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25_0019.jpg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영암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높이 2.31m.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8각의 전형적인 신라석등 양식에서 간주(竿柱)만을 사자로 대치한 형식이다. 높은 8각하대석(八角下臺石)의 각 측면에는 사자로 보이는 웅크린 짐승이 한 마리씩 양각(陽刻)되었다.

 

하대석에는 단판8엽(單瓣八葉) 복련(覆蓮)이 조각되었고 꽃잎 속에는 화형(花形)이 장식되었다. 상면에는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의 굄이 있고 한 돌로 붙여서 8각주(八角柱) 대신 쌍사자를 세웠는데, 가슴을 대고 마주서서 뒷발은 복련석(覆蓮石) 위에 세우고 앞발은 들어서 상대석을 받들었으며 머리는 위를 향하였는데, 갈기와 꼬리 그리고 몸의 근육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으나 하지(下肢)에 손상이 많아 아쉽다.

 

상대석은 하대석에서와 같이 꽃잎 속에 화형이 장식된 단판8엽의 앙련석(仰蓮石)이다. 화사석(火舍石 :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은 8각 1석이고 4면에 장방형 화창(火窓)을 내었는데, 주위에 소공(小孔)이 있어 창호를 달았던 듯하며 남은 4면에는 사천왕입상이 조각되었다.

 

옥개석(屋蓋石)은 평박하고 처마 밑은 수평이며 추녀 위에는 귀꽃이 붙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전부 없어졌다. 이 석등은 1933년경 일본인들이 반출하려다 미수에 그쳐서 가회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원위치에 복원한 것이다.

이때문인지 사자의 하지에 손상을 입었고 조상(彫像)에는 마손이 보인다. 그러나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과 상통하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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