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바른신앙 이해

문성식 2022. 9. 11. 13:15
 
 


♣ 바른신앙 이해 ♣

 
세상이 나쁜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처럼 보이듯이, 교회도 가라지들에 의해서 점령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 안에 소수의 알곡이 있기 때문에 교회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비판할 수는 없다.
 
믿음에 대해.
 
한국인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가정과 직장에서는 비그리스도인이다. 교회 일은 열 일을 제쳐놓고 앞장 서지만, 가정과 직장에서는 조그만 일에도 짜증과 불만을 토해낸다. 한국인의 믿음은 교회에서는 뜨겁지만, 가정과 사회에서는 차갑고 죽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가정 생활이 세속적인 마음과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면, 믿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일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 거칠고 온유하지 않은 태도로 말을 주고 받는다면, 그들은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참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생명으로 의롭게 된 의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가! 만일 우리의“믿음”이 남편이나 아내에게 부드럽고 친절한 말과 음성을 들려주는 것과 같은“행함"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3:18. 살아있는 믿음이 없이는, 어떤 사람도 하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죽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영생을 결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닥쳐오는 모든 종류의 시험과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살아있는 믿음으로 그것들을 대적하는가? 아니면 하루종일 그것들에 질질 끌려다님으로서 신경질과 분노와 원망 속에서 하루를 마치는가?
 
만일 남편과 아내로서,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회에서 인정받는 장로(권사) 입니다.
 
나는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빠지지 않고 냅니다.” 물론, 그런 모든 희생과 헌신이 좋은 것이긴 하지만,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바울의 영감적인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은혜에 대해.
 
한국 기독교인은 은혜로 율법과 도덕적 원칙을 폐해 버렸다. 한국 기독교인은 십자가의 은혜를 정신적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환상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은혜에 대한 이러한 오해 때문에 깊은 회개의 경험과 죄와 세속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올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은혜로 자신의 구원이 이미 확정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십계명과 성경의 진리대로 사는 삶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들은 진정 은혜로 율법을 폐해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모본과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마음과 생애를 바치는 대신에, 편히 앉아서 십자가의 은혜가 주는 위로와 용서를 즐기는 것이 한국인의 신앙이다.
 
그러나 은혜의 참된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생애하게 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 13:44. 죄의 용서를 위하여 우주의 왕이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얼룩진 은혜를 헐 값으로 팔아넘기려고 하는가?
 
십자가에서 제공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산산히 깨어지고 그 영혼은 그리스도의 진리 앞에 납작히 엎드려지게 된다. 그리하여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늘 아버지의 계명과 뜻을 받드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삶은 구원을 받아내기 위하여 마지못해 애쓰는 척하는 위선이나 고달픈 율법주의가 아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탕자가 감사와 기쁨으로 아버지의 뜻을 받들며 살아가는 참 신앙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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