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개통을 앞두고 강원도 동해안을 잇는 ‘낭만가도’가 로맨틱한 모습을 드러냈다. 고성에서 삼척까지 6개 시·군의 국도와 지방도, 해안도로 등 240㎞를 연결하는 낭만가도 중 해안선이 아름다운 삼척 구간은 51㎞. 새천년해안도로와 옛 7번 국도를 따라 파도치는 해변과 아담한 항·포구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삼척 낭만가도의 출발점은 동해시와 이웃한 증산해변. 애국가의 해돋이 장면으로 유명한 추암의 촛대바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이사부사자공원과 수로부인공원이 양쪽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해가(海歌)’라는 설화를 바탕으로 해가사 터에 조성된 수로부인공원은 신라 성덕왕 때 해룡이 수로부인을 끌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자 남편인 강릉 태수가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는 노래를 부르자 거북이 수로부인을 모시고 나와 도로 바쳤다는 곳이다.
수로부인공원에서 작은 고개를 넘으면 바다와 이웃한 삼척해변역. 하루 네 차례 강릉역∼동해역∼삼척역을 왕복하는 낭만의 바다열차가 잠시 정차하는 무인역으로, 한겨울이라 타고 내리는 승객은 없지만 쓸쓸해서 더 낭만적이다. 영화 ‘외출’의 촬영지인 삼척해변에서 여름을 화려하게 채색했던 원색의 기억을 밀려오는 파도에 지워버린 낭만가도는 곧바로 새천년해안도로를 탄다.
삼척해변에서 삼척항까지 4.6㎞ 해안을 벗한 새천년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명품도로. 냉전의 산물인 철조망을 걷어내고 산뜻한 모습의 경관용 펜스가 설치된 해변에는 유난히 갯바위가 많고 바닷바람이 강하다. 밀려오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칠 때마다 대포 소리를 내며 하얗게 부서지다가 기어코 굽이굽이 S자를 그리는 새천년해안도로를 물보라로 장식한다.
바이올린을 켜는 소녀상 등 10여 점의 조각 작품이 설치된 비치조각공원과 양손으로 태양을 껴안는 형태의 조각품인 ‘소망의 탑’은 삼척 최고의 해돋이 명소. 펠리스호텔 아래에 위치한 정라횟집타운에서 보면 구불구불한 새천년해안도로와 푸른 바다, 그리고 이른 아침 햇살에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갯바위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겨울 삼척항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난다. 밤새 수평선에서 불을 밝힌 채 고기잡이를 하던 어선들이 속속 귀항하자 드럼통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시린 손을 녹이던 아낙들이 종종걸음으로 경매장을 향한다. 검푸른 바다에서 뛰어놀던 오징어와 못생겨도 맛은 좋은 곰치, 그리고 제철을 만난 양미리 등이 좌판에서 펄떡거린다.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한 삼척 오십천이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죽서루를 돌아 동해로 흘러드는 오분해변에는 ‘이사부 출항지’가 있다. 실직주(삼척) 군주로 임명된 신라 장군 이사부는 지증왕 6년(512년)에 우산국을 정벌하기 위해 함정 뱃머리에 나무로 만든 사자조각을 붙이고 출항했다고 한다. 증산해변의 이사부사자공원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낭만가도는 오분삼거리에서 옛 7번 국도를 타고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맹방해변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재라는 이름의 고개를 넘는다. 한재는 4㎞ 길이의 맹방해변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와 은수가 파도소리를 녹음하던 맹방해변은 끊임없이 밀려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일품이다.
맹방해변 남단의 덕봉산 아래에는 동해안 최고의 갯바위 군락이 존재한다. 마읍천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크고 작은 갯바위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막고 있다. 거센 파도가 기암괴석에 부딪치는 소리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장엄하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진주알처럼 영롱하다.
솔향기 그윽한 낭만가도는 근덕면 궁촌리에서 삼척해양레일바이크와 나란히 달린다. 궁촌정거장과 용화정거장을 연결하는 5.4㎞ 길이의 삼척해양레일바이크는 바다와 이웃한 레일바이크. 해송 숲을 통과하면 철길과 인접한 푸른 바다와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3개의 터널을 지날 때마다 펼쳐지는 화려한 빛의 쇼가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탁 트인 바다를 벗 삼아 남쪽으로 달리던 낭만가도는 근덕면 장호리에서 반원형의 포구마을인 장호항을 만난다. 장호항은 동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중 하나. 호수처럼 잔잔한 항구에는 고깃배들이 그림처럼 떠있고, 붉은색 지붕이 처마를 맞댄 바닷가 마을은 그림엽서처럼 이색적이다.
낭만가도는 장호항과 신남해수욕장 사이의 바닷가 야산에서 해신당공원을 만난다. 나무와 돌을 깎아 만든 74점의 거대한 남근을 전시한 해신당공원은 결혼을 약속한 처녀(애랑)와 총각(덕배)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관광자원화한 곳. 바다를 향해 우뚝 솟은 남근들이 웃음을 짓게 한다.
새로 개통한 7번 국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남쪽으로 달리던 낭만가도는 원덕읍 월천해변에서 솔섬과 조우한다. 2007년 세계적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면서 유명해진 솔섬의 본래 이름은 속섬. 늘 물 속에 있는 섬이라는 뜻의 속섬은 30여 년 전 상류에서 떠내려 온 소나무 씨앗이 가곡천 모래톱에 뿌리를 내리면서 소나무섬으로 거듭났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더욱 푸른 속섬의 새벽 풍경은 여명의 푸른 눈동자를 연상하게 한다. 달빛과 별빛이 사라지고 수평선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속섬의 하늘을 오렌지색으로 채색하는 이른 아침. 여인의 눈썹을 닮은 속섬의 소나무들이 먹구름 속으로 침잠하면서 낭만가도는 종점이자 시점인 고포해변으로 겨울여행을 떠난다.
삼척=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