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성경 이야기-3 - 19. 킹제임스 성경의 제작과정

문성식 2011. 7. 6. 23:36

 

성경 이야기-3

성경 이야기-3
 

C. 3부

 

 

19. 킹제임스 성경의 제작과정

오늘날의 킹 제임스 성경은 안티오크 교회가 번역한 “올드 라틴어 성경”(The Old Latin Bible) 혹은 “원(原) 라틴
벌게이트 역본”(The Latin Vulgate)을 그대로 전수한 것으로서, 현재 부분적으로만 남아있는 구 라틴어 성경 본문은
학자들에 의해 킹 제임스 성경 본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 킹 제임스 성경 번역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시대가 끝나갈 무렵(1558-1603) 새로운 성경 역본을 만들기 위한 의회의 조례안이 나오게 됩니다.
“영어로 되어 있는 성경들의 다양성을 줄여서 원문으로부터 번역된 단 하나의 영역본을 만들기 위한 조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1568년에 나온 비숍 성경(The Bishop's Bible)이 비록 그레이트 성경(The Great Bible)을 압도하기는 했으나 제네바
성경과는 여전히 경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때에는 이 조례안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다가 1603년 튜더 왕조에서 스튜어트 왕조로
영국 왕조가 바뀌면서 제임스 1세가 37세로 왕위를 잇게 되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겨 놓은 것은 집권 초기 지독히도 가난하고 무방비상태에서 45년이 지난 이후 부유하고 막강한
나라로서 광대한 제국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왕이 권력을 잡은 지 정확히 일 년이 된 후, 왕은 “교회 안에 잘못된 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햄프톤 코트
궁전으로 크고 작은 정당들로 구성된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때, 옥스퍼드에 소재한 Cortus Christi 대학 학장이며 청교도인 존 레이놀즈(John Reynolds) 박사가 새로운
영어 성경 역본을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왕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가장 학식 있는 학자들이 새로운 성경을 번역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때 예수회 요원들이 회의장에 폭탄을 설치하여 제임스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었으나 시작 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승인되고 1604년 2월 10일에 공포된 결의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어인 히브리어와 희랍어에 철저히 일치하는 전체 성경의 번역을 시행한다.

이 성경은 난외주 없이 제작 출판되어 영국의 모든 교회에서 예배 시에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 번역의 다음 단계는 번역위원을 선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1604년 제임스 왕은 뱅크로프트 감독에게 편지를 써 자신이 성경의 번역을 위해 54명의 학자를 임명하였다고 알렸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최고의 성경 학자요 언어학자들이었습니다.

제임스 국왕에 따르면 다른 인물도 찾았는데 이는 “우리가 시도하는 번역이 우리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주요한 학자들의
도움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함이라”고 했습니다.

 

b) 번역과정

번역은 6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되었고, 이들은 웨스트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세 곳에서 각각 모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10명의 학자가 창세기부터 열왕기하까지, 일곱 명의 학자가 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의 번역을
담당하였습니다.
캠브릿지에서는 8명의 학자가 역대기상에서부터 전도서까지, 그리고 일곱 명의 다른 학자는 외경을 담당했습니다.

옥스포드에서는 일곱 명이 이사야에서 말라키까지 다른 여덟 명이 사복음서, 사도행전 및 요한계시록을 담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따라야 할 세밀한 규칙과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를 예를 들면

ⓐ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읽히는 흔히 감독 성경이라 일컫는 성경을 따라야 하며 가능한 원본의 진리가 허용하는
정도에서만 변경한다.


ⓑ 대언자와 성경 저자의 이름과 본문에 나오는 다른 이름들은 가능한 대중들이 사용하는 대로 그대로 따른다.


ⓒ 틴데일, 메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 성경 등이 감독 성경 보다 훨씬 더 원문에 일치 된 경우는 언제든지
그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드디어 이 여섯 그룹의 작업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그 결과가 6인 위원회(번역을 맡아서 세 그룹에서 각각 2인씩)에
보내져서 최종적인 교정과 출판을 위한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개개의 번역자들은 먼저 개인적으로 주어진 성경 한 장이나 적은 부분을 번역하여 그의 동료들에게 검토와 수정을
하도록 제출합니다.

결코 개인적인 생각에 치우침이 없이 수많은 상담자들의 집단적인 지혜를 끌어 모아 개개의 집단은 어느 책 한권의
번역이 집단적으로 완성되면 즉시 원고를 다른 5개의 집단에 차례차례로 송고합니다.
이 작업은 결코 부주의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후 최종교열은 마일스 스미스와 토마스 빌슨에 의해 완료되었고, 서문은 스미스가 작성하였습니다.

 

c) 번역 대본과 출판

번역 작업은 1604년에 시작하여 1611년에 끝났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성경은 이전 영어 번역판 뿐만 아니라 트레멜리우스와 베자의 라틴역, 스페인역, 프랑스역, 이태리역
판들도 포함됩니다.
원칙상으로는 킹제임스 역본은 주로 감독성경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감독성경이 “원어 성경의 진리를 조금도 변경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습니다.
만일 틴데일, 매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 성경이 본문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경우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베자의 제5판과 순수하게 보존된 올드 라틴 벌게이트가 중요한 대본이 되었습니다.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로버트 바커(Robert Barker Press)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안티오크 이래 수많은 사본들이 있었으나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받은 성경”
(The Authorized Version Bible)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받았습니다.

번역자 중 한 사람인 마일즈 스미스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가 행한 개역을 우리가 경멸하지 않도록 했고 우리가 두들긴
망치질이 침골(砧骨)을 다시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다. 느린 것은 꾸짖지 않았고 빠른 것은 지나치게 칭찬하지 않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 결과 오늘 날 영어권의 모든 사람들이 당당히 여기는 자랑스런 권위성경이 나온 것이다.”

이후 권위역으로 알려진 이유는 교회나 국가의 어느 한 편의 공적인 행동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의 위대한
본질적인 장점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성경은 1629년과 1638년에 두 번의 적은 부분의 오탈자가 수정되었습니다.
1653년의 의회는 또 다른 개정 요구안을 제기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초판에서는 그레이트 성경 (Great Bible)보다도 그 크기가 더 컸습니다.
검은 활자로 인쇄된 이 성경은 원어에 없는 낱말들은 작은 이탤릭체로 된 로마 타입 활자로 표시했습니다.

번역자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가 더욱더 알려지도록 하는데 쓰임받은 부족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교황의 추종자들”(Popish persons)이 사람들을 “무지와 어두움” 가운데 가두어 놓으려고 한다고
분별 있게 지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