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묵 | 보물 제1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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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
소재지 | 부여박물관 |
지정일 | 1963.01.21 |
수량/면적 | 1구 |
시대 | 삼국시대 |
소유자 | 국립부여박물관 |
관리자 | 국립부여박물관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제시대의 불상. 높이 8.5㎝.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일명 정지원명금동삼존불입상(鄭智遠銘金銅三尊佛立像)이라고 하며, 1919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성(扶蘇山城)의 송월대(送月臺 : 지금의 泗沘樓)에서 발견되었다.
주형 광배(舟形光背)에 불상과 두 협시보살을 함께 붙여서 주조한 일광삼존불상(一光三尊佛像)이다. 이는 삼국시대의 불상 중에서도 특히 6세기 후반에 유행한 형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본존불은 밋밋한 머리에 육계가 큰 편이고 이목구비의 윤곽이 큼직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굵직한 U자형의 주름이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가슴에는 두 줄의 옷자락이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있다. 또한 두 팔에 걸쳐 흘러내린 옷자락은 무릎 부분에서 양옆으로 길게 뻗쳐 있다. 두 손은 비교적 크게 조각되었으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취하고 있다.
오른쪽〔向左〕의 협시보살상은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을 쓰고 있으며, 본존상의 얼굴과 같이 이목구비가 크게 표현되었다.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큰 편이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합장하였고 두터운 천의(天衣)는 무릎 부근에서 양옆으로 올라가 다시 두 팔에 걸쳐져 밖으로 길게 뻗쳐 내리고 있다.
왼쪽〔向右〕의 협시보살상은 얼굴 부분만 남기고 광배의 일부와 함께 파손되었으나 오른쪽 보살상과 같은 형식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광배는 윗부분이 뾰족한 주형 거신광배로서, 굵은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분하였다. 두광·신광의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두광 위로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화불(化佛)이 1구 있는데 공양하는 자세로 두 손을 모으고 있다. 광배의 나머지 부분은 굵은 선으로 큼직하게 불꽃무늬를 가득 새겼다.
광배의 뒷면에는 명문이 있는데 정지원(鄭智遠)이 죽은 부인 조사(趙思)를 위하여 금으로 불상을 공경하여 만들고, 삼도(三途 : 지옥도·아귀도·축생도)를 일찍 떠나게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좌는 둥근 복발형(覆鉢形 : 바리때를 엎어 놓은 모양)으로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이 음각선으로 윤곽만 간단하게 새겨져 있다.
삼존불의 표현 수법이나 조각 양식은 539년 작으로 생각되는 고구려의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 국보 제119호)과 같은 계통으로, 양식 계보상 중국 북위시대에 유행한 불상 양식을 수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형식적으로는 금동계미명삼존불(金銅癸未銘三尊佛, 국보 제72호)·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국보 제85호) 등과 같은 일광삼존불 계통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보다는 조각 수법이 조금 떨어지고 문양이 간략화되었으며 조형적인 탄력감도 많이 감소되었다. 금동불상으로는 크기가 작은 편이나 출토지가 확실한 백제시대의 불상으로서 6세기 말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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