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환상적인 커플이 또 있을까?”
우리 부부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든 완벽한 한 쌍의 부부가 클리닉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잘 생긴 남편은 능력 있어 보였고, 미모의 아내는 지적이고 착하게 보였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부부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병원을 찾았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선생님, 결혼 3년차인데 애기 좀 갖게 해주세요!”
“그렇다면 불임 클리닉에 가셔야죠. 저희들은 성기능장애나 부부갈등이 전문인데….”
사전조사를 제대로 한 듯한 남편이 손사래를 친다.
“그게 아니라 저희가 3년 동안 삽입 한 번 못했습니다.”
아내는 부끄러워 한 마디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무래도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우선 남편을 진정시키고 아내와 별도의 상담을 시작했다.
“선생님, 너무 무서워요. 다른 사람은 처음에만 아프고 몇 번 경험하면 즐겁다는데, 저는 남편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녀는 결혼 전까지 단 한번도 성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부모는 성이란 위험해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서 성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없어졌지만 막상 남편의 것이 가까이 오면 심장이 뛰고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남편은 억지로 넣으려고 하니 아파서 못 견디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질 경련증’이 원인이다. 실제로 검사를 해보았더니 질은 과다한 긴장상태에 빠져 있었다. 검진 도구를 질 가까이 갖다 대기만 해도 질 근육은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질 경련증은 대부분 심리적인 억압에 기인한다. 질 경련증이 있는 상태에서 억지로 삽입 성행위를 시도하면 통증만 심해져 성행위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런 환자들은 우선 과도한 긴장상태를 풀 수 있도록 이완요법을 시행하고, 아주 작은 사이즈의 인공페니스를 사용해서 여성의 몸이 자연스레 남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한 대부분 심리적인 억압이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심리치료도 필수적이다.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치료 효과가 아주 높은 성기능장애다.
이 부부는 질 경련증을 치료 받으면서 자연스레 삽입 성행위가 가능해졌고, 임신도 했다. 요즘은 출산 준비를 하느라고 바쁘다.
아내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남자들
미국에서 만났던 제이슨(가명)이란 환자가 떠오른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성공한 사업가인 그는 필자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 2002년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에 대해 엄지를 치켜세웠던 인물이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하와이와 마이애미에 별장을 갖고 있을 만큼 사업에 성공했고, 자신만만한 그였지만 침실에서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 자위를 하거나 다른 여자와 성행위(?)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유독 아내와 성행위 때는 발기가 되지 않아요. “
이런 경우 발기를 유발하는 혈류나 해면체 조직, 발기능력에 연관된 남성호르몬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 어떤 기계고장도 없는데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기가 안 되는 상황성 발기부전(Situational Erectile Dysfunction)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성 발기부전은 남자로서 상대를 꼭 만족시키고 싶은 경우, 즉 주로 아내와 같이 소중한 상대에 대해 성행위를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중압감이나 긴장, 분노, 불신 등 심리적 원인에 따라 발기가 안되는 상태다.
제이슨의 심리를 분석해봤더니, 결혼전 연애과정에 아내가 다른 남성에게 감정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남자와 심각한 경쟁을 벌인 후 마침내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무의식에는 연애시절 자신과 다른 남자를 두고 저울질한 아내에 대한 분노와 아내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내가 떠나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런 심적 긴장은 신체의 교감신경을 항진시키고 그에 따라 아드레날린 분비가 증가하여 발기시에 닫혀야할 정맥이 차단되지 못한다. 이렇게되면 해면체에 꽉 차야할 혈류가 해면체밖으로 줄줄 새서 발기가 안된다. 보통 상황성 발기부전의 경우 부부가 전희를 할 때는 그나마 발기가 되다가도 삽입직전이나 삽입성교 초반에 발기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외에도 상황성 발기부전의 남성중에는 아내의 성교통 때문에 발기시 필요한 성적흥분을잃어 발기가 안되는 경우도 있다. 즉, 질경련이나 성교통증을 가진 아내가 자꾸 엉덩이를 들고 삽입을 피하다보면 남성의 성적흥분이 뚝뚝 차단되어 발기가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기계고장이 아니요, 물론 마음을 편히 가진다고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다.
이에 반해 중년 남성의 상황성 발기부전의 경우에는 심리적인 문제에 덧붙여 발기력을 관장하는 혈관이나 호르몬 문제 등 신체적인 문제가 중복된 경우가 많다. 기계가 부실하니 발기력이 약간 떨어지는데, 자극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미 익숙한 아내 앞에서 발기는 더 안되는 것이다. 이럴 땐 음경의 혈류순환을 확인하는 도플러검사나 호르몬 검사등을 해보면 기계적 고장의 정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아무래도 남편이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제이슨의 아내도 그렇게 불평했었다. 실제로 발기부전의 남편을 둔 여성중에는 남편의 성기능이 왕성해야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발기부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문제다. 즉, 발기부전에 빠지면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더라도 발기가 되지 않으며, 지루 환자의 경우에 사정을 하지 않거나 남성의 갱년기 장애로 인해 정액량이 줄어든 것을 두고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남편을 두고 무턱대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며 의심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남편을 잘 설득해서 전문의의 치료를 받게하는 것이 옳다.
