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 이야기-3 - 15.16 로마 카톨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박해

문성식 2011. 7. 6. 23:34

성경 이야기-3

성경 이야기-3
 

C. 3부

 

15. 로마 카톨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박해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한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하고 구원이 나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합니다.


믿음 이후에 따르는 죄사함이나 거듭남이나 의로운 행위조차도 믿음을 온전케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또한 바른 믿음은 오직 성경을 중심으로한 진리 말씀을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8~9 이는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세례, 성만찬, 각종 성사, 교황과 마리아 숭배 등으로 통해 천주교회 안에서만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니 성경과 모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웠으며,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였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변조된 성경을 보급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카톨릭의 신학적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카톨릭의 대표적인
교부 신학자인 어거스틴입니다.


어거스틴은 일부 신학적 업적을 이루긴 했지만, 연옥이라는 성경에 근거 없는 거짓 교리를 만들어 내었고,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했으며, 천주교의 일곱가지 성사를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높히기 위해 하나님의 왕국이 로마 카톨릭을 통해 세상 권력과 연합해 이루어
진다는 정교일치적 사상을 가졌고, 이 세상에 천년왕국이 먼저 이루어진다는 '후천년주의'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카톨릭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서라도 믿게 해야 한다고 했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카톨릭에서 이단으로 정죄한 이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주후 4~5세기 경에도 회개와 믿음을 구원에 요소로 여기고, 성직자 중심이 아닌 회중 중심의 교회를 이끌며,
성경대로 믿는
도나티스트(Donatists)라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천주교회에서 주는 세례는 유효하지 않다고 하면서 이들의 교회에서 성경적 방법에 따라 다시 침례를 준다
하여 '다시 침례를 주는 자들'이란 의미에서
'재 침례교도'(ana baptist)라고 불리웠습니다.

도나티스트들은 카톨릭의 교회관과 교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세상 권력과 손을 잡은 카톨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귀양을 가거나 순교하였습니다.


유럽에 성경이 보급되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늘어나자 로마 카톨릭은 '제롬'이란 신학자를 통해 '소수 본문'을
라틴어로 번역해 14권의 외경을 포함한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란 변개된 성경을 내 놓았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쳔은 수백년 동안 '제롬의 라틴 벌게이트'를 사용하지 않았고, 주로 '구 라틴 벌게이트'를
보았습니다.


고대로부터 중세 유럽은 라틴어가 세계 공용어였기 때문에 주로 라틴어가 읽혀졌고, 중세 이후 영국 독일 등의
지역 언어가 정착했을 때부터 자국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대로 믿었던 또 다른 그룹은 6세기부터 로마제국 동부의 알메니아 지방에서 활동한 바울파(Paulicians) 교회
지도자는 콘스틴티누스 실바누스(Constontinus Sylvanus)였고, 바울의 서신서를 소중히 여겨 바울파로 불리웠습니다.
이들은 카톨릭의 교권을 거부했고, 침례를 시행했으며, 교회안에 인간 지도자를 두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했습니다.

바울파는  A.D. 845년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큰 박해를 받아 재산은 몰수 되었고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되었습니다.
그들의 성경은 불 태워졌으며, 지도자 콘스타니누스는 A.D. 690년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후의 지도자도 살해되었지만 남은 사람들이 유럽 각 나라로 피하여 갔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바른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온전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왈덴스파(Waldenses)교회(A.D. 426-1686년)는 북부 이태리, 스위스, 남부독일, 프랑스지방 등에서 활동하던
교회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박해를 피하여서 알프스의 골짜기에 내려와서 붙여진 이름(골짜기의 사람들)입니다.
지도자 피터 왈도(Peter Waldo)는 동료와 함께 신약성경을 번역했고,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더 3세에게 자신들이
번역한 성경을 인정해 줄 것을 요수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피터 왈도는 원래 프랑스 리용 출신의 상인이었으나 카톨릭의 모순과 타락에 실망하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준 뒤 성경을 연구하기 위한 연합체를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피드몽 골짜기에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정착했고, 당시 남부 유럽의 공통어였던 로망어(Romaunt
Language)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17세기에 왈덴시안에 대한 박해가 있을 때 왈덴시안 교회의 목사였던 레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고대 사본은
거짓으로 가득차다."고 기록했습니다.


