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서예가 신공제(申公濟)가 우리나라 역대 명가(名家)들의 글씨를 석각(石刻)한 뒤 탁본(拓本)한 책. 2권 2책.

 

그리고 권하에는 이강(李岡)·혜근(慧勤)·성석린(成石璘)·박초(朴礎)·권근(權近이첨(李詹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민자복(閔子復) 등 12인의 글씨가 수록되어 있다.

비록, 탁본이기는 하나, 고대의 서법(書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이해철(李海徹)이 소장하고 있다.

 

※ 여주이씨 옥산문중에 소장된 유묵의 추가지정에 따른 효율적 관리를 위해 명칭변경됨.(2006.9.1)

- '해동명적(海東名蹟)'은 보물 제526-1호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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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526-1호

해동명적<상권20매 하권23매>(海東名蹟<上卷二十枚 下卷二十三枚>)

이 해동명적은 조선 중종(中宗) 때의 서예가(書藝家)이며 문신(文臣)인 신공제(申公濟)(1469∼1536) 선생이 우리나라 역대(歷代) 명가(名家)의 글씨를 모아서 석각(石刻)한 것을 탁본(拓本)하여 상하(上下) 2책(二冊)으로 엮은 것이다. 상책(上冊)에 수록된 명적으로서는 조선시대의 문종(文宗)과 성종(成宗)의 어필(御筆)을 앞에 따로 놓은 다음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김생(金生), 영업(靈業) 3인과 고려(高麗)의 탄연(坦然), 이암(李암), 신덕린(申德隣) 3인을 합한 6인의 글씨가 선록(選錄)되었다. 하책(下冊)에는 이강(李岡), 승(僧), 혜근(慧勤), 성석린(成石隣), 박초(朴礎), 권근(權近), 이첨(李詹), 정도전(鄭道傳), 정총(鄭摠), 민자복(閔子復), 신색(申穡) 등 12인의 글씨가 정선(精選)되어 실렸다. 이 명적은 탁본이라 하더라도 고대(古代)의 서법(書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신라·고려는 물론 조선 초기의 명가들의 필적(筆蹟)은 현재 금석(金石)을 통하지 않고서는 거의 얻어보기 어려운데, 이 책에는 비갈(碑碣)에 나타나지 않는 필적을 많이 수집하여 모각(模刻)하였으므로 여기서 새로운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보물  제526-2호

여주이씨옥산문중소장유묵(驪州李氏玉山門中所藏遺墨)

○ 원조오잠(元朝五箴)

‘원조오잠’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27세 때 지은 「외천잠(畏天箴)」, 「양심잠(養心箴)」, 「경신잠(敬身箴)」, 「개과잠(改過箴)」, 「독지잠(篤志箴)」을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평소 잊지 못하여 오던 중 이언적의 아들 이전인(李全仁, 호(號)는 잠계(潛溪), 1516~1568)의 요청에 의하여 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10폭에 적혀 있는 이황의 발문에 보이나 여기에는 잠계 이전인의 요청에 의해서 썼다는 기록은 없고 끝에 ‘후학 이황 근서(後學 李滉 謹書)’라고 쓴 묵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원조오잠’은 퇴계가 회재의 학문과 사상을 어떻게 보고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점을 기념물적인 친필로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원조오잠’은 광폭의 닥종이에 매폭 6행(行), 1행 16자(字), 자경(字徑) 약 8㎝ 해서(楷書)로 쓴 것이다. 발문은 4행(行), 자경 약 4㎝ 미만의 해행서체로서 글씨는 분방하거나 과장된 또는 거칠거나 연미한 필서가 전혀 없고, 단중여아(端重與雅)하여 순정한 원칙을 지키는 도학자의 풍모가 그대로 투영된 대표적 유묵(遺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퇴필(退筆)의 특징은 송설체(松雪體)의 유려한 필법 위에 왕희지 부자의 굳세고 단정한 필법을 보탠 것이라고 김인후는 전별시에서 언급하였는데, ‘원조오잠’은 이러한 퇴묵(退墨)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 것이다.

○ 사산오대(四山五臺)

이언적은 1530년 이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좌천되자 관직을 그만 두고 귀향한 뒤, 이듬해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獨樂堂) 등의 옥산정사를 짓고 주위의 승경(勝景)을 명명하였다(소위 ‘사산오대’). 이들 글씨는 그중 자옥산(紫玉山)ㆍ용추(龍湫)ㆍ귀영대(歸詠臺)ㆍ징심대(澄心臺)ㆍ세심대(洗心臺)ㆍ탁영대(濯纓臺)ㆍ관어대(觀魚臺) 7곳의 명칭을 대자(大字)로 써서 축장(軸粧)한 것들로, 회재의 아들 이전인(李全仁)이 ‘원조오잠’의 글씨를 받을 때 이 대자 편액서도 함께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퇴계의 대자서(大字書) 편액(扁額)은 도산서원의 「역락서재(亦樂書齋)」, 안동(安東)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공(禮安公) 종택(宗宅)의 「후조당(後彫堂)」, 「읍청정(?淸亭)」, 도산의 「월천서당(月川書堂)」, 예천의 「선몽대(仙夢臺)」 등 대표적인 것이 많다. 그러나 서각(書刻)을 한 편액은 존재해도 그 원본의 필적이 다 전하는 것은 아닌데, 독락당의 ‘사산오대’는 대자 편액서가 고스란히 전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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