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73.jpg 고려시대에 만든 청자대접으로 아가리 언저리에 은테두리가 있으며, 크기는 높이 7.7㎝, 아가리 지름 18.7㎝, 밑 지름 6.3㎝이다.

 

구연부(口緣部)에 은(銀)테두리를 두른 매우 희귀한 대접으로 내면(內面)에는 양인각(陽印刻), 외면(外面)에는 상감기법(象嵌技法)을 사용하였다. 내면중앙(內面中央)에 내저원각(內底圓刻)이 있고 그 안에 화문(花文), 내측면(內側面)에 연당초문(蓮唐草文), 구부(口部)에 당초문대(唐草文帶)를 양인각(陽印刻)하였으며 외측면 세곳에는 모단절지문(牡丹折枝文)이 상감되었다.

10374.jpg 유(釉)는 문공유묘출토(文公裕墓出土) 청자(靑磁)대법의 맑고 투명한 유(釉)에 비해 다소 탁하고 반투명하며 빙렬이 있는데 굽은 다리굽으로 굽안바닥 세곳에 규석 눈받침이 있다. 대접 측면(側面)에는 길다란 균열이 하나 있고 외면 2군데와 내면(內面) 3군데에 커다란 굵은 빙렬(氷裂)이 있으며 굽다리는 몇군데 조금씩 결손된 흠이 있는데 외면(外面)의 상감문(象嵌文)에 있는 부분에 빙렬(氷裂)이 집중되어 있다.

한편 고려조 4대 광종(光宗)(재위 949~975)이 원종대사(元宗大師)에게 하사한 금구자발(金구瓷鉢)이 있다는 기록이 전해 오는데 이 금구자발이 중국자기인지 고려청자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 은구대접은 구연부(口緣部)에 은테두리를 씌운 청자로 원종대사에게 하사한 금구자발과 같은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내면에는 연당초문을 양인각하고 외면에는 모란절지문을 상감하여 내외면이 서로 다른 기법으로 시문되었다.

이와같이 이 시문방법(施文方法)은 본격적인 상감청자 유행시기로 들어가기 이전에 한면에만 상감기법이 소극적으로 사용되던 시기의 순청자와 상감청자의 혼합양식을 보여주는 현존(現存) 유일의 은구자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