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을 옮겨심다
오늘 아침 뒤꼍에서 개망초를 꺾어다 오지 항아리에
꽂았더니 볼만하다. 아니, 볼만하다가 아니라 볼수록
아주 곱다. 개망초는 산자락이나 밭두둑 어디서나 마주치는
흔한 꽃이다. 너무 흔하기 때문에 꽃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스치고 지나면서 눈여겨보지 못했는데 가까이서 두고 보니
아주 사랑스런 꽃이다. 꽃이 흰빛인 줄만 알았는데 가까
이서 보면 눈에 띨 듯 말 듯 연한 보랏빛을 머금고 있다.
그리고 그 어떤 화병보다도 오지 항아리하고 잘 어울린다.
이런 걸 찰떡궁합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서나 지천으로 피어 있기 때문에 개망초의 아름다움을
미처 몰랐는데 잘 어울리는 그릇을 만나자 꽃은 가려진
자신의 속뜰을 활짝 열어 보이고 있다. 이 일이 오늘 하루
명상의 실마리가 되었다.
장마철에 가끔씩 날이 들면 장화를 신고 대지팡이를 끌며
숲길을 어슬렁거렸다. 7월의 들꽃 중에서는 나리가 가장
눈에 띈다. 그 중에도 꽃잎이 가늘고 여린 ‘하늘말나리’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들꽃은 그 꽃이 저절로 자라는
그 장소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꽃만 달랑 서 있다면 무슨 아름다움이겠는가.
덤불 속에 섞여서 피어 있을 때 그 꽃이 지닌 아름다움과
품격이 막힘없이 드러난다.
이런 자연의 조화(調和)를 잘 알면서도 엊그제 나는
‘하늘말나리’를 몇 그루 내 오두막으로 데려 왔다.
가까이에 두고 싶어서였다. 부엌 들창문을 열면 요즘
원추리가 무리지어 꽃대를 들어 올리고 있다. 그 곁에
하늘말나리를 심었다. 잘 어울린다. 부엌일을 하면서도
눈길은 연방 하늘말나리 쪽으로 간다.
이따금 고추잠자리가 그 여린 꽃에 잠깐 머물기도 한다.
하늘말나리가 지고 나면 뒤를 이어 원추리가 피어날 것
이다.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생식물원’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희귀한 들꽃도 구경하고, 꽃나무 모종도 구할
수 있다. 7, 8월이면 다리 건너에 산수국의 군락지가 있어,
다른 데서는 보기 드문 산수국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오두막 묵은 밭에 전나무, 자작나무, 가문비나무,
복숭아나무, 모란과 함께 마가목을 여남은 그루 심었었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매달린 빨간 열매도 일품이지만
산에서는 겨울철에 마가목을 달여 차로 마신다.
그런데 풀 베는 일꾼이 화목에는 무지해서 죄다 베어
버리고 단 한 그루만 겨우 남겨 두었다. 미리 일러두었는
데도 그랬다.
빠리 길상사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걸어서 가는 길가의
가로수가 마가목인데 가을이면 눈이 시리도록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뜰 가에 회나무가 한 그루 무성하게 가지를 펼치고 있다.
10여 년 전 양재동 나무시장에서 어린 묘목을 사다 심었
었다. 모진 추위를 어렵게 어렵게 견뎌내더니 올해 처음
으로 가지 끝에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회나무가 어린 시절, 나는 차를 마시고 나서 우려낸 잎을
회나무에 주면서 나하고 잘 지내자며 그를 쓰다듬으면서
달래 주었었다.
이제 그 보답으로 꽃을 피우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식물은 들인 공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졌다. 사람인 우리는 살아 있는 나무와 꽃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이 여름 당신 곁에서는 어떤 꽃과 나무들이 당신의
가슴에 말을 걸고 있는가?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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