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창세기의 신비

문성식 2011. 11. 24. 01:11

 

 

 창세기의 신비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17 .악덕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창세기에 의하면, 소돔<둘러싸인 곳>이라는 뜻과 고모라<깊다><물이 많다>는 뜻의 도시들은 아라바의 저지 습윤한 땅에 있던 가나안인의 다섯 도시 중에 들며,아브라함의 동생 하란의 아들 롯은 백부 아브라함과 헤어져 비옥한 요르단의 저지 소듬으로 옮겨 살았다.

 

소돔과 소모라는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의 내습을 받고, 소돔의 왕은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다행히 난을 면했다(14장2-22절).그후 이 도시의 악덕이 심해서 소돔과 고모라는 다른 도시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 불 비로 말미암아 멸망했다.

롯은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천사의 경고에 따라 소돔에서 도피했으나 롯의 아내는 천사의 경고를 어겨서 뒤돌아 봤기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다. 롯은 두 딸과 함께 요르단 동쪽의 산지로 피해서 동굴 속에 살았다고 한다.


사해 서남 연안의 이 이른바 소돔 가까이에서는 1952년에 칼리(Kali)공장이 세워지고 1955년에는 질소공장이 신설되어 사해 개발을 위해서 조업하고 있다.
1957년에는 광대한 천연가스층이 발견되었다. 그 지역은 과거 큰 지진에의하여 땅이 내려앉고 천연가스와 석유가 폭발했기 때문에 도시들이 화염에 싸여 사해의 수중에 침몰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돔과 고모라의 위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해 남부 수중 수심 1.8미터 정도의 얕은 부분은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장소라고 한다.


오늘날 사해의 남단에 가까운 서안 지역 남북 10킬로미터,폭 2.4-5킬로미터,높이 216미터의 암염 산이 있다.이곳은 아라비아어로 제벨.우스돔(소돔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둥근 봉우리들로 돼 있다. 그 근처의 도로흙은 염분이 말라 백색으로 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기슭에는 풍화 작용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이상하게 생긴 암염기둥이 여러개 서 있다.

제벨,우스돔의 북쪽 기슭 한 모퉁이에 있는 사람 형상의 암염 기둥이 <롯의 아내의 소금기둥>이라고 한다. 이 기암이 뒤를 돌아다 보는 부인의 모습과 가장 닮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리라.


물욕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이야기는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누가복음 17장 32절). 영어의 소도미 (sodomy,異色)는 악덕의 도시 소돔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돔은 죄악과 악덕의 형용사가 되어 부패한 지도자는 <소돔의 백성>(이사야서 1장 10절),<소돔과 포도나무> (신명기 32장 32절)등으로 불리고, 또한 예루살렘의 죄악이 심함을 <소돔의 죄> (에스겔서 16장 49절)라고 표현했다.
성서를 통해서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죄악과 하나님의 형벌의 귀감으로 인용되고 있다.

 

 

18. 악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실재했는가

 

악덕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과연 실재했을까
1976년 11월 1일 <요미우리 신문> 석간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 쎈트루이스에서 10월 29일 개최된 세계 종교학회연차 회의의 강연에서 로마대학의 죠반니 페티나드 교수(고고학)가 <시리아의 고대 유적에서 출토한 셈어로 기록된 점토판 중에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고 발표하여 관계자를 흥분시키고 있다고 한다. 단 한장의 점토판이기는 하지만 이 보고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면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이 구약성서 이외의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보고자 페티나드 교수는 이미 10년 이상이나 시리아 북서부 텔.마르디크 지역에서 고대 에블라 왕국의 유적의 발굴 조사에 종사하고 있다.
그런데,에블라 왕국이란 어디에 있었는가.


지난 4월 1일자<요미우리 신문> <아사히 신문>조간은 로마대학의 파테오.마티에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조사대가 12년전부터 발굴 조사를 계속하고 있는데,동 조사대가 도시 에블라에서 약 1만5천장의 쐐기꼴 글자 점토판 문서를 발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7월 2일자<아사이 져널 특집 고대의 부르는 소리>(제18권 26호)에는 스기이사무씨가 <모습을 드러낸 에브라 왕국 - 기원전 20세기의 도시국가)라는 귀중한 논문을 보냈다. 이하 이에 근거해서 <에블라왕국>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에블라 Ebla는 이블라 Ibla라고도 표기하며 셈어로 <목장>이라는뜻이다. 이것은 이 지방의 주민이 유목민을 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유적은 지금의 알레포의 남남서 7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거의 지중해 연안의 대도시 라타키아(고대 우가리트는 이곳 북쪽 11킬로미터 지점에 있다)와 알레포를 연결하는 선상에 있으며 알레포 남쪽에 있는 하마와 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텔이라는 것은 시리아에서도 메소포타미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대 도시의 폐허를 가리키며,이곳의 윤곽은 거의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중앙은 아크로폴리스를 이루고 고지대와 저지대로 나뉘어 있다.

 

이 유적은 몇개의 층으로 나뉘고 가장 오랜 층은 대략 기원전 3500년에서 3000년경까지의 것으로 추정되고,이것을 제1기라고 한다.
제2기는 대략 기원전 2300년에서 2000년 내지 1900년경,제3기는 대략 기원전 1900년에서 1700년경의 것이다.
이 중에서 왕궁이나 신전의 유적이 발견되고 제3기의 신전은 특히 중요시 되고 있다.


처음에는 아크로폴리스의 제3기의 신전 발굴 등에 주력했다고 한다. 제3기가 되자 에블라는 타민족의 내습을 방어하기 위해서 대단히 견교한 성벽을 쌓게 되었는데 그 성벽도 발견되었다.
1만 5천장에 달하는 점토판 문서는 이 제3기의 유적지에서 나온 것이다. 궁정 도서관에 붙은 두개의 작은 방에서 점토판이 나왔고, 이 도시는 앗카드의 나람신 왕(BC 24세기)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 도시는 약탈되고 소각당했으나 폐허 밑에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고 한다.


에블라의 국명은 이미 기원전 24세기로 소급되는 아카드 왕조의 조상 사르곤 왕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나라의 존재 자체는 여러 비문으로 알려져 있었다. <에블라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쐐기꼴 글자는 유프라테스강 중류 오른쪽 강안의 폐허 텔.하리리에서 출토된 <마리문서>(BC 18세기)의 예로 보아서 아마도 마리의 말과 같은 아무르(구약성서의 아모리)어 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함무라비 왕조시대(BC 18세기)의 말과 같은 서북 셈어족의 말이다. 따라서 <에블라 문서>는 <마리 문서>보다 오래된 것이 된다. 기원전 2천년대 초기라는 연대와 북시리아라는 지리적 상황으로 생각해보면 <우가리트 문서>의 경우처럼 1만 5천 장의 쐐기꼴 글자 점토판 중에는 북서 셈어족 이외의 셈어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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