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8.jpg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사雲門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주. 높이는 제1석주의 사천왕상 114㎝, 제2석주의 사천왕상 118㎝, 제3석주의 사천왕상 128㎝, 제4석주의 사천왕상 122㎝.

 

작압전(鵲鴨殿)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 좌우에 2기씩 모두 4개의 석주가 배열되었는데 원래의 위치는 아닌 것 같다.

각 면에는 사천왕상 1구(軀)씩이 조각되었다. 이 사천왕상들은 모두 무인(武人)의 복장인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었으나,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다. 또한 원형 두광(圓形頭光)을 지니고 악귀(惡鬼)를 밟고 서 있는 자세로 천의 자락이 휘날리고 있다.

제2석주는 북방의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인데, 몸을 약간 비튼 자세이지만 거의 정면을 향한 입상이다. 오른손은 내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왼손은 어깨로 들어 탑(塔)을 받들고 있다. 악귀의 두 어깨를 밟고 서 있는 이 사천왕상은 양감이 없는 평판적인 신체에 세장(細長)하고 섬약한 체구, 온화한 얼굴 등이 앞의 사천왕상들과 유사하다.

제3석주는 서방의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으로, 무릎을 굽혀 악귀의 두 어깨를 밟고 선 자세로 왼손은 들어 불꽃〔火峰〕을 잡았으며 오른손은 내렸다.

제4석주는 동방의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서 악귀의 어깨와 엉덩이를 밟고 있다. 왼손은 내려 칼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은 들어 칼 중심을 받치고 있다.

이상과 같은 4개의 사천왕상 석주는 신체는 장대하지만 양감이 줄어든 섬약한 체구, 비교적 부드러운 얼굴 등에서 시대는 내려가지만 아직까지 양감이 뚜렷하고 세련된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880년(헌강왕 6년)에 조성된 보조선사탑(普照禪師塔) 사천왕상이나 철감선사탑(澈鑑禪師塔) 사천왕상과 비슷하다.

하지만 보다 장대해지고 갑옷의 띠주름이 굵어지는 등 형식화가 진전되어 8세기 석굴암의 사천왕상과 비교하여 시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4구의 석조사천왕상은 아마도 전탑(塼塔)의 탑신 4면에 봉안되었거나 아니면 안 벽면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