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제 4장 통일로 가는 길 3

문성식 2011. 6. 27. 17:32

 

오늘 저는 통일에 대하여 말씀드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짐작하시다시피 한 종교인에 불과한 저는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아무런 전문 지식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통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정치인도 경제인도 아닌 저에게, 저의 이런 제약성을 잘 아시면서도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시는 것은 저로서도 얼핏 이해가 안 갑니다. 그래서 사실 이천환 주교님이 오셔서 이 말씀을 전하실 때 저는 참으로 "제가 무엇을 압니까?" 하고 사양을 하고 이 짐을 면하게 해주십사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맡게 된 것은 이천환 주교님과의 친분과 지난 5월에 연세 대학교가 제게 뜻밖에 주신 명예 학위에 대한 보답의 뜻으로 계속 사양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저에게 통일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고 한 종교인으로서 또는 한 시민으로서 통일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초청에 응하였습니다.

1. 통일의 당위성
통일은 7천만 민족의 간절한 염원이요 그만큼 이 시대에 사는 우리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입니다. 사실 비록 외세에 의하여 분단되었다 할지라도 같은 민족이 5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념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왜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서로 원수가 되어 맞서 있는가?" 이런 의문을 우리 민족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게 될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 이념보다는 민족이 앞선다."고 말씀하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북의 김일성 주석도 이 말씀에는 공감을 하고 남북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후에 이른바 북한 핵 문제가 등장하였습니다. 이 문제로 인해 지난달 10월 18일 제네바에서 북미간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남북 관계는 전쟁의 위험마저도 내포한 최악의 상태로까지 악화되었습니다. 북미간 합의로써 이제 그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합의문 안에 남북 대화 재개가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늘까지 대화가 재개될 전망이 뚜렷하지는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보다 앞서 기대되었던 남북 정상 회담은 김일성 주석의 돌연한 죽음으로 무산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죽음에 대한 남북간의 생각과 정서의 차이-한편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과 같은 실망에 빠져 있는 데 비해서 다른 한편은 통일의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고 보는 시각의 차이-는 남북 관계를 더욱 얼어붙게 하였습니다. 참으로 세상에 알 수 없는 일이 우리 남북 관계입니다. 누가 보든지 동족인데 그토록 오래도록 분단되어 있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비극입니다. 그리고 이 분단은 남북한 어느 쪽을 위해서도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구태여 어떤 의미를 찾는다면 "분단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한에서만이라도 민주주의가 많은 시련은 겪으면서도 지켜지고 있으며, 만일 이 분단이 없었더라면 우리 나라는 이미 오래 전에, 적어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었을 때, 그 시대의 추세를 보아서 우리도 공산화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분단은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말에 일리가 없는 바 아니지만 그러나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분단은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그리고 같은 핏줄, 같은 민족이면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한 일입니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허심 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아무리 얽히고 설킨 관계일지라도 풀릴 수 있을 텐데 그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통일이 되면 서로가 분단 때문에 불필요하게 지출하고 있는 군비, 남한만 해도 무려 10조 원이 넘는 국방비를 비롯한 여러 가지 국력 소모가 없어질 것이고 그 대신에 남북한의 힘이 합쳐지면 경제력의 향상으로 비약적인 경제 발전도 이룩할 수 있을 것이고 세계 속에 당연히 선진국에 들 뿐 아니라 지도적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 총대를 마주 대고 아무런 소용도 없는 소모전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가장 바보스러운 짓입니다. 이런 극히 기초적인 관찰만으로도 `통일'은 남북한 당국자와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하여 이룩해야 할 과제요 지상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당연한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통일의 장애입니까? 처음에 38선을 그은 미소 양국 때문입니까? 중일(中日)을 포함한 주변 사대강국이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까? 