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2. 유식 (1)
1) 유식학의 출현과 문헌
앞에서 공사상을 설명하면서,
공견 또는 공병의 위험성에 대해 간략히 언급한 바 있다.
유식학은 중관학에서 말하는 공견을 악취공(惡取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공을 잘못 파악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악취공적 세계관,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우리의 마음인 식(識)에 근거하여 세상만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유식학에서는 만법유식의 교리를 통해 악취공적 무견(無見)도 비판하지만,
아비달마교학의 유견(有見) 역시 비판한다.
이와 같이 만법유식은 유견과 무견을 떠난 중도적 가르침인 것이다.
『유가사지론석』에서는 유식학의 출현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파불교도들의 실재론적 불교관[有見]을 시정해 주기 위해,
용수와 그 제자인 아리야제바는 대승경전에서 추출한 공의 교리를 퍼뜨리게 되는데,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이런 공의 교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공견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무착(無着, 395~470경)보살이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 신통력을 얻어
도솔천의 미륵보살로부터 『유가사지론』 등을 전수 받았다.’
이후 소승불교도였던 세친(世親, 400~480경)이
그 형인 무착의 설득에 의해 대승으로 전향하였고
『유식삼십송』 등을 저술하여 유식학의 교리를 널리 알리게 되었다.
유식의 교리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으로는 『해심밀경』을 들 수 있으며,
『화엄경』이나 『입능가경』 등도 넓은 의미에서 유식학의 소의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논서로는 미륵의 『유가사지론』 외에,
무착의 『섭대승론』, 세친의 『유식삼십송』이 있다.
또 호법(6세기경)의 설을 정통으로 삼아 『유식삼십송』에 대한
십대 논사의 주석들을 비판적으로 재편집한 『성유식론』이 있다.
2) 모든 존재에 대한 유식학적 분류 - 8식설과 5위 100법설
『아함경』 등 초기불교 경전에서는 우리의 마음, 즉 식(識)을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의 6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유식학에서는 이 중 의식을 다시 ‘의식과 마나식, 아뢰야식’으로 세분하여
우리의 마음을 8가지로 분류하였다.
대개 ‘의식’은 따지거나, 회상하거나, 상상하는 등의 기능을 하며,
‘마나식’은 ‘무아의 이치를 모르는 어리석음[我癡]’,
‘내가 있다는 착각[我見]’, ‘내가 잘났다는 교만심[我慢]’,
‘착각된 자아에 대해 애착하는 마음[我愛]’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우리의 자의식과 이기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세상만사를 수렴하고 방출하는 가장 근원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이 ‘아뢰야식’에 저장되었다가,
시기가 무르익으면 우리가 체험하는 과보가 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짓는 업들은 아직 덜 익은 풋과일과 같은 모습으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후에 새로 짓는 업들은 마치 비료의 작용과 같이
덜 익은 그 업의 열매(씨앗)가 성숙하도록 돕는다[現行熏種子].
그리고 열매가 완전히 성숙하면
씨앗은 과보의 싹으로 변화하여 우리에게 체험되는 것이다[種子生現行].
이와 같은 업과 과보에 대한 설명을 ‘아뢰야연기론(阿賴耶緣起論)’이라고 부른다.
유식학에서는 앞서 설명한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마나식, 아뢰야식의
8가지 마음을 심왕(心王)이라고 한다.
‘굵은 마음’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런 심왕 내에서는 분노, 느낌, 질투, 집중, 탐욕, 우울, 추구, 믿음 등
갖가지 마음작용이 일어난다.
이런 ‘작은 마음작용들’을 심소(心所)라고 부르는데
『성유식론』에서는 심소의 종류를 총 51가지로 분류하였다.
51가지 심소법 중 느낌[受]과 생각[想]을 제외한 49가지는
모두 5온 중 행온(行蘊)에 해당한다.
그런데 심소에 소속된 이런 49가지 행은 마음과 관계된 행,
다시 말해서 유정류(有情類)에게만 존재할 수 있는 행[조작]이지만
이 중에는 마음과 무관한 행들도 있다.
이를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문장[句]’이나 ‘발생[生]’과 같은 행법(行法)은
유정류에게도 있을 수 있고, 무정물(無情物)에게도 있을 수 있다.
‘문장’의 경우 유정류인 우리가 입으로 작성할 수도 있으나
무정물인 책에 글로 쓰여 있을 수도 있으며,
‘발생’의 경우, 우리에게서 아픔이 발생할 수도 있으나,
무정물인 번개 역시 발생할 수 있기에
이런 행법들은 ‘반드시 마음과 함께 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행법’이 아니다.
그래서 이를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 마음과 무관한 행법)이라고 부르며
『성유식론』에서는 ‘문장’과 ‘발생’을 포함하여 총 24가지 종류를 들어 설명하였다.
또한 물질 또는 형상을 의미하는 색법(色法)으로는
우리의 감각기관인 5근과 감각대상인 5경,
또 지계(持戒)나 파계(破戒)를 다짐할 때 제6의식 내에 형성되는 색법인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 생각의 영역에 존재하는 물질)의 11가지가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법들은
소위 ‘인연이 모여 형성된 법’이라 하여 이를 유위법이라고 한다.
이와 반대로 ‘인연소생의 법’이 아닌 것들을 무위법이라고 하는데,
『성유식론』에서는 무위법으로 허공과 진여 등 6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이상에서 세상만사에 대한 유식학의 분류법인
5위100법 이론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세상만사는 8가지 심왕법, 51가지 심소법, 11가지 색법, 24가지 심불상응행법
그리고 6가지 무위법 등 다섯 부류의 총 100가지 법들이 얽혀서 전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맛있는 떡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을 때,
심왕법 중 안식과 의식과 마나식과 아뢰야식이 작용하고
심소법 중에서는 느낌[受], 생각[想] 등과 욕망[欲], 집중[定] 등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소승 부파 중 설일체유부의 교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세친의 『구사론』에서는 모든 존재를 ‘5위 75법’으로 분류하는데,
그 취지 역시 유식의 ‘5위 100법’ 이론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체험을 법의 조합으로 분석해 내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체험을 법의 조합으로 분석한 후
그런 법들 중에서 ‘번뇌’나 ‘착하지 못한 마음[不善]’에 해당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갈 경우 우리의 인격은 향상하며
궁극적으로 성인의 길에 가까이 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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