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8/11)

문성식 2011. 8. 11. 06:09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8/11)








    클라라 성녀는 1194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클라라(Clara)는 ‘빛’이라는 뜻인데 성녀의 어머니가 기도 중에 “온 세상을 밝게 비출 빛을 낳으리라.”는 음성을 듣고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 어릴 적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향을 받은 성녀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뿌리치고 부모 몰래 집을 나와 클라라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클라라 성녀는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철저하게 가난과 겸손의 삶을 살다가 1253년 세상을 떠났으며, 1255년 알렉산데르 4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자 여호수아를 따라 요르단 강을 건너간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해 주신 것처럼 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도 함께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요르단 강을 건너간다. 새로운 시대가 그들에게 열리기 시작한다(제1독서). 남을 용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삶에 베풀어 주신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깨달을 때 비로소 남을 용서할 수 있다.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만 탈렌트 빚진 사람의 심정으로 주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교만에서 비롯한다(복음).
    제1독서
    <주님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 ▥ 여호수아기의 말씀입니다. 3,7-10ㄴ.11.13-17 그 무렵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내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너를 높여 주기 시작하겠다. 그러면 내가 모세와 함께 있어 준 것처럼 너와도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너는 계약 궤를 멘 사제들에게, ‘요르단 강 물가에 다다르거든 그 요르단 강에 들어가 서 있어라.’ 하고 명령하여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였다. “이리 가까이 와서 주 너희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라.” 여호수아가 말을 계속하였다. “이제 일어날 이 일로써,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너희 가운데에 계시면서, 가나안족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시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 온 땅의 주인이신 분의 계약 궤가 너희 앞에 서서 요르단을 건널 것이다. 온 땅의 주인이신 주님의 궤를 멘 사제들의 발바닥이 요르단 강 물에 닿으면, 위에서 내려오던 요르단 강 물이 끊어져 둑처럼 멈추어 설 것이다.” 백성이 요르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천막에서 떠날 때에,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백성 앞에 섰다. 드디어 궤를 멘 이들이 요르단에 다다랐다. 수확기 내내 강 언덕까지 물이 차 있었는데,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물가에 발을 담그자, 위에서 내려오던 물이 멈추어 섰다. 아주 멀리 차르탄 곁에 있는 성읍 아담에 둑이 생겨, 아라바 바다, 곧 ‘소금 바다’로 내려가던 물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그래서 백성은 예리코 맞은쪽으로 건너갔다. 주님의 계약 궤를 멘 사제들이 요르단 강 한복판 마른땅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동안, 온 이스라엘이 마른땅을 밟고 건너서, 마침내 온 겨레가 다 건너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ㅡ19,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창세기가 전하는 요셉의 긴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창세 37,1-47.31).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그들 손에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나 이집트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마저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요셉은 그야말로 삶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파라오의 꿈풀이를 해 주면서 당시 온 땅에 밀어 닥친 기근을 다스리는 이집트의 재상으로 곧바로 임명됩니다. 이때 자신을 죽이려다 이집트로 팔아넘긴 자기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러 이집트로 찾아옵니다. 다음은 자신의 깊은 상처와 기구한 운명에도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장면으로,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는 대목입니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창세 45,4-8).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용서를 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개하는 책들도 수없이 나와 있으며, 자신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잘 되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데 필요한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가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요셉처럼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하느님 안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시간 속에서 내가 받은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그것을 당신의 은총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받은 상처를 통해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이 무엇인지를 해석해 내는 순간 요셉처럼 우리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