제가 너무 문제를 단순히 보는지는 몰라도 우리가 통일을 못하고 있는 것은 주변 강대국의 역학 관계에도 이유가 없지 않으나 가장 중대한 원인은 우리 남북 사이에 지난 50년 동안 쌓이고 쌓인 불신과 미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38선은 단순히 미국과 소련,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 점령의 분계선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념의 차이에서 발생한 6 25 동란이라는 민족 상잔의 비극을 거치고 그 이후에도 거듭된 남북간의 반목과 갈등으로 인한 깊은 골은 지금도 동족의 동질성을 잃고 적대 관계로 갈라 세운 넘을 수 없는 높은 분단의 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동안 몇 차례 대화의 시도도 있었고 남북간 당국자간의 왕래도 있었으나 오랜 세월 이념의 차이에서 온 상호 불신과 미움을 바탕으로 한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남북한 당국자가 함께 마주 앉아서 1992년 2월 19일 상호 화해와 교류 협력을 다짐하는 남북 기본 합의서를 발효시켰지만 그 다음에 이어져야 할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여 어느 한 가지도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된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남북한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 같은 민족이면서 두 개의 이질 집단으로 갈라서 있고 국제 사회에서도 두 개의 나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북한은 동족이요 같은 운명을 사실상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과 체제 차이로 서로 적대 관계를 벗지 못하고 이로 말미암아 상호 불신과 미움이 극에 달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불신과 미움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불신과 미움을 잊고 서로 손을 마주 잡는 화해가 가능합니까? 사실 이런 상태를 보면 "통일이라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온 세계가 동서양 진영으로 대치되어 있던 냉전 시대를 벗어나 너나 할 것 없이 상호 이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 나라가 과거에는 생각하기조차 힘들었던 구소련 및 중공과의 외교 관계 수립이 가능했고 이를 전후하여 과거의 공산 국가였던 대부분의 나라와 수교를 맺을 수 있게 된 것도 냉전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남북 사이는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지고 이 평화 바람이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 국가들에게도 파급될 전망입니다. 이렇게 수백 년 또는 천 년을 두고 불구 대천지원수로 보였던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도 평화와 협력이 가능해지고 있는데 동족인 우리가, 비록 원수졌던 감정이 아무리 짙다 하여도 이를 깨끗이 씻고 서로 다시 형제로 만나고 하나 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통일은 가능할 뿐 아니라 통일은 기필코 이룩되어야 할 당위요 오늘의 민족 구성원 모두의 의무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통일의 유형
통일은 그 자체만을 볼 때 통일의 유형으로서 1) 무력 통일 2) 적화 통일 3) 흡수 통일 4) 평화 통일 이렇게 네 가지로 상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무력 통일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전쟁을 통하여 남쪽이 패하고 북쪽이 승리함으로써 무력 통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근자에 합의에 의해 통일되었던 남북 예멘 간의 무력 충돌이 있었고 내전으로 확대되었다가 북이 힘의 우위로 남을 진압하여 다시 통일시켰습니다. 이렇게 무력 통일의 사례가 있습니다. 중공의 경우 대만을 제외한 중국 대륙을 통일시킨 것 역시 공산 혁명 사상을 앞세운 무력에 의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 과거 신라 통일 또는 유럽의 경우 비스마르크 때의 독일 제국 통일 등이 모두 무력 또는 힘의 우위로써 된 통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무력, 혹은 힘의 우위에 의하지 않은 통일이, 엄격한 의미로 평화 통일의 사례가 역사상 과연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서독의 통일은 평화 통일이면서 동시에 분명하게 그것은 서독이 경제 면에 있어서 월등하게 우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보여집니다. 다시 말해서 서독의 힘의 우위에 의한 통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힘을 바탕으로 한 무력 통일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나열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1 그러나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비록 통일을 얻지 못하더라도 전쟁만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국민의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6 25 동란의 경험에 비추어 남북한 모두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고 그 결과는 민족 사회의 파탄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에 이루어진 북미간의 합의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함께 전쟁 방지 및 억제를 위한 보장을 뜻한다는 견지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2) 적화 통일
`공산주의 혁명을 통한 한반도 민족 통일'은 공산주의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의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는 북쪽의 기본 노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근자에 와서 북쪽이 통일을 위해 연방제를 제시하면서 북쪽도 평화 통일을 더 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공산 혁명을 통한 적화 통일의 바람을 버렸다는 확신을 우리는 아직 가질 수 없습니다.2 그러나 이러한 모습의 통일은 가능성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가장 희박하다고 볼 수 있고 만의 하나라도 북쪽이 이것을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면 그것은 결국 남북간 동족 상잔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흡수 통일
