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대림 제3주간 토요일(12/17)|오늘의 말씀과 묵상

문성식 2011. 12. 17. 09:24



대림 제3주간 토요일(12/17)








    말씀의 초대
    야곱은 아들들을 불러 모아 놓고 장차 이스라엘 가문에 일어날 일을 일러 준다. 유다는 사자처럼 힘 있고 왕홀을 든 모든 민족들의 통치자가 될 것임을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전하는 족보는 하느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메시아가 올 것을 준비하셨고, 예수님의 탄생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전해 준다(복음).
    제1독서
    <왕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1-2.8-10 그 무렵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7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약 성경 시작의 첫 장을 열면 마태오복음의 ‘예수님 족보’가 펼쳐집니다. 우리나라도 가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별히 당시 유다인들에게 족보는 생존권이나 신분을 정하는 잣대가 되었을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족보에서 좋은 점은 크게 드러내고 나쁜 것은 감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는 다릅니다. 예수님 족보에 나온 이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간계를 부려 형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근친상간으로 아들은 낳은 타마르, 이방인이며 창녀였던 라합, 자신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한 다윗 등, 그냥 보이는 이름만 봐도 족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런데도 신약 성경 첫 장부터 그 부끄러운 이름들을 올린 이유는 무엇인지요?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고 믿음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웅적 힘으로 이끌어 온 ‘인간의 역사’가 아닌 약하고 죄스러운 인간을 통하여 일하신 ‘하느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으로써 그 모든 역사는 구원의 역사로 바뀝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사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점점이 찍힌 죄스럽고 못난 모습의 내 역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돌아보고 싶지도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어두운 시간까지도, 예수님 앞에서는 온통 은총의 시간으로 바뀝니다. 못나고 죄스럽게 살아 온 내 시간들이 바로 주님 구원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복음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내 인생을 이끌어 오신 눈물겨운 주님 은총의 역사를 만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Regnum tuum veniat 당신 나라 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