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가 전달되지 않는 18가지 이유2.
3.창문 너머 사물(진리)를 보라(깊이 있는 본문 분석은 깊이 있는 설교를 만든다)
“왜” 창문 너머 진리를 보아야 하는가? 창문을 자세히 보면 먼지가 묻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러나 창문너머의 사물을 보려고 노력해야 바깥 풍경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본문에서 진리를 찾을 때 창문에 묻은 이 먼지만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 없는 먼지로 설교를 만들려고 한다. 의미 없는 것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설교를 무가치하게 만들게 된다. 같은 본문 속에 더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데도 말이다.
설교자는 깊은 해석을 통해서 본문의 깊은 진리를 찾아내야 한다. 설교는 본문에 근거한 성경적 설교여야 하는데, 그 성경적 설교는 본문의 핵심이 짚어주는 깊은 의미를 찾아내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설교의 구성을 끝내기 전에 정작 중요한 것은 설교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본문을 깊이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창문 너머 진리를 보는 방법들은 무엇이 있는가?
첫째로, 본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본문의 핵심을 파악해라.
둘째로, 본문은 어떻게 말하는가? 어떤 문학의 종류로 진리를 전달하고 있는지를 파헤쳐라.
셋째로, 본문은 처음의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본문 자체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필요성과 본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연구해야 한다.
넷째로, 본문이 오늘의 교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적용의 단계이다. 성도들은 과거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다룬 본문인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단지 그 본문이 지금 나와 나의 삶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를 듣기 원한다.
다섯째로, 본문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해석되어진 본문과 적용할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구성의 문제와 관련된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본문이 성도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설교자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본문을 의미 있게 만들 것인가?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질문들이며, 이런 질문들 외에 던져져야 할 질문들이 있다. 그것은 육하(六何)원칙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란 질문을 던지면 본문을 깊숙이 보는 데 도움이 된다.
설교에서는 특히 “왜?, 어떻게?”란 질문이 본문의 핵심을 찾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다.
‘왜?’란 질문을 던짐으로써 본문의 사건이나 현장 혹은 행동의 동기 등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란 질문은 청중들이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영역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처럼 본문을 깊이 있게 해석해야 설교 속에서 성도들이 깊숙한 내면의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를 써 내려가지 전에 깊이 있는 본문 해석을 해라.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상상할 거리나 생각할 거리를 주어 다른 것에 주의를 빼앗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어휘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어휘 사용은 설교의 가치를 높인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 지루한 느낌이나 감정을 없애준다.
4.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라(설교의 자연스런 흐름은 청중을 자연스럽게 파고든다)
설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 수는 없을까?
설교의 흐름이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럽다는 느낌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자연스러움의 존재이다. 사람은 어떻게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나타내는가?
동물적인 감각을 통해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성도들은 설교자가 전후좌우를 골고루 보면서 설교할 때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공간적 의미에서 성도들은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예민하게 느낀다. 또한 시간적 의미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부자연스런 모습에 부담스러워하고 자연스러움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것이 사람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다. 더 나아가 미래의 사건에 대해서도 그가 과연 잘 맞출 것인지 궁금해지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인 과정들이 드러나면 이는 곳 삼류소설이나 삼류영화로 취급받게 된다.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성도들은 진짜가 아닌 소설 같은 이야기로 인식하게 되고 결국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영화 작가들이나 소설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연스런 전개를 진행시키려고 노력한다. 성도들은 이미 그런 작품들에 익숙해져 있고 또 그런 작품들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설교는 그들보다 너무나도 크게 뒤떨어져 있다. 그러면 설교에서의 자연스러움은 무엇인가?
첫째로, 서론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성도들이 세계, 성도들의 수준에서 서론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둘째로, 본문을 접근해 들어갈 때도 역시 본문과 서론 사이에 접촉점이 있어야 한다. 즉 본문을 접했을 때 ‘지금 설교를 시작하는구나!’ 하는 감을 줘선 안 된다. 언제 설교가 시작되는지를 모르도록 자연스런 진행이 이뤄져야 한다.
셋째로, 성도들이 알고 싶은 욕구를 따라서 진행해야 한다. 성도들은 욕구 순위를 따라 설교를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설교를 자연스럽게 진행하려면 본문의 순서를 따르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지 말고 성도들의 심리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라.
기자들이 어떤 한 사건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 가장 먼저 전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그 다음 다룰 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성도들은 원인을 분석하고 난 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본문도 결과, 원인, 해결책, 혹은 대비책(방법) 등을 본문이 다루고 있다. 즉 성도들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파고들 순서를 따라서 진행해야 한다. 어떤 본문이든지 본문을 분석해보고 그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순서를 정하되 성도들의 심리를 따라서 하면 된다.
이것이 자연스런 전개를 위한 최선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에는 ‘첫째로, 둘째로’ 하는 식으로 하지 말고 반드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다. 질문을 던짐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던져진 질문에 답하려는 기회를 줌으로써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재치 있게 뛰어넘어갈 수 있다.
