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 정보

[북한산 북한동] 북한산성탐방센터~보리사(등운각)~중성문~북한산대피소~용암문~위문~보리사(등운각)

문성식 2012. 4. 3. 16:24
[대도시 근교명산 시리즈 1 - 북한산 특집ㅣ북한동] 북한산성탐방센터~보리사(등운각)~중성문~북한산대피소~용암문~위문~보리사(등운각)
옛 선비들 풍류 즐겼던 ‘북한산 무릉도원’
북한산성 방향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주변의 경관은 예로부터 북한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했다. 북한산 산영루(山映樓)와 민지암(閔漬岩), 칠유암(七遊巖) 등은 이름난 경치로 시인묵객들이 찾은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특히 산영루가 있던 총융사 선정비 맞은편 계곡 일대는 무릉도원으로 불릴 정도로 옛 선인들이 제일의 경관으로 손꼽았던 곳이다.

▲ 노적봉을 지나 위문으로 가는 길에서 백운대, 염초봉, 원효봉 등 고봉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효봉과 염초봉 중간 아랫부분에 상운사가 조그맣게 보인다.

그 아름다운 경관을 등산을 통해 즐기기 위해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한다. 도보탐방로와 차도로 같이 이용하는 대서문과 중성문 올라가는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길과 두 갈래로 나눠진다. 다시 접속되는 지점까지 계곡길은 1㎞이고 차도는 1.8㎞라고 안내하고 있다. 계곡길은 흙길이면서 짧고, 차도는 시멘트 길이면서 기니 당연히 계곡길이다.

보통 등산객들은 이 계곡 등산로를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이곳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북한산의 풍경을 벗 삼아 놀던 바로 그곳이다. 계곡에 들어서면 위쪽은 처마 같고 밑은 평상같이 묘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고려 충숙왕 때 명재상 민지가 놀던 곳이라 하여 민지암이라 전한다.

민지암에서 100m쯤 올라가면 계곡 중간에 큰 바위가 군데군데 널려 있고, 한쪽으로는 넓은 암반이 깔려 있다. 그 위로 큰 바위와 암반 사이에 폭포가 걸려 있다. 이 폭포 밑에 20~30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다. 바위 앞면에 ‘七遊巖’이라고 새겨진 큰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옛 선비들은 칠유암에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시와 술로 탁족회를 하며 풍류를 즐겼다. 조선 숙종·영조 때의 시인 강박은 북한산을 유람하면서 여기서 ‘칠유련구(七遊聯句)’를 남겼다.

도보탐방로와 차도가 다시 접속되는 1㎞ 거리의 계곡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주위를 잘 살피면 아름다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접속되는 지점에서 불과 20m 앞이 분기점이자 원점회귀 지점이다. 1972년 완공한 새마을교를 지나면 삼거리다. 왼(북동)쪽으로는 백운대 방향이고, 오른쪽은 중성문과 중흥사지, 북한산성대피소로 올라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무릉도원으로 불렸던 산영루, 흔적만 남아

▲ 산성계곡을 끼고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고 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등산로 왼쪽으로는 음식점과 등산용품 매장들이 늘어서 있다. 이 매장과 음식점들은 오는 6월까지 산성 주차장 인근 새 건물로 이전해야 한다. 상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합의했다고 한다. 두고 볼 일이다.

상가가 없어질 즈음 조그만 주차장과 마지막 화장실이 나온다. 여기까지만 차가 올라갈 수 있다. 간혹 이곳에 주차하고 등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제부터 제대로 된 본격 등산로다. 흙으로 된 길과 나무가 우거진 숲을 즐길 수 있다. 곧바로 중성문이 나왔다. 안내문에는 축성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중성문은 북한산성 축성 다음 해인 숙종 38년(1712년)에 산성수비 보완대책의 일환으로 축조한 성이다. 당시 별도의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지형이 평탄하고 취약한 대서문 방면이 적에게 뚫리더라도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여 행궁·유영·창고 등 성내 시설물과 인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중성문에서 행궁터까지는 실제로 그리 멀지 않다. 운하교(雲河橋)를 지나 용하사 방향으로 곧장 올라갔다. 노적교를 지나서 나온 삼거리에 ‘부왕동암문 0.9km→, 대남문 2.2km↑, 산성탐방지원센터 3.3km↓’ 이정표가 있다. 물론 대남문 방향이다.

‘북한산의 무릉도원’이라 불렸던 산영루가 나왔다. <북한지>에 ‘산영루는 중흥사 앞에 옛날 작은 다리를 덮고 누각을 세웠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돼 있다. <북한지>를 쓴 1745년 당시에 벌써 산영루가 없어졌다고 하니, 언제 지어졌는지 모르지만 상당히 오래된 듯하다. 이후 산성을 축성할 때 다시 지어 1907년 사진엔 산영루의 모습이 다시 등장한다. 이 산영루가 있던 총융사 선정비가 있는 앞쪽 계곡 일대를 ‘무릉도원’이라 불렀으며, 북한산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으로 꼽았다. 지금은 장주형 초석 10개만 남아 그 옛날 풍경의 자취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1910년 이곳을 방문한 독일인 신부는 깊은 계곡의 폭포수와 넓은 암반 등 주위 경관이 뛰어나 “아름다운 조선”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산영루 바로 뒤 용학사 앞 오솔길 주위에 비석이 많이 서 있다. 이른바 ‘비석거리’로 불리고 있는 등산로다. ‘무슨 비석인가’ 궁금해하는 등산객이 많을 것이다. 이 비석들은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총융사 재임시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대부분 1800년대 세워진 것들이다. 예전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전하나 지금은 높이 1~2m 비석 21개만 남아 있다.


