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제 4장 통일로 가는 길 1

문성식 2011. 6. 27. 17:27

 

친애하는 북한 동포 여러분, 어느덧 이 해도 다가고 78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도 우리 민족의 숙원인 남북 통일을 위해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서로 갈려서 만나 보지는 못하고 있으나 북한 동포 여러분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화해와 대화에 의한 평화 통일
더욱이 북한에 살고 있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은 천주교 서울 대교구의 교구장이면서 동시에 북한 평양 교구의 교구장 서리직에 있는 입장으로서 남북한 동포와 교우 형제들을 위해 남다른 사랑과 사명을 느낍니다. 1978년은 남북한에서 각기 단독 정부를 세운 지 벌써 3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한동포, 한가족, 한형제들이 강제로 헤어지게 되어 30년이 넘도록 만나 보지 못하고 살아오는 이 분단의 역사는 실로 너무도 깁니다. 그러나 수천 년 전에 `고조선'이라는 한 나라로 출발했고 그 뒤 한때 삼국으로 갈렸지만 신라가 다시 통일하여 1945년에 이르기까지 1,200여 년을 단일 국가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역사에 비하여 지난 30년간의 남북 분단사는 결코 분단을 고정화시킬 수 있는 긴 기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분단사는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인 단계에서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 잘 알고 있듯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의 한반도 진주에 의해 빚어진 일대 불상사입니다. 우리 나라는 2차 대전 후 서구에서 동서로 분단된 독일과 같은 전범국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36년간 제국주의 일본에 강점되어 억울하게 고생을 해 온 끝에 다시 외세에 의한 민족 분단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거듭된 수난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은 어떤 의미와 사명을 찾아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하느님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사명을 주시기 위하여 이 현대사 안에서 거듭 시련을 안겨 주시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반도는 이른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리어 대립하는 세계 양대 세력 사이의 전초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미 1950년에 일어난 한 차례의 참혹한 전쟁도 겪었지만, 이제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조상 대대로 수천 년을 물려 온 우리의 국토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전쟁의 불길 속에 폐허가 될지도 모를 거대한 전쟁 무기들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북으로 대치한 우리 민족의 현실은 앞으로 인류 세계에 멸망을 가져다 주느냐 아니면 평화를 가져다 주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정의롭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풀어 나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민족이 인류 세계를 위해 짊어지고 있는 사명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명의 구체적인 실현은 바로 우리 민족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그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1972년에 7 4 남북 공동 성명를 내고 회담 대표들이 휴전선을 넘어 남북을 서로 방문하며 혈연의 정을 확인한 일도 있었습니다. 장차 세계 역사에 바람직한 발전의 길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화해'와 `대화'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전통적으로 적대 관계를 지속해 온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해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추세를 보여 주고 있는 한 예입니다. 그들에 비한다면 우리 민족은 원래 고조선 이래 수천 년을 단일 민족으로 살아온 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그런 만큼 우리 민족의 내부적 화해와 통일은 본질적으로 훨씬 용이한 조건 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북한 동포 여러분, 아직도 우리는 남북으로 갈리어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동포 각자가 가슴속에서 민족적 일체감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가면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가장 큰 소원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남과 북에서 경쟁적으로 무력을 증강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우리 자신을 자멸케 할 것을 두려워하여 민족적 양심으로 이를 제지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동포 여러분, 우리는 오직 동포애와 형제애를 바탕으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에만 합심 협력하기로 마음을 굳게 다집시다. 이것은 정의롭고 사랑에 찬 거룩한 과업이므로 하느님께서 도와 주실 것을 믿습니다. 새해에 북한 동포 여러분과 우리 민족 전체에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하게 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197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