이것은 동구 공산국의 붕괴와 함께 동독이 붕괴되어 서독에 흡수 통일된 경우처럼 북의 체제가 붕괴되어 남쪽에 흡수 통일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거듭 강조된 바대로 흡수 통일이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점은 지난번 중국의 이붕 총리가 내한하였을 때도 북쪽에 이 뜻을 전달해 주도록 이영덕 총리가 요청함으로써 또 한 번 천명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 안에도 독일 통일의 경험에 비추어 흡수 통일이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견해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흡수 통일은 여전히 하나의 가정으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통일은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다든지, 혹은 체제 경쟁은 끝났다든지라고 한 발언들은 그 이면에 흡수 통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그 말들은 북의 체제는 곧 무너질 것이고 그것은 또한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국민 안에서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국내 전문가들 중에서도 흡수 통일의 가능성을 말하는 이가 적지 않고 외신을 통하여 들려 오는 말들 중에서도 같은 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11월 3일자 중앙 일보 석간에서 흡수 통일이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외국 전문가의 예견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흡수 통일이 되기 위하여는 북의 체제가 붕괴되어야 할 터인데, 북의 체제가 과연 그렇게 멀지 않은 장래에 붕괴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는 대단히 의심합니다.3 또 설사 흡수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북한 동포들을 한형제로 품어 안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4 그러므로 흡수 통일에도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평화 통일
이상과 같이 무력 통일이나 적화 통일은 결코 있어서 안 될 일이고 흡수 통일도 최선의 방법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통일은 평화 통일입니다. 이것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여 김영삼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말한대로 어떤 이념이나 체제도 어떤 동맹도 민족보다 앞설 수 없다는 정신과 여기서 우러나오는 동포애와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그간에 있었던 모든 구원(舊怨)을 씻고 참으로 형제적으로 서로 껴안는 통일입니다. 제가 77년 11월에 어떤 회의 때문에 로마에 갔을 때 거기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적대 관계를 평화 관계로 바꾸기 위해 텔아비브로 날아가 이스라엘의 당시 베긴 수상과 포옹하는 것을 생방송으로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서 "오랜 세월 원수였던 이민족간에도 저렇게 평화의 포옹이 가능하다면 동족인 우리에게 왜 가능하지 않은가?"-당시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였기 때문에-"박정희 대통령과 북의 김일성 주석이 평양에서든 서울에서든 왜 저렇게 만날 수 없을까? 한국에 돌아가면 기회를 보아서 박 대통령에게 꼭 이 생각을 전하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 김일성 주석의 죽음으로써 무산되고만 남북 정상 회담을 모든 국민과 함께 저도 기대하였습니다. 때문에 김일성 주석의 죽음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죽음을 두고 통일의 큰 걸림돌이 사라졌으니 통일이 더욱 가까워졌다고 보는 이도 있으나 속으로 정상 회담이 성사되었더라면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무산되었으니 통일은 더 멀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어느 편의 판단이 옳은지는 아직도 더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제는 북쪽의 권력 승계가 확실하게 이룩되고 북의 체제가 안정될 때까지는 정상 회담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평화 통일을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서로 만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먼저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 가야 합니다. 이른바 삼통(三通)이라는 자유 통신, 자유 통행, 자유 통상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길이 열려서 교류 협력이 단계적으로 실현되어 가야 합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상호 신뢰와 유대가 깊어지고 같은 민족의 잃었던 동질성도 회복될 것이며, 이 관계의 심화에서 평화 통일이 이룩될 것입니다. 그 평화 통일의 방식이 북쪽에서 제시하고 있는 고려 연방제가 좋은지, 아니면 김영삼 대통령이 제시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 좋은지, 또는 김대중 씨가 제시하고 있는 남북 공화국 연합제가 좋은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가 있을 때에 충분히 검토될 수 있을 것이고 순리적으로 합의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 통일 방안이 아무리 좋고 그 자체가 합리적이고 이상적일지라도 남과 북이 마주 앉지 않으면 한 가지도 이룩되지 않습니다. 모든 평화 통일론은 탁상 공론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남북 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얼어붙어 있습니다. 특히 지난번 김일성 주석의 사망 이후 남북 관계는 돌이키기 힘들 만큼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것은 김영삼 대통령이 얼마 전에 기업인들의 방북 허용과 함께 제의한 남북 경제 협력안을 북쪽에서 악의에 찬 대북 위장 전술이라고 비난하면서 정면으로 거부한 데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렇게 미움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적대 감정을 품고 있는 북을 어떻게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느냐, 저는 이 점을 거듭 생각하고 좀 알 만한 이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누구도 만족할 만한 그리고 현실성 있는 해답을 준 이가 없었습니다. 