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63.jpg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동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2기. 높이 동탑 3.85m, 서탑 3.94m.

 

이 삼층석탑(三層石塔)은 동서(東西) 탑(塔)의 쌍탑형식인데 이곳은 신라고찰(新羅古刹)이었던 남화사(覽華寺)의 옛터로 알려져 있다.

신라 문무왕(文武王) 16년(675)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6km 지점에 있는 춘양면(春陽面) 석현리(石峴里)의 현(現) 각화사(覺華寺)를 창건(創建)하면서 남화사를 폐하였다고 전한다.

 

춘양중학교 교정 한쪽에 같은 규모와 양식을 가진 2기의 탑이 13.5m의 거리를 두고 동서로 마주 서 있다. 형식은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층층이 쌓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8368.jpg 지대석(地臺石)과 하층기단 중석(中石)을 한데 붙여서 각 면에 1개씩 세워 4매의 돌로 구성하고 중석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중앙에 탱주(撑柱 : 받침기둥) 1개씩을 모각하였다. 갑석(甲石)은 동서로 긴 2매 판석으로 덮였고 윗면은 약간 경사를 이룬 중앙에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의 2단 굄이 있어서 상층기단 중석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면마다 1매 판석을 세워서 구성하고 하층기단 중석에서와 같이 각 면 좌우에 우주, 중앙에 탱주를 모각하였다. 갑석은 1매 판석으로 덮였고 윗면에는 각형과 호형의 탑신받침을, 밑에는 부연(副椽 :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각각 새겼다.

탑신부는 각 층의 옥신(屋身)과 옥개석(屋蓋石)을 각각 1석씩으로 쌓았고, 옥신에는 각각 우주가 표시되었으며 옥개석의 받침은 각 층 4단이다. 상륜부(相輪部)는 서탑의 노반(露盤)만을 남기고 모두 없어졌다.

 

이 탑이 있는 근처에는 절터를 확인할 만한 유물이 없어 소속 사찰이름을 알 수 없으나 금당(金堂) 앞에 2기의 탑을 건립하는 쌍탑식가람(雙塔式伽藍)이었음이 분명하다.

또 탱주수가 1개로 줄고 옥개석 받침이 4단으로 줄었고 따라서 탑의 전체 규모도 축소되었으나, 우리 나라 석탑의 전형양식을 충실히 따랐으며 석재의 구성에서도 규율성이 있고 상하의 비례 또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와 같은 축소경향은 제작연대의 하강과 그 분포가 지방으로 확산되는 데 따르는 약식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1962년 2기의 석탑을 해체 보수하였을 때 동탑 제1층 옥신 중앙의 깊이 10㎝의 사리공(舍利孔) 안에서 중앙에 짙은 녹색 유리제 사리병을 넣은 활석제의 뚜껑이 있는 원호(圓壺)와 그 주위에 소형토탑 99기가 둘러져 있는 사리장엄구가 원형대로 발견되었다.

또 서탑에는 제3층 옥신에 사리공이 있었고 그 바닥 중앙에 타원형의 홈이 패어 있음이 확인되었을 뿐 사리장치는 없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