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창세기의 신비

문성식 2011. 11. 24. 01:10

 

 창세기의 신비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5.우르의 대지하 고분군의 발견


우르의 도시지역 중앙 북쪽에는 신역이 있었다.
1927년에 우르 제1왕조나 제 2왕조 시대라고 추정되는 <우르의 왕묘군>이 발굴된 것은 신역의 동남쪽이다.
메스.카람.두그의 왕묘에서 황금제 그릇,투그,촛대,은제 띠,단검 등 막대한 부와 정교와 기술을 말해주는 많은 유품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아.바르.기 왕의 고분 현낸 문서를 근거로 창세기 23장34장 10,21절,42장 34절,이사야서 23장 8절 등을 비교 논증하고 있다. 아래에 그 골자를 추려 소개하자.


아브라함도 하타이트 왕의 비호 아래<우가르트 문서>에 보이는 <우라>에서 가나안으로 온 호상이었다고 주장하며, 창세기 23장 6절의 <영감님>을 70인역이 <왕>으로 번역하고 있음을 주목하고,이것을 프토레마이오스 시대<왕>이 아니라 호메로스에 나오는 의미의 <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하는데,그것은 즉동부 지중해적인 의미의 <왕>이라고 해석한다.


다음으로 위에서 말한 창세기의 제 기록이나 아마르나 = 미케네 시대의 국제 환경을 더듬어 아브라함이 상업 활동을 했던 것을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우르 중에서 갈디아인의 우르라는 지명이 오직 한 군데 뿐이라고 할 수는 없고,아브라함이 태어난 고향인 우르는 갈디아의 우르가 아니라 <우가리트 문서>에 보이는 <우라>라고 하며, 그곳을 하란 근처에서 찾는다.


이상의 여러 점에서, 왕들의 서사시로서의 족장 설화는 틀림없이 왕실을 찬양하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돼 온 것이라고 결론 짓는다. 즉 갈디아인의 우르는 바빌로니아 남부의 우르가 아니고, 크세노판이 언급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인의 이웃이라고 하는 북방 갈디안의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사야서 23장 13절의 갈디아인의 나라는 바빌로니아의 남부의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북방의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며,Hald는 아르메니아/우랄어 것 같지 않다.

 

 

16. 갈디아인의 우르는 어디인가.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거기에다 자리잡고 살았다(창세기 11장 31절).


갈디아인의 우르는 일반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도시,현재의 이라크의 나사리아 근처의 도시라고 한다.
그러나 창세기의 전승은 우르의 도시보다도 오히려 하란을 중심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결부되어 있다.

현재의 시리아 국경에 가까운 터키 령,유프라테스강의 지류 베리크 강변에 <하란>이라고 하는 아랍인 한촌이 있다.

그 근처는 예전에 바빌로니아-소아시아-이집트를 연결하는 통로에 있는 통상의 중심지였다. 이 하란과 창세기의 전승과의 연결은 아브라함의 조상의 이름이나 형제의 이름과 하란 근처의 도시들의 이름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데, 구약성서의 족장들과 기원전 2천년대의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있던 도시들과의 관계를 직접 입증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C.H.골든은 하타이트 왕국의 수도 하투샤슈에서 기원전 15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서 번영했던 우가리트에 보실 근처와 선도(義道)에서 59명의 정장한 순장자의 유해가 발견되고, 두 대의 손수레와 그것을 끄는 소와 은제의 배 모형도 발견 되었다.


슈브.아드 왕비의 고분에서는 수금과 황금이나 청석금등을 사용해서 만든 머리 장식품이나 목걸이 등이 나왔다. 수금은 각각 숫소와 암소와 숫사슴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L.울리경은 이것은 각각 베이스,테너,앨토의 표시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밖에도 왕묘에서는 노는 방법은 모르지만 조개껍질을 상감한 게임 판이나 <우르의 군기>라고 불리는 조개껍질을 상감한 군기 등이 출토되었다.


<우르의 군기>는 각각 출정과 개선의 그림으로 나뉘어 있으며, 예술 작품으로서도 훌륭하며 역사 기록으로서도 가치가 있고,당시의 전투 광경을 알려주는 귀중한 것이다.


우르의 왕묘군-대지하 고분군-의 발견은 종래에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확실한 비문이 없기 때문에 왕묘인지 아닌지에 관해서 논란이 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풍년제>에서 사랑의 여신 이슈달과 곡물의 신 다므즈의 역할을 하는 제관의 분묘라 하고, 어떤 사람은 나일강 유역에서 온 망명자의 분묘라고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왕묘는 지하 깊숙히 만들어졌고 발굴 조사를 하려면 지하수가 넘쳐서 곤란하다 . 1천년 이상이나 지난 고대 은나라 왕묘와 흡사한 <우르의 왕묘군>에 이어지는 발견은 앞으로 다시 있을 것의 옛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갈디아인의 우르는 골든 경의 말처럼, 과연 <우라>일까. 앞날의 연구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