북미 회담 전에는 평양은 절대로 서울을 거치지 않고 워싱턴에 갈 수 없다고 우리 정부는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우리 편이 오히려 워싱턴을 거치지 않고 평양과 말을 건넬 수도 없는 꼴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대화를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둘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을 것이니 그 때를 기다려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차근차근히 통일을 생각하고 그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통일이 아니고 참된 통일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는 어떤 평화 통일을 원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어떤 통일을 참으로 바라는 것인지, 우리가 원하는 평화 통일은 무엇인지, 통일 한국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평화 통일은 말할 것도 없이 자유 민주주의를 전제로 한 통일입니다.5 즉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개인의 사유 재산권, 기업 활동의 자유 등이 보장되는 민주적인 나라, 한마디로 참으로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 모두가 서로 위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실현시키는 통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념과 제도에 있어서 이질적일 뿐 아니라 적대 관계에까지 서 있는 남북 관계를 어떻게 그런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일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과연 가능한가, 참으로 요원해 보입니다. 통일은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긴 순례의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남과 북은 우선 서로의 이념과 체제를 존중하면서 평화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 교류와 협력을-특히 경제 면에 있어서-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남쪽의 우리는 지난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군사 독재 정권 아래서 가진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면서 오늘의 문민 정부를 이룩할 만큼 민주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북쪽 역시 개방되고 북쪽 역시 그 이념과 체제의 경직성을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개방과 변화는 북쪽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가 북쪽을 향하여 지금 아무리 바란다 해도 될 일은 아니고 북쪽 사회 스스로 개방을 통하여 자유 세계와 접촉함으로써 그와 같은 변화가 점진적으로 북쪽 사회 내부에서부터 일어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이것은 결코 북쪽 사회의 붕괴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북쪽이 지나친 경제난 등으로 말미암아 붕괴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북쪽이 점진적으로나마 개방되고 남쪽의 경제 협력의 손길을 받아들여 함께 경제난을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보다 더 잘살게 될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나라가 남의 나라이며 북쪽의 혈맹국인 중국을 비교적 자유롭게 방문하고 그곳에서 기업 활동도 할 수 있듯이 북쪽도 중국의 실용주의를 따름으로써 그렇게 통행, 통신, 통상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북쪽이 사회주의를 견지하더라도 참된 민주주의로 변화되어 나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바람을 진솔하게 나타내고 그 참된 결실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려면 북쪽의 변화와 함께 우리 남쪽에서도 먼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의 삶이나 생각이 변화되어 북쪽이 우리를 신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지금 북에 비해서 모든 면에 있어서 우위에 서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체제 경쟁에 있어 북을 이미 이겼다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우리는 물론 민주주의에 있어서 앞서 있고 경제에 있어서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과 도덕적인 힘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정신이나 도덕심에 있어서 앞서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참으로 민주 시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이른바 세계화 또는 국제화 속에서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성수 대교 붕괴를 비롯하여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흉악 범죄와 사건들, 매일같이 이어지는 세무 공직자의 부정과 사기 행각, 온갖 부도덕한 행위와 교통 질서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우리의 후진성을 볼 때에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을 참된 의미의 민주 시민이라고 말할 수 없고 더구나 세계화 속에서 앞서 있다고 자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통일을 기할 수도 없고 통일된 민족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갈 수 없습니다. 또한 앞으로 남북간에 교류 협력이 있다 해도 이런 상태로는 북쪽 사람들을 우리와 같이 물질주의자로나 이기주의자로 타락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같은 민족으로 민족 공동체 통일을 위한 동반자로 확신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많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삶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정직과 성실 등 도덕성을 회복하고 잃어 가는 인간성을 찾아야 합니다. 정치 개혁과 함께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복지를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빈부의 격차나, 지역 감정 문제 등을 해소시키고 우리 서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와 나라를 건설해 가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중국 연변의 동포도 재일 교포를 비롯한 해외 동포들 모두를 껴안을 만한 아량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되면 이런 모습을 세계 사람들이 보게 될 것이고 북쪽 역시 함께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민족애와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가 북의 주체 사상이나 그 체제에 비하여 얼마나 우월한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북쪽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들이 신봉해 온 사상이나 체제를 반성하고 변화시키게끔 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통일의 길은 참된 인간화의 길
