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인의 삶과 인생
새벽 다섯 시, 어둑한 도시의 골목에서 들려 오는
부지런한 발자국 소리들과 함께 저의 아침은 시작됩니다.
여름도 막바지로 접어든 요즘..
며칠 동안의 태풍과 함께 퍼부어대던 비 때문인지
아침공기는 사뭇 차갑습니다.
부지런한 미화원 아저씨의 낙엽 쓰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를 때 저는 공원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마음속으로 하루의 일정을 그려보며 밤새 공원을
지켜준 나무들에게 반가운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한 시간 정도 걷기와 달리기를 하고 나면 추위는
어느새 사라지고 몸은 날아오를 정도로 가벼워집니다.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은 집으로 향하고
가족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제 손길은 무척 바빠지죠.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하는 두 아들들의
아침식사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여섯 시 반이면 일어나는 아들들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뒤이어 두 아들들이 나란히
출근하는 모습을 창문으로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막내아들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저의 아침은 항상 분주하답니다.
저희 집엔 남자들만 넷이에요.
남편과 내일모레면 서른인 장남, 스물 여섯인 차남,
그리고 이제 아홉 살인 막내,
결코 흔하지 않은 가족구성원,
제 나이 마흔 여섯..
서른이 다되가는 아들들을 두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죠.
조카 같은 아들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이십여년 전,
저는 십년 동안 결근한번하지 않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중매로 가을나무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남자의 경제적인 능력과 모든 조건을 따지지도 않고
우린 첫 만남에서 느낀 설레이던 마음만
고스란히 간직한 채 결혼식을 했고
아주 가난한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운명은 결코 순탄하지 않아서
첫 결혼에 실패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결혼한지 일년만에 남편이 간암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스물 다섯에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저는
그대로 험한 세상에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죽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가슴아픔으로
꼬박 일년동안을 정신을 놓아둔 채 살게 되었고
결혼에 대한 실패는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살수 없었던 것은 그가 남긴
아들이 있었기에 저는 정신을 수습하고 미용 계에
뛰어들어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막일을 마다하고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미용사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할 때
뜻하지 않은 만남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이 내 인생에 또 다른 풍랑을
일으키고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방암으로 아이들의 엄마를 먼저 보낸 남편은
나를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고
결국 남편의 정성에 못 이겨 저는 겁도 없이
두 남자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만 것입니다.
큰아이가 중학교 일 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이 학년이었을 때 저흰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고 아이들의 흔들리던 눈빛을 보고
저는 돌아설 수 없어서 그대로 눌러앉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삶은 모질고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남편은 하던 사업에 실패를 해서 자신을 수습하지 못한 채
술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사춘기를 보내면서 빗나가기도 했고...
저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삶과 죽음의 중간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들을 살게 되었습니다.
겁도 없이 뛰어들었던 재혼이라는 굴레는
초혼의 실패로 인해서 더욱 나의 삶을 옥죄어왔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던것이죠.
거기다 남편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가졌던 아이가 태어났으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남편으로 인해서,
아이들로 인해서 몇 번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가족모두가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절 일으켜 세워준 건
아들들의 슬픈 눈이었습니다.
세 아들들에겐 모두 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남편에게도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했고요.
전 아이들에게 좀더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도 조금씩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외로움에 그토록 힘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같이 아침이면 신문배달을 하면서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임을 깨달아갔으며
남편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큰아들이 최전방 수색대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아들은 수시로 편지를 보내서 제 마음에 감동을 주곤 했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며
지금은 열심히 제과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성실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평소 내성적이지만 술을 한잔하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제 손을 꽉 쥐고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합니다.
큰아들은 아침에 동생이 출근하는걸 도와주기 위해서
한시간 빨리 일어나 자신의 차로 동생을 출근시켜주고요.
동생을 생각해주는 깊은 배려가 아름답기까지 하죠.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두 아들들이
나란히 출근하는 모습들을 보는 것입니다.
요즘 재혼하는 가정들의 재 이혼율이 70%나 된다는
통계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아이들과의 이해관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탄을 겪는다는 사실은
재혼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얼마 전 TV 모 프로에서 우리가족을 촬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재혼에 성공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는데
재혼한 가정답지 않게 아이들과 너무나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담당PD가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제가 엄마라는
사실을 주입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며
그저 서로 편하게 지내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두 저에게 깊은 신뢰를 갖고 있습니다.
아빠보다도 훨씬 제 의견을 존중해주는 아이들을 볼 때
제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곤 합니다.
실패와 성공, 흔히 말하는 성공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와 명성을 가지게 될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저에겐 부도 명예도 없습니다.
단지 불행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 들어가 버릴 뻔한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경험이 있을 뿐이죠.
그걸 성공이라고 한다면 부와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웃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선택으로 인해서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보다 기쁨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곤 한답니다.
아직 도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지난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똑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또한 제 자신을 위한 공부를 시작할 것입니다.
문학에 대한 정열이 아직 내 가슴속에 풋풋하게
살아있는 한 저의 도전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인생은 언제나 도전이며,
도전하는 삶은 진정 아름다우니까요.
= MBC라디오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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