산성 중심에 있던 중흥사 중건사업 벌여

▲ (위)북한산의 무릉도원이라 불렸던 북한산성 계곡의 모습. (아래)20명은 앉을 수 있을 법한 평평한 바위 앞면에 칠유암이라고 새겨져 있다.
불과 200여m 위에는 북한산성 중심부에 있었던 중흥사지와 태고사가 있다. 중흥사는 북한산성 내부의 또 다른 옛 석성인 중흥산성 남쪽에 자리했으며, 고려 말기 고승 보우(普愚)가 중수한 북한산성 내의 중심 사찰이었다. 지금은 초라한 흔적만 남았지만 한번 둘러보면 그 절터의 규모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축성한 후 증축하여 136칸 규모의 대사찰이었다. 산성 안의 승군 350여 명을 거느리는 팔도도총섭의 총지휘부 승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컸다. 등산로 가는 길에 현재 중건 사업을 벌이고 있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중흥사지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이정표가 ‘←0.8km 북한산대피소, 대남문 1.8km(태고사 방향)→’를 가리키고 있다. 북한산대피소로 바로 갈 수 있지만 잠시 태고사로 둘러가도 좋다. 태고사에는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태고사는 고려 충혜왕 때인 1341년 고승 보우가 삼각산 중흥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개인 수도처로 마련한 동암이다. 절 크기는 작지만 뒤쪽엔 고려 후기의 태고사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과 그 탑비(보물 제611호)가 눈길을 끈다. 국사탑은 원증국사 보우의 묘탑으로 수십 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태고사에서 북한산성대피소로 올라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에 좌우로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분위기 있는 등산로다. 대피소 바로 밑 옹달샘에 도착했다. 샘물은 몇 년 전까지 마실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각종 균이 검출돼 ‘음용 부적격’이다. 주변엔 화장실과 넓은 공터가 있어 등산객들의 집결지로서 활용된다.

이곳에서 원점회귀하기 위해서는 위문으로 가야 한다. ‘용암문 0.2, 백운대 1.7㎞’ 안내판이 서 있다. 주변엔 소나무는 별로 없고, 참나무와 활엽수가 우점종이다. 소나무는 가끔 눈에 띌 뿐이다.

백운대 못 미쳐 노적봉 갈림길에 왔다. 노적봉은 위험구간으로 입산통제하고 있다. 백운대 가는 길은 밧줄을 잡고 가야 하는 다소 위험한 구간의 연속이다. 위험할수록 경관은 뛰어난 법. 백운산장 아래 하루재에서는 백운대와 인수봉 등을 전면에서 보지만 여기서는 이들 봉우리의 뒷모습과 원효봉, 염초봉, 노적봉 등의 준령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위문에 도착해서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를 머리 위로 쳐다본다. 시간이 되면 백운대 정상에서 북한산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하산길은 여러 갈래다. 원점회귀하기 위해선 산성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북한산성으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른 돌계단의 연속이다. 무릎에 다소 부담을 줄 수 있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걷는 게 좋다. 이 코스는 원효봉과 상운사로 가는 오른쪽 갈림길이 딱 한번 나오는 것 외엔 갈림길도 없는 외길이라 등산로를 따라 곧장 내려가면 된다. 오른쪽으로 염초봉의 웅장한 암벽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밑엔 계곡이 흐르고 있다.

마침내 원점회귀 지점인 등운각에 도착했다. 지도엔 등운각으로 표시돼 있지만 등운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는 비구니에게도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주변 상인은 “옛날에 등운각이란 개인 별장이 있었지만 15~16년 전쯤 보리사라는 절로 바뀌었다. 20년 넘게 장사했지만 누가 사는지, 왜 바꿨는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보리사 주변엔 상가들로 북적거렸다. 1972년 건립한 새마을교를 지나 올라갔던 길로 그대로 내려왔다.

북한산성탐방센터에서 보리사(등운각)~중성문~태고사~북한산대피소~용암문~위문~보리사(등운각)로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는 약 11㎞ 남짓 되는 거리로 한나절이 조금 더 걸리는 등산길이다. 그래도 산에서 도시락을 먹고 옛 선비들이 즐겼던 무릉도원과 유적을 둘러보면 하루 종일 걸릴 것 같다.


교통

북한산성으로 가기 위해선 지하철과 연계한 버스, 승용차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와 산성 방향으로 50m쯤 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북한산성행 버스 704번 등을 타고 북한산성 입구역에 내리면 된다. 약 15분쯤 소요.

주차장 바로 옆에 북한산광장이란 미니 슈퍼가 있는데 김밥과 막걸리 등을 판다. 북한산성 올라가는 대로로 올라서면 왼쪽 공사현장에 효자건설이란 대형 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에는 북한산휴게소로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등이 영업을 하고 있다.
승용차로 접근할 경우 북한산성 입구 대형 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하는 사람도 많다. 북한산휴게소에 있는 음식점과 상가를 이용하고 주인에게 얘기하면 몇 시간 정도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 글 박정원 차장  사진 이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