설교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방법들을 다시 보면,
첫째로, 성도들의 욕구 순위(성도들의 심리)에 익숙해 져라.
둘째로, 그 욕구 순서(성도들의 심리)를 따라 설교의 전개를 일치시켜라.
셋째로, 본문의 흐름이 성도들의 흐름과 배치되면 성도들의 흐름을 우선 순위로 하여 설교를 진행하라.
넷째로, 한 단락에서 다름 단락으로 넘어갈 때에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별을 취하는 형식을 택하라.
5.긴장을 유지하라(긴장 유지는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긴장을 유지하지 못한 설교들은?
첫째로, 본문의 설명이 길어질 때 설교에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성도들은 본문의 내용을 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즉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 가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 본문이 격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혹은 ‘나’이 삶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며 ‘나’의 삶의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보여주는지를 듣고 싶어한다.
찰스 스펄전은 ‘진정한 설교는 적용이 시작될 때 시작한다’ 고 못박았다. 본문 설명이 끝나고 적용을 시작할 때부터 성도들은 설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둘째로, 적절한 자극이 담기지 않은 설교는 성도들에게 긴장을 주지 못한다. 본문 설명이 길면 긴장감이 약해진다. 또 적용을 하긴 하는데 밋밋한 적용, 즉 개인적이며 독특한 적용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이고 객관적인 적용이 되면 그 자극의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고, 약한 자극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물론 설교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성도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설교를 듣는 성도들이 깨어있는 마음으로 설교에 몰입하게 하려면 긴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로, 뻔히 아는 길로 설교가 전개되면 성도들은 긴장감을 상실한다. 핵심 내용을 미리 말함으로써 막상 결론에서 그것을 강조할 때는 맥이 빠져버린다. 그래서 핵심적인 내용을 아껴두었다가 결정적인 때 핵심을 이야기해라. 그리고 개요를 먼저 밝히고 설명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기대감과 동시에 긴장감을 상실케 한다.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예를 들어, 서론에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보여주는 진리는 하나님은 진실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말하길…’ 하면서 설교를 시작하는가? 이런 접근은 성도들로 하여금 ‘목사님, 요점을 말하셨으니 다 이해했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대신 질문을 던지거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좋을성싶다. 설교에 긴장을 가져오게 하는 적극적인 원리와 그 경우들은?
첫째로, 상상력의 활용은 성도들을 긴장하게 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워렌 위어스비는 설교에서 상상력 활용을 적극 주장한다. 즉 상상력이 담긴 정교한 논리전개는 성도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갖게 한다.
둘째로, 뒤에서 할 말을 앞에서 미리 흘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그렇지 않으면 설교가 긴장과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또한 단어 선택이 단조로우면 이 역시 성도들로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셋째로, 대조나 비교를 통한 설명은 성도들에게 긴장을 유하게 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설교에 긴장을 유지하는 원리들을 다시 보면 이렇다. 첫째로, 본문 설명을 짧게 해라. 둘째로, 적절한 자극을 주면서 설교를 전개하라. 셋째로,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방향으로 전개하지 마라. 핵심 내용을 미리 흘리지 마라. 개요를 미리 밝히지 마라. 넷째로, 상상력을 적극 활용하라. 다섯째로, 대조 혹은 비교를 통해 설명해라.
6.청중의 수준을 뛰어넘어라(청중의 수준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는 설교를 참신하게 만든다)
청중의 예상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설교들은? 진부한 표현들을 사용한 설교는 성도들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설교들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에서 진부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역시 성도들에게도 도전을 주지 못하는 부분임에 틀림없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 그것이 곧 신선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진부한 부분들을 배제하고 신선하게 표현하도록 창의력을 발휘해라. 강조한 부분이 성도들의 상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면 또한 죽을 쑤는 경우가 된다. 설교 내용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다섯 가지의 케리그마에 초점이 맞춰졌다. 즉 그리스도의 수욕, 고난, 부활, 승천, 재림에 대한 내용이다. 웬만한 성도들은 이러한 내용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성도들이 상식의 수준을 벗어나서 항상 새롭고 신선한 내용으로 들려지도록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전달하면 지루하거나 아무런 기대감 없이 설교를 듣게 만든다. 이것이 곧 성도들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는 설교다.
성도들의 예상 수준을 뛰어넘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방법들을 생각해야 한다. 예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밟고 올라서라’의 개념을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도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설교는 성도들이 관심을 사로잡는다. 성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수준에서 설교가 맴돌면 그 설교는 지루한 설교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수준에서 설교를 시작해라. 그러나 설교를 전개해나가면서 청중의 지성을 자극하는 단계적인 논리를 펼쳐라. 그것은 곧 성도들의 정신을 번쩍 뜨이게 만들 것이다. 설교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러면 성도들의 예상의 수준을 뛰어넘는 원리들을 다시 보면. 첫째로, 진부한 표현을 피해라. 둘째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개념을 참신하게 표현해라. 셋째로, ‘밟고 올라가라’의 개념을 활용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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