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3. 천태(1)
1) 천태종의 성립
천태종의 초조는 혜문(慧文)인데, 자세한 전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6세기 중엽에 수백 명의 무리를 엄격하게 지도한 사람이고,
『대지도론』에 의지해서 선관(禪觀)을 닦았다고 한다.
2조는 혜사(慧思: 515~577)이다.
그는 혜문의 제자이고, 『법화경』을 독송하고 좌선을 매우 충실하게 해서,
결국 법화삼매(法華三昧)라는 경지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3조 지의(智剡: 538~597)는 실제로 천태종을 일으킨 인물이다.
지의는 23세 때 혜사의 문하에 들어가 법화삼매를 배웠으며,
그의 대표적 저술은 『법화문구』, 『법화현의』, 『마하지관』이다.
천태대사 지의 이후에 천태종은 다소 부진한 편이었으나
당나라 중기에 들어서면서 담연(湛然 : 711~782)에 의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담연은 화엄종과 선종에 대항해서 천태종을 다시 일으키려고 하였다.
그리고 송나라에 들어서서 천태종은
산가파(山家派)와 산외파(山外派)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한국은 천태종이 비교적 늦게 성립된 편이었다.
고려 초에 체관(諦觀)이 중국에 들어가서 천태종을 연구하여,
『천태사교의』라는 천태학의 명저를 남겼으며,
의천(義天 : 1055~1101)에 이르러 비로소 한국에 세워졌다.
이런 천태종의 흐름은
요세(了世 : 1163~1245)의 백련사결사에 와서는 실천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이 결사는 원나라 간섭기에 활동한 운묵(雲默)에 의해서
그 근본정신이 더욱 발휘되었다.
2) 천태교학의 중심 사상
천태교학의 중심 사상에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실상론(實相論)이라고 불리는 일념삼천설에 대하여 구체적 수행법으로서
십경십승관법을 검토해 보자.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과 일심삼관(一心三觀)
‘일념삼천설’은 사람의 한 마음에 삼천 가지의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여기서 ‘삼천’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삼천은 전체를 의미하는 숫자라고 한다.
따라서 ‘일념삼천설’은 사람이 무한한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실의 사람은 가능성으로는 부처도 될 수 있고,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현실에는 인간의 세계에 머물고 있다.
이것이 ‘일념삼천설’에서 말하는 인간의 구체적 모습이다.
이 ‘일념삼천설’의 내용은 천태대사 지의의 『유마경현소』에 따르면
관조할 대상이고, 관조할 내용은 ‘일심삼관’이라고 한다.
그러면 일념삼천설과 일심삼관의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일념삼천은 일념 가운데 삼천의 세계가 갖추어 진다는 것이다.
삼천의 숫자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십법계(十法界)가 십법계를 갖추고,
다시 일법계가 십여시(十如是)를 머금어서,
백법계(百法界)ㆍ천여시(千如是)가 되고,
여기다 세 종류의 국토(三種國土)를 곱하면 삼천이 된다.
우선, 십법계는 지옥(地獄), 아귀(餓鬼 : 전생에 악업을 짓고 탐욕을 부린 자가
아귀로 태어나 배고픔과 목마름에 괴로워한다),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 고대 인도에서는 싸움을 일삼는 악신으로 생각했다),
인간(人間), 하늘,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이다.
앞의 여섯 가지는 6도(六道)라고 하는데 윤회하는 세계이고,
성문, 연각, 보살은 대승불교의 삼승(三乘)이다.
천태대사 지의는 여기다 불계를 더 보태서 십계를 만들었다.
이는 불교사상에 근거해서 세계에 대해 가치를 매긴 것이다.
이 십법계가 다시 십법계를 머금는다.
그래서 인간계도 십계가 존재하고, 지옥계도 십계가 존재하고,
불계도 십계가 존재한다.
이는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선심(善心)과 악심(惡心)이 존재하고,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심과 악심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가능성으로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법계가 십여시를 갖추고 있다.
십여시는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이다.
상(相)은 바깥의 모습이고, 성(性)은 내면의 본성, 체(體)는 사물의 주체,
역(力)은 잠재적인 힘과 작용, 작(作)은 드러난 힘과 작용,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
과(果)는 직접적인 원인의 결과, 보(報)는 간접적인 원인의 결과,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은 형상에서 결과까지 통괄하는 평등의 원리이다.
그리고 삼세간(三世間)은
오음세간(五陰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국토세간(國土世間)인데,
오음세간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인 물질이고,
중생세간은 거기에 안주하는 인간과 생물이며,
국토세간은 그 인간과 생물이 살고 있는 환경이다.
앞에서 소개한 ‘일념삼천설’은 관조할 대상에 속하는 것이라면,
일심삼관(一心三觀)은 관조할 내용에 속하는 것이다.
천태대사 지의가 말하는 일심삼관은
공(空), 가(假), 중(中)이 한 마음 같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공(空)이라고 보는 것은 대승불교의 일반적 이론이다.
이 공을 가장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내면의 집착하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 집착의 대상인 객관세계도
집착하는 것 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도불교에서도 공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이 중국불교로 넘어오게 되자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 사바세계를 초월하자는 이야기로는
중국인의 마음에 맞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래서 공의 세계에 철저히 파고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세계는 우리가 집착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가(伽)이다.
현실의 대상은 범부가 집착하는 것처럼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고,
여기서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실용주의적 관점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공(空)과 가(伽)의 두 관점을 종합하는 것이 중(中)이다.
이는 공(空)이라고 해서 없다는 쪽에 치우치지도 말고,
가(伽)라고 해서 있다는 편에도 비중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극단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다.
그래서 일심삼관의 의미는 공(空)ㆍ가(伽)ㆍ중(中)의 의미가
한 마음 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공(空)의 의미를 가(伽)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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