3) 산후 정신병
가장 심한 산후 정신질환으로 거의 대부분이 출산 후 8주 이내에(80%가 1달 이내) 나타나지만, 3~14일 사이에 가장 흔하게 발생한다. 초기증상은 혼동(confusion), 불면증, 초조, 이인화(depersonalization) 등이며, 환각이나 망상을 동반한 섬망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증상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며 상태가 아주 쉽게 변한다(즉, 조증, 우울증, 정신병 등의 상태로).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정신병이라기보다는 기분장애로 본다.
망상(delusion)이 절반 정도에서 나타나는데 대부분은 출산 및 육아와 연관된 내용이다. 자신이나 아이를 해친다는 생각이 들 때는 매우 위험하며, 산후 정신병의 4%에서 영아살해가 일어나고 5%의 경우에 자살하기 때문에 철저하고도 신중한 감독이 필요하다. 1,000명 출산 당 1명의 예정도로 발생이 보고된다. 첫 출산에서 나타났다면 다음 출산에서 나타날 확률은 매우 높으므로(10~50%), 기왕력이 있는 사람은 임신을 계획할 때부터 철저히 관리를 해야 한다.
치료는 빠를수록 좋다. 첫 단계는 기질적(의학적) 원인을 찾는 것으로서 특히 갑상선 질환, Cushing 증후군, Sheehan 증후군, 약물의 영향 등을 놓치지 말고 철저히 조사하도록 한다. 만일 있다면 의학적 원인을 교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환자의 증상이 변화무쌍하므로 이에 맞게 치료방침과 약물의 선택에 적절한 변화를 준다.
분명한 정신병적 증상이 있으면 입원치료하며, 특히 환자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반드시 입원하고 필요하다면 아이와 격리한다. 소량의 항정신병약물 투여로 효과가 좋다. 초기에 치료하면 1~2 주에 해소되며 적어도 6주 유지 치료한다. 특히 재발 위험성이 있으면 최소 6개월 정도 유지한다.
임신 동안의 우울증 치료
약 10%의 여성이 임신 중에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우울증으로 치료 받던 사람이 임신으로 약을 중단하면 많은 경우 재발하는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치료를 유지할 필요가 있게 된다. 그러나 임신 중의 약물치료는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예방이 최우선이지만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해야 한다면 이로 인한 득과 실을 잘 따져야 한다. 따라서 재발의 가능성이 높은 환자에게는 계획된 임신을 강력하게 권유한다.
심하지 않은 경도의 우울증이면 우선 정신치료나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한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이고 환자의 상태를 보아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우선 비약물적 치료를 고려한다. 전기경련치료, 경두개자기자극술, 광치료 등이 해당된다.
불가피하게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면 가급적 임신 3개월 이후에 투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태아에 대한 최기성(teratogenecity)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신 중 안전성 측면에 있어서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카테고리 C에 해당되므로 (bupropion은 B) 항우울제의 사용에 의한 심각한 영향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그러므로 부작용이 적을 뿐 아니라 오래 사용되어 임상경험과 자료가 축적된 SSRI와 SNRI를 가장 추천한다.
한편 약물을 쓰면서도 철저한 검사와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 즉, 양수 검사, 초음파 검사 등을 스케줄에 따라 시행하며 엽산(folate) 등의 약물을 꾸준히 복용하여 나쁜 가능성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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