섹스는 변주곡, 성감대 자극법 다양해져야
“ 아내와는 더 이상 즐거움이 없다보니깐….”
부부의 성생활이 뜸해지던 차에 실수로(?) 한 눈을 팔았다는 40대 남성 S씨, 한번의 외도가 아내에게 걸리는 통에 진료실까지 끌려왔다며 필자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엔 부부간의 성적 불만족을 다른 파트너를 찾아 해소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특히 우리나라만큼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을 쉽게 사고파는 나라가 또 있을지 외국과 비교해보면 더욱 안타깝다.
성생활의 만족감이나 다양성이 1 명의 배우자로는 힘들다보니 다른 파트너를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남성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이는 반성해야할 생각이다. 외도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도 당연하지만, 이런 행동이 갖는 의미가 성의학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즉, 부부간에 성적 만족감이 떨어질 때 이를 두 사람이 함께 풀어야할 숙제라는 생각보다는 상대의 성기능에 결함이 있다고 막무가내로 비난하거나 다른 파트너를 구해 새로운 쾌감을 찾는 것은 성행위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로 사랑하고 있는 파트너를 제쳐두고 다른 상대를 찾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복잡한 심리적 문제나 갈등도 있겠지만 아주 단순한 공통점도 있다. 즉, 성행위에서 입맞춤, 가슴 몇 번 만지고 그 다음은 삽입성교를 하는 식이다. 개중에는 발기력이 예전만 못하고 오래 유지되지 않으니 발기가 수그러들기 전에 재빨리 삽입을 해야만 되는 불쌍한 조급증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행위의 다양성인가? 그나마 우리나라 부부들에게 지켜지는 것은 체위의 다양성이다. 하지만, 체위의 다양성에 식상해지면 그 외에는 별로 다양성을 위해 더 시도해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성행위의 다양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기저기에 숨어 있다. 즉, 성감대 자극을 통한 전희, 전희를 한다면 어떤 성감대를 몇 개나 어떤 자극 방식을 몇이나 조합할 지, 음경이나 클리토리스·G스폿의 자극 여부와 방식, 자극시 삽입전에 오르가즘에 미리 도달시킬 지 여부 등등 그야 말로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성감대나 클리토리스·여성의 G 스폿 등등의 얘기를 하면 매번 삽입성교 전에 최고의 즐거움을 줘야하는 것이냐며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런 저런 방식으로 상대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주면 좋겠지만 삽입성교 전에 매번 오르가즘까지 도달할 필요는 없다. 어떤 때는 오르가즘까지 끌어올리고 어떤 때는 가볍게 기분좋은 수준으로 변주곡을 행하는 것이 더욱 성적 흥분의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고 매번의 성행위가 새롭게 느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덧붙여 아침·저녁 등 성행위 시간대, 성행위 장소와 그 환경 등등 성행위의 다양성을 이끌 수 있는 요소들을 조합하다보면 평생 똑 같은 성행위는 불가능하며, 각자의 취향과 만족감을 내 배우자만큼 제대로 나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게 된다.
어떻게 매번 똑같이 ‘그 나물에 그 밥’, 똑 같은 방식의 피스톤운동으로 즐거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비빔밥도 먹고, 여름철엔 냉면도 먹고, 또 이렇게 음식에 있어서는 다양한 미각을 가진 한국 사람들이 유독 성행위에서만은 철저히 편식만 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다양한 요리를 즐기며 만족감을 얻듯 성생활에서 파트너를 바꾸는 것이 만능열쇠일까? 답은 ‘절대 아니올시다’ 이다. 일부일처제의 문화적 현실에서 성생활의 다양성과 그 즐거움은 바로 사랑하는 아내와 다양한 즐거움을 가질 수 있어야 두 사람의 성생활이 즐겁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긴 인생 여정을 함께 하는 부부의 성생활은 소꿉놀이나 마찬가지다. 매번 똑같은 소꿉놀이로 쉽게 흥미를 잃을 지, 서로 이런 저런 희망사항을 솔직하게 터놓고 놀이방식에 약간씩 변주곡을 만들어가며 소꿉놀이를 즐길 지는 부부 양측 모두에 달린 것이지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니다. 어차피 한 손으로 박수를 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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