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스님 어록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랴" / 법정스님

문성식 2011. 3. 7. 12:09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랴" 한 선비가 깊은 산속 골짜기에 사는데, 임금이 불러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무성한 소나무와 맑은 샘이 산 중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무성한 소나무와 맑은 샘이 솟아나는 동안 그의 산중 생활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는 말이다. 전해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 선비의 삶자체가 청청한 소나무와 맑은 샘처럼 여겨진다 강과 산과 바람과 달은 따로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속적인 욕심을 떠난 맑고 향기로운 사람이면 누구나 그 주인이 될 수 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가슴이 열린 사람이라면 어디서나 강산과 풍월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내가 가끔 둘르는 한 스님의 방에는 텅 빈 벽에 "여수동좌"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까만 바탕에 흰글씨로 음각된 이 편액이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말없이 반겨 주는 듯하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랴" 그 방 주인의 맑은 인품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 나는 나무판에 새긴 이 편액을 대할 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된다. 옛글 (하씨어림)을 보면 사언해라는 사람은 함부로 사람을 사귀지 않아 잡스런 손님이 그 집을 드나들지 않았다. 그는 혼자 차나 술을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방을 드나드는 것은 오로지 맑은 바람뿐이오. 나와 마주 앉아 대작하는 이는 밝은 달뿐이다." 청풍과 명월로써 벗을 삼았다니 아무나 가까이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그를 가까이하기보다는 그 나름의 삶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청량감을 준다. 무례하게 끈적거리고 추근대는 요즘 같은 세태이기에 그런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웃에게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구실을 한다.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랴" 라고 써 붙인 방에는 찻잔이 세개뿐이다. 세사람을 넘으면 차 마실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산중에서 누구와 함께 자리를 같이하는가 스르로 물어본다. 사람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니까 사람과 자리를 같이할 일은 없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과 흰 구름, 시냇물은 산을 이루고 있는 배경이므로 자리를 같이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살갖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 범정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