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불교란?』 제16장 깨달음을 향하여 - 3. 중생의 근기에 상·중·하의 차이가 있다는데

문성식 2016. 11. 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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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장 깨달음을 향하여 
        3. 중생의 근기에 상·중·하의 차이가 있다는데
        모든 사람에게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성품과 지혜가 이미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깨달을 수 있는 지혜는 반야이며, 깨달을 수 있는 성품은 불성입니다. 반야와 불성은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혹한 중생은 진리가 있다 하나 들으려 하지 않고 지혜가 있다 하여도 닦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에 무지는 번뇌를 낳고 번뇌에 덮인 마음은 어떤 지혜의 화살을 쏘아도 닿을 수 없는 번뇌장이라는 갑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번뇌장이 두터워지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게 되므로 상·중·하의 근기라는 차별적 용어가 성립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래 근기라는 뜻 속에는 불성의 성품과 반야의 지혜를 근본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지닌 불성 자체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나 진리의 법을 듣고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반야의 지혜는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차별이 없습니다. 다만 번뇌가 쌓인 번뇌장의 두께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상·중·하 근기의 차이는 반야지혜와 불성의 개인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부들의 번뇌의 정도차를 말하는 것입니다. 6조 혜능선사도 반야지혜를 갖추는데 있어 누구에게나 지혜의 차별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로 하근기 중생 또는 상근기 중생이라 하는 것은 진리에 어두운 정도를 말하므로 성품을 닦고 지혜를 발견하면 번뇌장의 잠옷은 그 순간부터 없어지는 것입니다. 《원각경》에서는 '정법의 바른 수행문을 만나면 근기의 대소차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성불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상·중·하의 여러 근기도 정법의 가르침을 만나면 결국은 깨달음의 한 길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제3장 15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