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창세기의 신비

문성식 2011. 11. 24. 01:07

 창세기의 신비 
 다까바시마오 저, 한영철 역  

 

9.이스라엘 민족사의 시작

 


헬레니즘과 함께 유럽의 정신적 전통을 이루고 있는 헤브라이즘의 담당자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 유가없는 기구한 운명을 짊어지고 오늘에 이른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원 제 20세기의 이스라엘 민족의 초기는 깊은 안개 속에 싸여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근년의 여러가지 연구는 이에 관해서 고고학의 여러가지 성과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특히 <마리문서>(BC 18세기), <누즈문서> (BC 15세기),<아라락 문서>(BC 15세기), <우가리트문서.(BC 15-14세기),<보하스.쿄이문서>(BC 14세기)등이 그것이다.

 

창세기 12장 이하에 전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12장-25장), 이삭(25장-26장),야곱(25-36장)등에 관한 족장 설화는 오랫동안에 걸쳐 구전되어 온 구비를 근거로 한 전승들이며, 이 전승들이 야훼이스트의 손으로 새로운 문맥과 수식이 가해지는 것은 기원전 10세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이것들을 현존하는 모양으로 완성한 것은 바빌로니아 포로시대(BC 6세기)나 그 이후라고 상정되는 제사적 사료층의 기록자와 그 밖의 약산의 가필자들이라고 생각된다. 족장 설화는 19세기 말경까지는 후대의 창작의 반영이라고 했으며, 아브라함 이하의 족장들은 신화적인 인물로 쳤으며, 그리고 수수께끼에 싸인 부족의 조상이라고 여겨져 그 사실성이 부정되는 일이 많았다.

 

그 후 오리엔트 고고학의 진전에 따라, 특히 1925년 이후의 고고학적 제 발견에 의하여 그 내용이 일변하였다. 즉 족장 설화와 메소포타미아와의 지리적 역사적 관계가, 특히 족장 설화의 역사적 배경이 기원전 2천년대 초기에서 중엽에 걸쳐서 메소포타미아 북부지방의 생활 관습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전승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사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장 설화는 출토된 여러 사료와의 관련으로 역사적인 테두리 안에 놓이게 된 것이다.

 

족장들의 연대에 관해서 1950년 이후의 주요 견해들을 대별하면, 기원전 2천년대 전반기로 치는 설과 기원전 2천년대 중엽 이후의 아람인의 이주와 결부시키는 설로 나뉘고, 양자는 학계의 쟁점이 돼 있다. 전자는 <마리문서>나 <누즈문서>등을 근거로 해서 족장들의 연대를 기원전 2천년대 전반의 어느ㄸ로 잡는가는 학자에 따라서 다르다. 이와 반대로 족장들의 연대를 기원전 2천년대 중엽이후로 주장하는 학자로는 미국의 C.H.골든 등이 있다.
그는 <누즈문서>와 창세기에 전해지고 있는 족장시대의 관습이 평행되고 있는 예를 들어서, 그리고 <우가리트 문서>를 근거로 해서 족장들의 연대를 아마르나=미케나이시대로 잡는다.
골든의 견해에 관해서는 뒤에 소개하겠다.

 

 

 10. <족장설화>에는 어떤 역사 배경이 있는가


족장 설화는 전승되는 소재들을 제공한 시댜와, 그것이 전승된 시대 및 그것들이 문장으로 기록되고 편찬된 시대를 포함한 이른바 세 가지 성격의 시대의 기록이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 이하의 족장들은 이스라엘 민족의이름난 선조들이다. 즉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난 선조들이다. 즉 구약성서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 자체가 족장들의 생애로 묘사되어 있으며, 이 족장 설화들의 핵심에 이스라엘 민족의 여명기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로 들어간 역사적 개요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2천년대 초기부터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유목민 집단이 남러시아의 습지대에서 파상적으로 남하하여 서아시아로 침입하고, 그 일족은 아나트리이와 고원지대 하티를 정복하여 힛타이트 왕국(BC 1700경-1200경)을 세 우고, 아시아의 원주민 속에서는 이란 서쪽 경계의 산간에 있던 카시드인이 바빌로니아를 검거하여 그 땅을 약500년간 지배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 이북지방에 있던 원주민 후르리인은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을 개시하여 인도.이란어파의 일부인 미탄니인은 유프라테스강 중류 지역에 미탄니 왕국(BC 15-14세기 중엽)을 세웠다. 미탄니인이 기마술이 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오리엔트의 대부분은 민족 대이동의 물결에 휩쓸려 불안 동요의 시대가 계속되었다.

이 불안 동요 가운데 소아시아지방이나 메소포타미아지방을 거쳐 시리아.팔레스타인지방에서 다시 남하해서 나일 강의 델타 지대까지 침입하여 그 땅의 아바리스를 근거지로 삼아 기원전 18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쳐서 1세기 남짓한 사이에 이집트의 태반을 지배한 것이 <힉소스>라고 하는 혼송 민족 집단이었다.


힉소스의 민족 구성은 분명하지 않으나 그들은 순수한 단일민족이 아니고 아시아의 후르리인을 기간으로 하고 거기에 옛부터 고대 오리엔트지방에 세력을 뻗치고 있던 셈어족 등을 포함하는 혼성 민족군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후르리인과 셈어족이 기원전 17세기 전후의 오리엔트 세계에 있어서 큰 세력을 차지하고 그 땅을 활동 범위로 했던 것이다.


그후 힉소스가 침입해서 1세기 후인 기원전 16세기 전반에는 이집트에서는 힉소스의 지배에 반항하는 이집트인의 세력이 발흥하고, 테베 출신의 아하메스가 힉소스의 수도 아바리스를 점령하고, 뒤에는 북진하여 페니키아 연안까지 빼앗아 힉소스 세력을 완전히 타파했다.
이렇게 해서 아하메스 1세(BC 1567-47)는 이집트를 재통일하고 제 18왕조(BC 1567-1320)의 기틀을 잡았다.


이 해로부터 이집트 역사 뿐아니라 오리엔트 전체 역사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갔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는 아시아의 분열된 여러 나라 사이에서 신왕국 시대로 들어가서 이른바 제국주의적 침략을 해서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약 200년 간 여러 나라의 우의에 섰다. 이 사이에 시리아.팔레스타인지방은 이집트 신왕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기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
창세기의 신비  (0) 201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