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3. 천태(2)
십경십승관법(十境十乘觀法)
‘십경십승관법’은 깨달음을 이루는 방법을 설명한 것이다.
가령, 수행을 하는데 번뇌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수행 중에 병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시 수행하다가 적은 것을 얻고서 완전한 도를 얻었다고 잘못 생각하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점 때문에 천태대사 지의는 10경(十境)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십승관법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10가지 방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의 경지가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할지라도
방법이 명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므로
그 방법에 대해 열 가지로 정리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 십승관법의 의미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지식 또는 지혜만 가지고는 곤란하고 자비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지관을 닦아야 하고
넷째, 자기가 어느 정도 수행이 익었는지 알아야 하며
다섯째, 진리에 대한 애착마저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넷째와 다섯째 내용이다.
넷째 내용은 보통 수행자가 조그마한 경지를 얻고서
쉽게 만족해 버리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한국 선종의 풍토는 대체로 이론적인 것을 분별 집착으로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최소한 자기가 어느 정도 수행이 완성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교학(敎學)의 지식은 필수적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다섯째 내용은 불교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불교의 궁극경지에 이르러서는 불법에 대한 집착마저 버려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십경십승관법에서 ‘십경’은 지관(止觀)의 대상이 되는 10가지 경계를 말하는 것이고,
‘십승’은 지관을 닦는 사람이 행하는 10가지 방법이다.
‘십승’이라고 한 것은 이것이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마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경의 하나 하나에 대해서 십승관법을 행하는 것이 십경십승관법이다.
십경(十境) : 관찰할 대상
십경은 『마하지관』에서 관조할 대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중에서 처음에 말하는 음계입경(陰界入境)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 9가지 경계는 생길 때마다 관조하는 대상이다.
그 내용을 살펴본다.
첫째, 음계입경(陰界入境)이다.
‘음(陰)’은 오음(五陰)이고, ‘계(界)’는 십팔계(十八界)이며, ‘입(入)’은 십이입(十二入)이다.
이 ‘음계입경’이 맨 처음에 제시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늘 눈앞에 펼쳐 있어서 항상 관조할 대상이 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경전에서 음계입경이 맨 처음에 관조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번뇌경(煩惱境)이다.
이는 오음(五陰)의 과(果)를 관찰할 때 번뇌가 발동하는 것이다.
보통 때에도 우리 마음속에 번뇌가 움직이고 있지만,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오음을 관찰할 때, 그 속에서 번뇌가 활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음계입경’ 다음에 ‘번뇌경’이 일어나는 것이다.
셋째, 병환경(病患境)이다.
병을 이루는 요소를 살펴보면,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4대(四大)는 몸의 병을 이루는 것이고,
탐(貪)ㆍ진(瞋)ㆍ치(痴)의 3독(三毒)은 마음의 병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평소에는 잘 섞여 있어서 느끼지 못하다가
‘번뇌경’으로 인해서 4대가 어지럽게 날뛰게 되어
맥과 장기에 충격을 주게 되면 병환이 생기는 것이다.
넷째, 업상경(業相境)이다.
이는 병환이 제거되어서 몸이 튼튼해지면,
선(善)을 행하기도 하고 악(惡)을 행하기도 해서,
결국 업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환경’ 다음에 ‘업상경’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업상경’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업(業)이 있다고 한다.
다섯째, 마사경(魔事境)이다.
이는 도(道)를 가로막는 경계이다.
앞의 ‘업상경’에서 수행자는 악(惡)이 생기면 없애려고 하고,
선(善)이 생기려고 하면 더욱 확장하려고 한다.
이 때 마(魔)는 그러한 수행자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유혹의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
그래서 ‘업상경’ 다음에 ‘마사경’을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선정경(禪定境)이다.
이는 정신 통일된 삼매의 경지에서 생기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마사경’을 넘어서면 공덕이 생기게 된다.
이미 마(魔)의 유혹을 이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러 선정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선정은 과거의 생(生)에 닦은 수행의 힘에 근거해서 생기기도 하고,
금생(今生)의 수행에 의지해서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선정에 들어가는 모습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일곱째, 제견경(諸見境)이다.
이는 ‘선정경’에서 삿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수행자는 사물을 잘못 보게 되어서 뒤집어진 생각,
곧 전도망상(顚倒妄想)을 하게 된다.
이처럼 삿된 생각이 넘쳐흐르는 것을 ‘제견경’이라고 한다.
여덟째, 증상만경(增上慢境)이다.
이는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앞의 ‘제견경’에서 생긴 치우친 견해가 잘못된 줄 알아서
집착을 그치면 탐욕과 성냄이 일어나지 않지만,
근기가 둔한 사람은 이 탐욕과 성냄이 없는 상태를
불교의 최고 경지인 열반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해서 교만한 마음을 낸다.
이것을 증상만경(增上慢境)에 빠졌다고 하고,
이런 부류의 사람을 ‘증상만인(增上慢人)’이라고 한다.
아홉째, 이승경(二乘境)이다.
이는 2승의 견해에 떨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제견경’과 ‘증상만경’을 넘어서서 마음이 고요한 경지에 들어갔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세(過去世)에 익힌 소승(小乘)의 기질이 생겨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2승의 경지에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이승경’이다.
열째, 보살경(菩薩境)이다.
이는 보살이 떨어지지 쉬운 경계이다.
원래 보살이라면 서원(誓願)이 있기 때문에
공(空)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방편을 중시하기 때문에 유혹에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보살에도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혹을 넘어서기 위해서 ‘보살경’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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