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

문성식 2011. 2. 11. 23:31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41] 동일방직 노조탄압 사건
 
'기계' 취급 받는 노동자 인권유린 방관할 수 없어
 
 
<사진설명>
김수환 추기경이 단식농성 중인 동일방직 노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상품은 공장에 들어가 값진 물건이 되어 나오지만 인간은 공장에 들어가 폐품이 되어 나온다."
 
교황 비오 11세가 발표한 회칙 '사십주년'(1931년)에 있는 구절이다.
 
요즘은 '노동귀족'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기업주들은 "노조 무서워서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야겠다"고 불평할 정도로 노동자 권익이 향상됐다. 그러나 1970년대 노동자들은 교황 비오 11세가 지적했듯이 상품을 생산하는 기계 취급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그들 구호가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것이었을까.
 
1970년대 노동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다. 농촌에서 올라온 앳된 소녀들은 먼지구덩이 작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생존권을 요구하자 기업주와 정부 당국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요구를 짓밟았다.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노조탄압 사건이 줄을 이었다.
 
그 무렵 가톨릭이 노동자 인권유린을 방관할 수 없어 뛰어든 사건이 1978년 인천 동일방직 노조탄압사건이다. 1970년대 노동현장의 암울한 현실과 권력기관의 횡포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1978년 3월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누군가 "여공들이 단식농성을 하러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고 일러줬다.내 기억으로는 노동자들이 명동성당에 들어와 시위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특히 1990년대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노조시위 때문에 홍역을 치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여공들을 만났다. 앳된 소녀나 다름없는 여공 30여명이 흐느끼면서 절규했다.
 
"추기경님, 우리를 살려주세요. 회사 조종을 받는 남자 직공들이 우리를 구타하고 인분(人糞)까지 뿌렸습니다. 사복형사들은 그 광경을 낄낄거리면서 보고만 있었어요."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여공들이 기업주 횡포를 견디다 못해 권익을 찾고자 노조를 결성했기로서니 어떻게 인분을 뿌려가면서 무차별 난타할 수 있을까. 확인 결과 회사측은 남자 직공들을 동원해 노조 간부들을 구타하고, 노조 대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등 노조를 와해시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회사측이 어용노조를 내세웠는가 하면, 기동경찰은 노조대의원 회의장에 난입해 노조원들에게 심한 구타를 가했다. 여공들이 졸도하고 병원에 실려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여공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더 이상 호소할 곳이 없어 성당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여공 110여명은 명동성당과 개신교쪽 도시산업선교회 두 군데에 분산돼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강원룡 목사와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들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나를 찾아왔다. 논의 끝에 어떻게 해서든지 여공들의 권익을 지켜주고 정부에 노동탄압 중지를 촉구하기로 했다. 나와 강 목사는 "정부측과 협상해서 대의원선거 이전 상태로 되돌려 주겠으니 단식농성을 풀라"고 종용했다. 여공들은 그 말을 듣고 10여일만에 농성을 풀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공들은 회사측 저지로 공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새벽에 공장 정문을 밀고 들어가 기계를 붙잡고 "우리는 일하고 싶다"고 절규했으나 강제 해산당했다. 노조 간부들은 구속됐다. 정부 관계기관은 처음 약속과 달리 그들의 복직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2월에 촉발된 사태가 가을까지 치열하게 이어졌다. 명동성당은 기도회를 열고, 주교단과 개신교쪽 한국교회사회협의회는 노동자 인권탄압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나라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조국건설의 역군이라고 부르는 연약한 여성 근로자들을 이렇게 학대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왜 이렇게까지 사람이 사람을 짓밟고 울려야 합니까? 이 나라 법은 약한 자들을 벌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까? 정부 당국과 기업주는 제발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시오. 우리는 지금까지 자중하고 인내했습니다. 그러나 힘없는 이들을 계속 짓밟으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양심과 신앙에 따라서 행동할 것임을 밝혀둡니다."(8월20일 명동성당 기도회 강론 중에서)
 
그러나 소용없었다. 교회는 이들을 돕기 위해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다시 오물을 뒤집어쓰는 모욕을 당하고 쫓겨났다. 정부 관계기관의 묵인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노조 편을 들어줄 리 만무했다. 1970년대 노동현실은 참으로 서글펐다. 그래서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순간이 많았다.
 
예수님은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물음에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루가 10, 25-37)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반쯤 죽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누가 이 가엾은 사람을 도왔는가. 사제와 사제족에 속하는 레위 사람은 그냥 지나쳤다. 이 두 사람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기도나 제사를 드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을 게다. 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보살펴 주었다. 사마리아인은 선민사상을 갖고 있는 유다인한테 멸시를 받던 이방인이었다.  
 
이 비유는 굉장히 의미있는 말씀이다. 사도 바오로는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하신 이 한마디 말씀에 요약됩니다"(갈라 5,14)라고 말했다.
 
나는 노동운동에 대한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런데도 기업주와 정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동일방직 노동자 편을 든 것은 그들이 강도를 만나 쓰러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업주와 경찰의 폭력과 허위조작에 쫓겨 울면서 성당에 온 여공들을 내친다면 사제나 레위 사람의 행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은 노동문제 개입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 보여준 이웃사랑이다.
 
예수님이 이 비유에서 누구보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자부하는 사제와 레위 사람을 등장시킨 것을 우리 교회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회는 노동자와 농민 등 약자 편을 드느라 오해를 많이 받았다. 심지어 가톨릭은 좌익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70년대 말에 터진 '오원춘 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평화신문, 제764호(2004년 3월 14일), 정리=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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