저는 오늘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측면에서가 아니고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평화 통일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겠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은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국민 스스로 좀더 순수하게 이 문제에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이자는 당부의 말씀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참된 인간화의 길을 열어 나가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동족이면서 갈라져 미움으로 대치해 있는 현재의 적대 관계를 해소시키고 서로 마주 앉게 하고 서로 끌어안을 수 있게 만들 수는 없는가?" 현재의 마음 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를 적으로 보는 한 평화 통일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 정부나 국민이 북을 대할 때 진실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명분을 찾고 생색을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의 선의마저 의심하겠지만 그러한 선의가 시종 일관하다면 역시 동족은 다르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제쳐놓고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기대해 보았다가도 결국은 동족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변화되기 위하여 우리들,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 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남북간의 불신과 미움을 해소하고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주님이 권고하시는 대로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빈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의 영광이 이 땅에 이루어 지도록 빌고 우리 자신을 낮추어 사랑의 봉사를 다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18, 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 저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감명 깊은 영화 한 편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보다도 지능이 낮은 주인공이 순수한 마음 하나로 그 사회에서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영화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구원의 길이 바로 그러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매일같이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도하면서 삽니다. 소박한 마음으로 사랑과 봉사에 힘쓰면서 우리 사회의 인간화를 위해 정성껏 사는 것이 신앙인들의 생활이요 삶입니다. 그것이 또한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위정자들은 위정자들대로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북을 돕기 위해 힘쓰면서 남북 관계를 참된 인간화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평화 통일의 첩경일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용서와 화해만이 미움과 불신으로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녹일 수 있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 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분들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또 참된 평화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바입니다.

(1994. 11. 24.)


1) 11월 초 노재봉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을 국회에서 했다. "지금이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이다." "우리에게 선택은 전쟁이냐, 항복(降伏)이냐, 공세적 방어냐의 세 가지 뿐이다." 이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방어를 위해서라도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이도 있다.
2) 최근 11월 1일자 북쪽 `노동 신문'에는 김정일의 이름으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제목으로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 내용은 사회주의 체제의 종국적 승리를 호언한 것으로서 북쪽은 공산주의 혁명을 끝까지 고수할 것이고 따라서 통일에 있어서도 이 혁명 노선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노동당 규약과 북의 형법에는 적화 통일을 전제로 한 조항들이 아직도 있는 줄로 알고 있다.
3) 북에는 수백만 노동 당원뿐 아니라 백만 대군이 건재하다. 그들이 있는 한 북 체제의 붕괴는 가능하지 않다. 또 중국 역시 북의 붕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정치, 경제, 군사 행동까지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우리는 연변에서 온 우리 동포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쪽에서 수백만 유민이 생겼을 때 이를 우리가 동포애로 잘 맞을 수 있겠는지 의심스럽다. 아울러 최근 산은에서 발표한 통일 비용을 보면 엄청난 것이다. 최근 산은에서 발표한 통일 비용 산출을 보면 갑작스러운 통일의 경우 10년간 1천200조 원이 들고 2000년에 통일이 달성되면 10년간 1천800조 원이 든다고 한다. 전자의 경우 2004년까지 북한의 경제 수준을 남북한의 60퍼센트로 끌어올리려 해도 6백44조 원이 든다고 한다. 이것이 올해 전체 국민 소득 300조 원의 2배가 넘는다. 어느 경우이든 우리의 경제력으로 볼 때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부담이다.
5)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8 15 담화에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통일은 자유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통일이어야 한다."고 통일의 기본 철학을 분명히 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