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5.jpg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회암사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부도. 높이 2.7m.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1328)때 지공(指空)이 창건하여 조선 순조 때인 1800년대에 폐사된 사찰이다. 조선 전기 왕실의 보호를 받던 절로서 태조 이성계가 늙은 후에 머무르면서 수도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북쪽 능선 위에 지공(指空)·나옹(懶翁) 두 선사의 승탑(僧塔)과 함께 서 있는 이 부도는 고려시대 공민왕 때 연경(燕京)에 가서 지공에게 법을 구한 뒤 회암사에서 머물렀다고 하는 무학(無學)의 묘탑으로서, 8각 석단 위에 세워져 있다.

 

회암사의 주지이기도 했던 무학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약한 승려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이성계의 꿈을 풀이하여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이야기와 한양천도와 관련된 설화 등은 특히 유명하다.

 

석단은 여덟 개의 장대석(長臺石)을 2단으로 쌓아 만든 높고 널찍한 것으로, 석단의 각 모서리에는 꼭대기를 보주(寶珠)모양으로 장식한 네모난 돌기둥이 세워져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넓은 장대석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이 장대석 위로는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두어 난간을 둘렀는데, 이것은 석단 중앙의 무학대사묘탑을 보호하는 장치로서 일종의 장엄으로 볼 수 있다. 묘탑을 떠받고 있는 지대석(地臺石)은 한 장의 8각형 돌로서, 각 면에는 구름무늬를 굵은 선으로 조각하였는데 각 모서리의 구름무늬가 유난히도 크게 조식되었다.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된 기단부 중 하대석은 16엽의 복판연화문(複瓣蓮花文)이 귀꽃과 함께 화려하게 조각된 복련대(覆蓮臺)이며, 그 위의 중대석은 8각의 고복형(鼓腹形)이다.

배가 약간 부른 중대석의 각 면에는 내부에 네 모서리가 안쪽으로 접힌 네모꼴의 안상(眼象)이 조각된 방형 구획이 설정되어 있으며, 안상 가운데에는 각기 모양이 다른 꽃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앙련(仰蓮)받침과 8각받침으로 이루어진 상대석은 아랫부분에 3단의 각형 받침이 조출되어 있고 16엽의 앙련이 새겨져 있는데, 앙련의 형태와 연꽃잎 안의 장식문양은 하대석의 복련문과 같으나 귀꽃이 없다. 앙련 위의 8각받침은 각 측면에 네모꼴의 구획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각기 당초문(唐草文)을 돋을새김하였다.

그러나 굵은 선으로 조각이 되어 섬세하고 유려한 면은 감소되었다. 탑신굄이 없이 윗면이 평평하게 처리된 상대석 위의 탑신은 원형으로 표면에는 운룡문(雲龍文)이 가득히 조각되어 있다.

추녀는 평박한 편으로 모서리가 약간 치켜 올라가고, 전각은 약간의 반전이 있어 둔중함이 다소 감소되었다.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는 낙수면(落水面)에는 여덟 줄의 우동(隅棟 : 옥개석의 귀마루)이 굵게 내려와 전각에 이르는데, 하단부에 이르러서는 우동마다 용머리가 하나씩 돋을새김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옥개석 꼭대기에 구멍을 뚫고서 보주만을 설치한 간소화된 형식으로 아랫부분에는 2단의 원받침을 갖추었다. 조선시대 초기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이 부도는 무학대사묘비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1407년(태종 7)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