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15.jpg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 정자는 여강이씨 문중에서 세운 것으로 조선 명종 15년(1560)경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정자는 철종 때에 행랑채를 빼고 화재로 모두 타 버려 1917년 원래 모습을 살려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구성은 크게 따로 담장을 둘러 세운 정자와 담장 밖에 있는 행랑채로 구분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곧 오른편 남산(南山) 오르막 대지에 세워진 정자(亭子)이다. 양동(良洞)마을의 내 ·외에는 여러 정자가 있어 손(孫) ·이(李) 양씨들은 각파종중(各派宗中)마다 정자가 있다고 한다. 심수정(心水亭)은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인데 향단파(香壇派)의 소유이다. 정자는 ㄱ자형 평면을 이루었으며 ㄱ자로 꺾인 모서리가 북촌(北村)을 향했으므로 대각남향(對角南向)집이 되는 셈이다.

7016.jpg 정자의 중심부에 자리한 대청(大廳)은 7간이고 서단(西端)의 누(樓)마루는 대(大)1간에 3면의 난간마루를 돌렸고 그 둘레에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부설하였다. 온돌방은 동단(東端)에 2간, 서정(西亭) 중간에 1간으로 모두 3간을 두어 큰 정자로서 필요한 간수와 기능안배를 고루 배려한 것을 알 수 있다. 정자마루에서는 도랑 건너편 북촌 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누하(樓下) 언덕배기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울창하여 아랫마을에서 올려다보는 하절경관(夏節景觀)은 웅장한 맛이 있다. 정자 뒤에도 역시 약간의 노목이 우거진 경사진 후원(後園)이고 전면에 행랑채가 둘러서 있어 이 정자가 큰 산을 앞에 두고 남향하는데 시각적 무리는 완화하는 셈이다. 모든 기둥은 두리기둥이며 대청의 대들보는 고주(高柱)없이 전후평주(前後平柱)에 그대로 걸었다. 홑처마에 맞배지붕이고 첨하에 “심수정(心水亭) ” 편액(扁額)을 걸었다. 따로 담장을 둘렀고, 행랑채는 담장 밖에서 정자를 향해 세워졌다.

행랑채는 방, 마루, 방, 부엌, 광의 순으로 1간씩 구성된 ㄱ자집인데, 부엌은 대략 간반에 이르고 광은 5척 남짓한 좁은 1간이다. 이 정자를 지키는 행랑집으로 지어진 고격(古格)있는 소가(小家)로서 굵은 각주(角柱)와 마루귀틀, 청판 등 건실하게 구성된 집이다. 이러한 방, 마루, 방, 부엌으로 연속되는 一자형 구성은 남부지방 민가의 한 기본형으로 가장 흔한 유형이지만 이집은 부엌을 전면으로 연장하였기 때문에 ㄱ자형이 된 것이다.

심수정(心水亭)은 1506년경에 초건(初建)된 것이었다고 하나 철종(哲宗) 때에 한번 소실된 일이 있었고 지금의 집은 1917년 중건한 것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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