왈덴시안들은 성경을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도 번역했고, 신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을 암송했으며, 구원 받기 위해서는
성경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는데 많은 이들이 얼어 죽거나 절벽에서 떠밀려 죽었고,
동굴에 갇혀 질식사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목 매달려 죽었고, 배를 가른 채 죽었고, 익사했으며, 말에 사지가 묶여 사지가 찢어져 죽었고,
매 맞아 죽거나 칼에 맞아 죽었으며, 개 밥이 되거나 화형을 당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계속되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왈덴시안들은 성경을 들고 유럽으로 퍼져 나갔고,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에는
주후 14세기 경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왈덴시안의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서기 1686년 로마 카톨릭교회는 프랑스왕 루이 14세를 움직여 그 군대를 파견하여 알프스 골짜기의 왈덴스파
사람들에게 박해를 가하여 그들을 알프스의 골짜기에서 추방하고 말았습니다.

A.D. 1517년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비덴부르크 성당의 문에 역사적인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못 박음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성경적 진리에 의해 로마 카톨릭의 권위는 크게 흔들렸고, 마침내
유럽의 2/3가 종교 개혁의 물결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루터의 무기는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독일어 신약성경'이었고, 이로 인해 보편적
다수 본문이 진리에 굶주린 크리스쳔에게도 돌아갔습니다.


이에 대항해 로마 카톨릭은 A.D. 1545년에 '트랜트 공회'를 구성해 종교 개혁을 비판하고, 카톨릭의 전통을 성경과
같은 권위로 만들었으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도 부정했습니다.

 

16. 예수회의 음모

 

예수회(Jesuit)는 A.D. 1534년 스페인 사람 로욜라가 조직한 단체로 교황에게 충성하고, 카톨릭을 옹호하며,
개신교도를 박해하거나 음해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예수회 회원이 되려면 교황의 명령에만 순종하게 되기 위해 14년동안 고난의 훈련을 겪어야만 합니다.
예수회의 우두머리는 '검은 교황'(Black Pope)으로 불리는데 현재는 오히려 교황청의 실세가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비밀 결사로 바티칸의 사복경찰 노릇을 했으며, 주로 정계나 재계, 종교계에 침투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을
포섭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중세 이후 약화된 교황청의 권위와 권력을 회복하고, 급기야 다시 중세시대 같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입니다.

 

1572년 예수회는 프랑스 헨리 3세의 도움으로 카톨릭 신자인 마가렛 공주와 위그노(프로테스탄트) 신자인 헨리
사이의 결혼식에 모인 
위그노교도들에 대한 대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예수회는 카톨릭 교도를 선동하여 위그노 지도자는 물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명이 넘는 대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예수회는 헨리 3세도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자 1589년에 클레멘트 수도사를 통해 암살했습니다.

영국에서도 예수회는 카톨릭에 순응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흠정역 성경을 발간한 제임스 왕을 살해하기 위한
'건 파우더 음모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카톨릭 교도인 포크스는 영국 의회 지하실에 잠입해 36통이나 되는 화약으로 의사당과 국왕 관저를 폭파시켜 날려
버리려다 적발되었습니다.

 

음모자들은 의사당 옆 건물 지하에서 일년동안 터널을 뚫어 의사당 지하에 잠입했습니다.
그들은 제임스 왕을 죽이고 스페인의 도움을 받아 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음모자 8명은 모두 교수형을 당하였고, 영국 예수회의 수장이었던 헨리 가넷(Henry Garnet)도 사형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회는 카톨릭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해 학살이나 테러, 반란 같은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회의 과업은 프로테스탄트 학자들을 부추켜 제발로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일입니다.
개신교도가 순수한 믿음을 저버리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순수한 킹제임스 성경을 부패한 성경으로 대체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다수 본문'이나 킹제임스 성경이 믿을 수 없거나 오류가 있다고 선전하게 해 권위를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이란 것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본문 비평은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한 듯이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평가하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본문 비평은 이미 오래 전에 성경을 변개했던 알렉산드리아의 서기관들이 행하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신학교에서 성경을 제대로 알려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는 내용이 조작된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사전을 주어 주고, 킹제임스 성경이 잘못 번역되었다고 알려줍니다.


미국의 개정표준역성경(RSV)은 이사야 7장 14절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를 '젊은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변개했는데, 히브리어의 '처녀'를 나타내는 단어(alma)가 '젊은 여자'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추측 때문입니다.

예수회에게 있어서 '다수 본문'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소수 본문'의 권위를 높히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자행한 학자는
그리스바크, 웨스트코트, 호르트 등입니다.


그들은 '다수 본문'이 고의적으로 수정된 것이고, 시내사본 같은 '소수 본문' 정통 본문이라고 주장하였고, 현재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이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를 로마 카톨릭의 수중에 넣어 변개된 성경을 만들게 한 장본인은 와이스먼 추기경(Cardinal Wiseman,
1802~1865)입니다.


그는 영국의 개신교 정치인이나 종교인을 포섭해 카톨릭의 권위에 순응하게 만들었고, 결국 150명의 영국 성공회
목사와 유명한 교인들이 카톨릭 교회에 합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