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일곱 번
봉인된 두루마리가 들려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본다.
어린양이 그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그들은 그분을 찬양하며 새 노래를 부른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신다.
그 도성이 당신께서 보여 주신 평화의 길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다(복음).
<어린양은 살해되시고, 자신의 피로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셨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5,1-10
나 요한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팎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큰 소리로,
“이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 자 누구인가?”
하고 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도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슬피 울었습니다.
그런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라. 보라,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여 일곱 봉인을 뜯고 두루마리를 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시자,
네 생물과 스물네 원로가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수금과, 또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향이 가득 담긴 금 대접들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님께서는 두루마리를 받아, 봉인을 뜯기에 합당하십니다.
주님께서 살해되시고, 또 주님의 피로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속량하시어 하느님께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한 나라를 이루고 사제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들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멸망할 예루살렘의 운명을 알고 우십니다.
이 장면은 바로 앞에 나오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하는
모습(19,28-40)과는 극도의 대조를 이룹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명확히 예언하시는 담화는 21장에 나옵니다. 이러한 예언은
다른 공관 복음인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도 볼 수 있고,
구약의 예언서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은 루카 복음만이 전합니다.
이로써 이 도시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연민을 보여 줍니다.
루카 복음은 이미 13장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어버이 같은 사랑으로 구하려 하셨는지를 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비극적 운명이 그들이
‘평화의 길’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이
‘평화’라는 뜻의 ‘살렘’이라는 낱말을 담고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비극적 역설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 도시의 현실을 떠올리게 됩니다.
세 가지 세계 종교의 성지를 품고 있는
거룩한 곳이면서도 오늘날 지독한 반목과 폭력,
배타성의 상징이 되고 있는 역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캐나다 출신의 만화가 기 들릴은 2011년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활동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체험한 평범한 일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실상, 특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을 만화의 형식에
담아 『굿모닝 예루살렘』이라는 훌륭한 책을 냈습니다.
그는 아내가 아파서 예루살렘의 한 대학 병원을 찾은 일화를 전합니다.
그 병원의 유다인 회당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샤갈의 걸작
유리화가 있습니다. 그 마지막 그림이 ‘담이 없는 예루살렘’인 것을
본 저자는 감동하며 “아마도 샤갈은 이 성스러운 도시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통한 마음에 함께하며, 이 도시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