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
중요민속자료 제7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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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89 |
소재지 | 강동면 |
지정일 | 1979.01.23 |
수량/면적 | 일곽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 | 이석천 |
관리자 | 이석천 |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양동 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동족마을로, 넓은 안강평야에 오랜 전통을 지닌 여러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이집은 온양군수를 지낸 이향정(二香亭) 이범중 선생이 살던 곳으로 집 이름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었다고 하며 양동 마을 안골로 들어가는 동구 첫 어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크게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 광채가 튼ㅁ자형으로 배치된 집이다. 사랑채를 구조면에서 안채와 분리시키고 있는 점은 이동기씨(李東琦氏) 가옥의 경우와 공통이나 이향정(二香亭)의 경우는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두채가 대각적 배치를 보이는 점에서 중부지방의 대가들이나 서울집의 대가들이 지니는 평면 배치와 양식적으로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채의 부엌 뒤편에는 방앗간채를 들여 앉혔는데 방앗간을 뒤꼍에 둔 것은 서백당(書百堂)의 경우와 같다. 방앗간이 있는 뒤울안은 비교적 촉박(促迫)하나 안채 뒤울안과 사랑마당을 잇는 터는 여유있게 담장을 돌렸으며 남쪽 중심부를 터서 대문으로 하였다. 이 토담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동단(東端)에 마련된 안대문을 지나 안마당에 이르게 된다.
안채는 평면이 ㄱ자형에 그쳤으나 안방과 부엌과의 고패관계는 이 지역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부엌을 3간이나 배정한 점도 이 마을 큰집들과 공통되는 격식을 나타내고 있다. 안방과 건넌방에 퇴(退)마루를 두었고 퇴주(退柱)와 대청 기둥은 모두 방주(方柱)이다. 2간통(間通)의 안방과 대청 뒤편에는 3간을 연이은 쪽마루를 부설하였다. 안방 툇마루의 부엌머리에는 외짝 여닫이 문을 달아 뜰아래로 내려서지 않고 마루에서 직접 부엌에 내려서게 고안되어 있으며 또 건넌방 툇마루 끝은 터놓지 않고 퇴간측벽으로 마금을 치고 역시 외짝 여닫이 문을 달고 있다. 이 퇴간측벽(退間側壁)의 설치는 건넌방의 뒤편이나 아래로 연결되는 온돌방이나 고방, 부엌과 같은 부대공간의 마련이 전혀 없으므로 그 허술한 주위를 일부나마 안전하게 꾸미려는 의도로 짐작된다. 부엌 아래로는 2간의 마루고방과 그 끝에 쪽마루 있는 온돌방 1간이 마련되어 있다. 온돌방에는 고방사이에 4분합을 달아 놓고 있으나 고방마루는 이 아랫방의 청(廳)으로도 겸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집의 방들은 안방과 건넌방, 이 아랫방 외에는 따로 여유가 없으므로 이 방이 안사랑 혹은 작은사랑의 기능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랑채는 길이가 6간, 너비 간반이며 전퇴(前退)를 두었다. 그 대청 전면에는 2간에 모두 4분합들문을 달았고 큰사랑과 건넌방의 대청쪽에는 모두 같은 들문을 달았다. 이 대청의 후면은 건넌방쪽 1간에만 쌍여닫이를 달아 안채와의 통로로 삼았다. 사랑큰방 뒤로는 부엌과 툇마루가 있는 서실(書室)을 꾸며서 기능상의 변화를 꾀하였고, 사랑건넌방의 전면과 측면 마루는 넓게 확장한 위에 마루 끝에는 아자난간(亞子欄干)을 돌려서 다소나마 누마루적 정취를 보이고 있다.
안채의 기단이나 안마당보다 한단 낮은 서편 터에 안채와 마주보는 아래채가 있다. 아래채는 길이 6간, 너비 1간이며 좌우 각 2간씩은 고방이고 중앙 2간은 토방대로의 헛간이다. 고방의 벽체는 판벽(板璧)이다. 안 ·바깥채가 모두 납도리 삼량가구(三樑架構)이며 홑처마에 맞배지붕이다.
안채의 부엌 뒤편에는 방앗간채를 들여 앉혔는데 방앗간을 뒤꼍에 둔 것은 서백당(書百堂)의 경우와 같다. 방앗간이 있는 뒤울안은 비교적 촉박(促迫)하나 안채 뒤울안과 사랑마당을 잇는 터는 여유있게 담장을 돌렸으며 남쪽 중심부를 터서 대문으로 하였다. 이 토담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동단(東端)에 마련된 안대문을 지나 안마당에 이르게 된다.
안채는 평면이 ㄱ자형에 그쳤으나 안방과 부엌과의 고패관계는 이 지역의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부엌을 3간이나 배정한 점도 이 마을 큰집들과 공통되는 격식을 나타내고 있다. 안방과 건넌방에 퇴(退)마루를 두었고 퇴주(退柱)와 대청 기둥은 모두 방주(方柱)이다. 2간통(間通)의 안방과 대청 뒤편에는 3간을 연이은 쪽마루를 부설하였다. 안방 툇마루의 부엌머리에는 외짝 여닫이 문을 달아 뜰아래로 내려서지 않고 마루에서 직접 부엌에 내려서게 고안되어 있으며 또 건넌방 툇마루 끝은 터놓지 않고 퇴간측벽으로 마금을 치고 역시 외짝 여닫이 문을 달고 있다. 이 퇴간측벽(退間側壁)의 설치는 건넌방의 뒤편이나 아래로 연결되는 온돌방이나 고방, 부엌과 같은 부대공간의 마련이 전혀 없으므로 그 허술한 주위를 일부나마 안전하게 꾸미려는 의도로 짐작된다. 부엌 아래로는 2간의 마루고방과 그 끝에 쪽마루 있는 온돌방 1간이 마련되어 있다. 온돌방에는 고방사이에 4분합을 달아 놓고 있으나 고방마루는 이 아랫방의 청(廳)으로도 겸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 집의 방들은 안방과 건넌방, 이 아랫방 외에는 따로 여유가 없으므로 이 방이 안사랑 혹은 작은사랑의 기능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랑채는 길이가 6간, 너비 간반이며 전퇴(前退)를 두었다. 그 대청 전면에는 2간에 모두 4분합들문을 달았고 큰사랑과 건넌방의 대청쪽에는 모두 같은 들문을 달았다. 이 대청의 후면은 건넌방쪽 1간에만 쌍여닫이를 달아 안채와의 통로로 삼았다. 사랑큰방 뒤로는 부엌과 툇마루가 있는 서실(書室)을 꾸며서 기능상의 변화를 꾀하였고, 사랑건넌방의 전면과 측면 마루는 넓게 확장한 위에 마루 끝에는 아자난간(亞子欄干)을 돌려서 다소나마 누마루적 정취를 보이고 있다.
안채의 기단이나 안마당보다 한단 낮은 서편 터에 안채와 마주보는 아래채가 있다. 아래채는 길이 6간, 너비 1간이며 좌우 각 2간씩은 고방이고 중앙 2간은 토방대로의 헛간이다. 고방의 벽체는 판벽(板璧)이다. 안 ·바깥채가 모두 납도리 삼량가구(三樑架構)이며 홑처마에 맞배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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