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서 조선(朝鮮) 중종조(中宗朝)의 명신(名臣)이며 학자(學者)였던 권벌종손가(權벌宗孫家)에는 태종(太宗)14년(1414) 황보인(皇甫仁)의 문과방목(文科榜目)을 비롯하여 성종년간(成宗年間)의 충재(沖齋) 모친(母親) 윤씨(尹氏) 남매분재기(男妹分財記), 중종년간(中宗年間)에 발급된 충재(沖齋)의 교서(敎書), 유서(諭書), 유지(有旨), 교지(敎旨), 그리고 소지(所志), 명문(明文), 입안(立案) 등 570년간에 걸쳐 전래한 고문서(古文書)가 수십종, 1,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는데, 그중에 15종 274점만 선별 조사하였다.

당초, 제문(祭文), 간찰(簡札) 등을 제외한 완문(完文), 상언(上言), 완의(完議), 감결(甘結) 등도 조사하였는데, 예외(例外)가 있기는 하나, 만력(萬曆) 이후의 문서(文書)는 일차회의(一次會議)에서 제외시켰다. 그리고 정덕(正德)4년(1509)의 연산군일기세초도(燕山君日記洗草圖), 선조(宣祖)8년의 산릉도감제명록(山陵都監題名錄), 숙종(肅宗)14년의 왕세자책례도감계병(王世子冊禮都監계屛) 등은 원래 회화(繪畵)로 분류되었으나, 2건은 도(圖)의 박락(剝落)으로, 1건은 작품(作品)의 치졸(稚拙)로 제외되고 각각 사료적(史料的)인 가치가 높다 하여 고문서(古文書)에 포함시켰다.

영락갑오친시방(永樂甲午親試榜)(1414)은 현재 발견된 방목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시권(試券)과 함께 과거제도(科擧制度)연구에, 분재기(分財記) ·명문(明文) ·소지(所志) ·호적단자(戶籍單子) 등은 경제(經濟) ·사회(社會) ·가족제도(家族制度) 연구에 교서(敎書) ·유서(諭書) ·유지(有旨) ·교지(敎旨) 등은 조선전기(朝鮮前期) 정치(政治) ·인사행정제도(人事行政制度) 연구에, 각각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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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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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릉도감제명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