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24.jpg 저자(著者) 이탁영(李擢英) (중종 36, 1541∼광해 2, 1610).

자(字)는 자수(子秀), 호(號)는 반계(盤溪) 또는 이사재(李思齋), 본관(本貫)은 경주(慶州). 영리(營吏)로서 임란(壬亂)이 발발하자 순찰사(巡察使) 몽촌(夢村) 김수의 막하(幕下)에 들어가 참모로 활약하였으며, 김수가 근왕병(勤王兵)을 이끌고 수원(水原)까지 진군(進軍)하였을 때에도 수종(隨從)하여 헌책(獻策)한 바가 많았다. 1593년(선조 26)에는 초유사(招諭使)와 경상좌감사(慶尙左監司)를 지낸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의 막하(幕下)에서 초병(招兵) 및 모량(募粮) 등의 방책(方策)을 건의하여 전승(戰勝)에 공헌한 바가 많았다. 그리고 두 관찰사의 막하에서 대소문보(大小文報)를 대작(代作)한 바가 많은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평란후(平亂後) 논상(論賞)에는 굳이 사양하였으며 효행이 특출하였다 한다. 숙종(肅宗) 때 평란(平亂)의 공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정조(正祖) 때 충효사(忠孝祠)가 세워졌다.

저서(著書)로는《정만록(征蠻錄)》효사재문집《(孝思齋文集)》이 전한다.

이《정만록(征蠻錄)》은 원래 저자(著者)가 임란시(壬亂時) 진중(陣中)에서《임진변생후일록(壬辰變生後日錄)》이란 제목(題目)으로 초(草)하여 두었던 것이다. 난(亂)이 평정(平定)된 선조 34년(1601)에 도체찰사(都體察使) 이원익(李元翼)이 경상감사(慶尙監司) 이시발(李時發)을 시켜 도내(道內)의 사적을 채집케 하였는데 이 때 저자가 이 일록을 재정리하여 제출하였던 바, 이를 어람(御覽)한 왕은 정만록(征蠻錄)이라 명명하여 계하(啓下)하였다. 건권(乾卷) : 표지 이면(裏面)에 임진록(任辰錄) 제하(題下)에 임난 당시의 참전한 영상(領相)이하 군관(軍官)의 좌목(座目)이 있고 다음에 임진변생후일록(壬辰變生後日錄)이란 제하(題下)에 월일(月日)을 별행(別行)하여 그날 그날의 듣고, 보고, 겪고, 느낀점을 기록하였다. 권말 여백에는 1712년(숙종38년)에 쓴 보만당주인(保晩堂主人) 안연석(安鍊石)의 자작자필(自作自筆)의 후지(後識)가 있는데 저자(著者)의 충효(忠孝)와 재능(才能)을 찬양하고 있다.

곤권(坤卷) : 먼저, 임란(壬亂)의 개황(槪況)과 이 일록(日錄) 및 연혁(沿革) ·통문(通文) 등을 기록하거나 등서(謄書)하게 된 연유를 6면(面)에 걸쳐 자세히 적은 자서(自序)가 있고, 이어 7년 동안에 있었던 중요한 교서(敎書) ·장계(狀啓) ·통문(通文) ·첩보(牒報) ·치보(馳報) ·격문(檄文) 등을 전재(轉載)하고 있는데 당시 조야(朝野)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資料)다. 권말(卷末)에 일본(日本)에 피로(被虜)된 명인(明人) 허의후(許儀後)가 자국(自國)에 진달(陣達)한 기밀봉사(機密封事)를 전재하고 있는데 즉 진일본지상(陣日本之詳) ·진일본입구지유(陣日本入寇之由) ·진어구지책(陣禦寇之策) ·진일본관백지유(陣日本關白之由) ·진일본육십육국지명(陣日本六十六國之名) 등 6조로 당시 일본(日本)의 사정을 살피는 자료이다.

임란(壬亂)에 관한 기록(記錄)으로는《선묘보감(宣廟寶鑑)》을 비롯하여 이순신(李舜臣) 난중일기(亂中日記)》, 유성룡(柳成龍)《징비록(懲비錄)》, 조경남(趙慶男)의《난중잡록(亂中雜錄)》, 신경(申炅)의《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 이노(李魯)의《용사사적(龍蛇事蹟)》 등 수십 종(種)에 달하고 자필본(自筆本)으로서는《난중일기(亂中日記)》와《징비록 (懲비錄)》이 대표적인 것임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라 하겠다.

이《정만록(征蠻錄)》은 위의 제기록(諸記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시의 적정(敵情)과 아군(我軍)의 병력배치(兵力配置)를 위시한 전투상황과 조야관민(朝野官民)의 사정을 상술(詳述)하고 있음은 물론 당시의 교서(敎書) ·유서(諭書) ·격문(檄文) ·장계(狀啓) ·치보(馳報) 등을 아울러 등초수록(謄초收錄)하고 있어 임란연구(壬亂硏究)에 큰 도움이 되는 사료(史料)가 될 것이다.

영리(營吏)의 신분으로 순찰사(巡察使)의 막하(幕下)에서 적은 일기(日記)이어서 가사의 제약성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나, 한편 임진기사(壬辰記事)는 4월 14일 임란발발일(壬亂勃發日)로부터 기필(起筆)하여 그해 연말(年末)까지 약 10일간(日間) 결기(缺記)한 것을 제외하고 거의 완전하게 적혀 있어 어느 임진란일기(壬辰亂日記)보다도 충실하고 자세하다. 특히 순찰사(巡察使) 김수가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켰을 때 함양(咸陽)에서 출발(出發), 수원(水原)까지 진군(進軍)했다가 다시 환영(還營)한 저간(這間)의 역로(歷路)의 일기(日記)는 다른 문헌(文獻)에서 볼 수 없는 기록인 듯하다. 그리고《정만록(征蠻錄)》이란 서명(書名)이 선조(宣祖)의 어정(御定)이란 점에서도 이 자료의 가치(價値)는 한층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