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 -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 3. 천태 (3)

문성식 2016. 11. 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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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가르침】
      제3절 불교 교리의 전개 3. 천태(3)
        십승관법(十乘觀法) : 관찰하는 방법 첫째, 관부사의경(觀不思議境)의 내용은 앞에서 소개한 ‘일념삼천설’과 ‘일심삼관’이다. 둘째, 발진정보리심(發眞正菩提心)이다. 앞에서 말한 ‘부사의경’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실하고 바른 보리심을 일으킨다. 그 내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정리된다. 이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것, 모든 번뇌를 끊겠다는 것, 모든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것,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는 것이다. 셋째, 선교안심(善巧安心)이다. 이는 지관(止觀)으로 진리의 본성인 법성(法性)에 안주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원(願)을 세우고 지관수행을 뜻하는 실천에 힘쓰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파법편(破法遍)이다. 이는 중생이 전도(顚倒)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물론 앞의 ‘선교안심’의 단계에서 지관으로 마음을 편안히 하였다면, 선정과 지혜가 열리어 다시 번뇌를 깨뜨린다고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법성(法性)과 상응하지 못한 수행자가 있다면, 선정을 함축한 지혜를 잘 활용해서 번뇌를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뒤집힌 생각을 깨뜨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 식통색(識通塞)이다. 앞에서 말한 ‘파법편’이 철저하였다면, 생겨남이 없는 본래의 경지 곧 무생(無生)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인생도 그렇듯이 수행도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 경우 무생(無生)의 경지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옳고 그르다는 분별의 생각에 막혀서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통색’에서는 자기가 어디서 막히고, 어디는 통했는지를 돌이켜 보아 수행에 힘쓰는 것이다. 여섯째, 도품조적(道品調適)이다. 이는 37도품(道品)으로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고 소승의 수행방법을 활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승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소송의 방법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이 안에 숨어 있다. 37도품은 지혜를 얻기 위한 부파불교의 여러 가지 수행방법이다. 일곱째, 조도대치(助道對治)이다. 근기가 둔하고 번뇌가 두터운 사람의 경우, 37도품으로도 공(空)ㆍ무상(無相)ㆍ무언(無願)의 3해탈문(三解脫門)을 곧 열지 못하여 수행의 길을 전념할 수 없게 된다. 이 때, 번뇌를 끊는 대치(對治)의 도(道)로써 번뇌의 장벽을 깨뜨릴 필요가 있고, 그러면 해탈문에 편안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덟째, 명차위(明次位)이다. 이는 자기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대승과 소승의 수행방법을 모두 사용하였는데도 크게 진전이 없다면, 자신이 어디에서 막혀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기가 증득한 것과 증득하지 못한 것을 분명히 알고, 증득하지 못한 것을 증득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홉째, 능안인(能安忍)이다. 처음 ‘관불가사의경’부터 ‘명차위’의 단계까지 수행해서 장애를 지혜로 바꾸었다고 하자. 여기서도 사람에 따라 처하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도 어떤 사람은 수행단계의 하나인 ‘초품제자위(初品弟子位)’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초품제자위’에 들어가서 지혜가 밝고 분명하기도 하다. 초품제자위는 범부가 닦는 다섯 단계의 수행 중 처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사람에 따라 수행의 내용이 달라진다. 지혜가 밝고 분명한 수행자라면, 마치 큰 코끼리가 무리를 단속하듯이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상에 나서지 말고 삼매를 닦는 데 전념해야 한다. 왜냐하면 수행이 완성되어서 깨달음의 힘이 드러날 때, 교화를 행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외부의 유혹에 대해서는 사양하고 은둔하고 떠나게 되면 감당할 수 있을 것이고, 내부의 번뇌에 대해서는 공(空)ㆍ가(伽)ㆍ중(中)의 일심삼관의 이치를 관찰하면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열째, 무법애(無法愛)이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法)에 대한 애착(愛着)이 없는 것이다. 위의 9가지 관법을 잘 닦으면, 모든 장애를 넘어서서 참된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9가지 관법을 닦고도 참된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애착해서 거기에 머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한다. 이 때에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애착, 곧 법애(法愛)를 깨뜨릴 필요가 있다. 그것을 깨뜨리면 3해탈에 들어가 진정한 중도를 일으킬 것이고 그 때 자연히 모든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서 불교 최고의 경지인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머물게 된다. 『법화경』의 해제 불교는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삼승(三乘)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이것들이 궁극에는 근본적인 가르침인 일승(一乘)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 『법화경』 사상의 핵심이다. 삼승이 존재하는 이유는 중생의 소질을 의미하는 근기(根機)가 여러 종류이므로, 거기에 맞추어서 부처님이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가르침의 목적은 중생을 부처가 되게 하는 데 있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일승의 가르침이다. 이점을 『법화경』에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비유를 살펴본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는 ‘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유한 것이고, ‘여러 가지 초목’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가섭이여!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강과 계곡과 땅에서 자란 나무와 수풀과 약초가 여러 종류이고 이름과 그 색깔이 각기 다르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에워싸서 한꺼번에 비가 내린다. 그 비가 널리 내리면 나무와 수풀과 약초 중에서 작은 뿌리와 줄기, 작은 가지와 잎, 중간의 뿌리와 줄기, 중간의 가지와 중간의 입, 큰 뿌리와 줄기, 큰 가지와 입을 가릴 것 없이 모두 비를 맞는다. 한 가지 구름에서 생겨난 비에 의해 각각의 나무가 자기의 성질에 맞추어서 자라난다. 그래서 꽃과 열매가 맺어진다. 이렇게 비록 한 가지 땅에서 생기고, 한 가지 비에 의해 적셔졌지만 모든 초목은 다 차이가 있다. 『법화경』 그리고 그와 상응해서 그 가르침을 말씀하시는 부처님도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부처님으로 바뀐다. 그 가르침이 일승이어서 모든 중생을 부처가 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가르침을 말씀하신 부처님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나아가 일승의 가르침을 듣는 중생도 모두 부처가 된다. 긴 세월을 두고 본다면, 모두 부처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바달다’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해치려고 하였던 극악한 사람도 결국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여인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사가라 용왕의 여덟 살 난 딸을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승의 가르침과 그것을 전해 주는 영원히 존재하는 부처님과 궁극에는 부처가 될 수 있는 중생의 존재, 이 삼각관계가 『법화경』의 핵심이다. 한편 이러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법화경』에는 여러 가지 원본이 존재한다. 첫째, 산스크리트어본(여러 가지가 있는데, 사본이 발견된 지방에 따라 네팔계, 카쉬미르계, 중앙아시아계로 구분된다) 둘째, 축법호(竺法護) 번역의 『정법화경(正法華經)』 10권(286년) 셋째, 구마라집(鳩摩羅什) 번역의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8권(406년) 넷째, 사나굴다(淞那堀多) 등이 번역한 『첨품묘법연화경(添品妙法蓮華經)』 7권 (601년) 다섯째, 티베트어본 등이다. 이 가운데에서 한역경전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고, 이것에 일부분을 보충하고 정정한 것이 『첨품묘법연화경』이며, 『정법화경』은 난해한 번역으로 알려져서 잘 읽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