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본질 ★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아끼고 귀중히 여긴다면 사랑이 변한다거나 사랑 때문에 힘들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어느 주례사의 식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아끼고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 대상과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일처럼 여기게 됩니다. 둘로 구분하는 이원성에 빠져있지 않고 하나된 느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치 않는 지나친 관심으로 부담을 주거나, 소유 또는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강한 소유에 대한 집착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사랑으로 여긴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움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집착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결핍의 감정을 느낄 때 생깁니다. 부족하지 않고 충만하다면 굳이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핍을 느낄 때 부족함을 채워주는 대상이 나타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시 부족하다는 결핍을 느끼면 다시 불안해지고 다시 결핍을 메우려고 한다면 그러한 감정은 진정한 사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그 자리에 있을 뿐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것은 시시각각 생각과 감정으로 움직이는 오직 에고(ego)의 마음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충만한 즐거움과 기쁨을 다른 이와 나누고자하며 다른 이에게 받아서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충만함으로 채워야 합니다. 충만함을 물질적인 것으로 채우려 한다면 일시적인 포만감만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충만함은 감사를 통해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충만감을 통해 채워야 합니다. 자신이 행복해져 마음이 풍요로워 충만해지면 이기적인 에고(ego)에서 이타적인 참나의 상태로 다른 사람과 대상을 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즉, 자신을 먼저 이롭게 함으로써 비로소 타인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언뜻 보면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보이나, 이 순간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여유롭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채워지지 않은 결핍된 자신이 억지로 짜낸 이타적인 에너지가 소진될 때 자신과 다른 사람과 대상을 원망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희생과 인내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희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자신과 다른 대상을 구분하는 이원성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희생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상대방에 맞추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내바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과 이웃이 하나라고 여기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며 기꺼이 즐겁게 받아드리는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자신과 다른 대상을 자신의 몸과 같이 여김으로써 배려와 존중을 하게 되고, 반대로 집착하고 소유하려고 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다면 갈등을 만들게 되고 결국 반대되는 감정인 미움으로 변하게 됩니다. 세속의 사랑은 시간의 지남에 따라 계절의 변화와 같이 변합니다. 예를 들어 남녀 간의 사랑의 시작은 서로 같은 관심사에 이끌리거나,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색다른 매력에 이끌려 호감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치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부드럽게 마음을 흔들며 찾아와 여름날의 뜨거운 태양과 폭우처럼 강렬하게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들의 고운 추억의 잎사귀는 시든 낙엽으로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결국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에 부는 바람처럼 마음은 차갑게 변하고 외로이 홀로 남게 됩니다.
예전 서로에게 호감을 가졌던 같은 관심사는 지루하게 변하고,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색다른 매력은 자신과 다른 성격차이라는 이유로 멀어지게 합니다. 만나기 전부터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성격의 차이를 시간이 흐른 후에 거론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서로에게 있는 결핍을 상대방을 통해 채우려 했다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상대방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받아드리지 못한다면 주어진 인생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지혜의 틀을 넓힐 수가 없습니다. 결국 사랑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서로 다름을 받아드려야 의식의 확장을 이룰 수 있고, 이를 통해 지혜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충만한 상태에서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갈등의 씨앗을 심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면서 충만해지고 충만해진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몸에 갇혀있는 자기라는 의식이 확장 됩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 즐거워하고 만족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통해 자신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며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교정하고 균형을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지금 여기에 존재합니다. 단지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신성(神性) 또는 불성(佛性)이 있다고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데 신성과 불성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단지 참나의 신성 또는 불성을 통해 나타나야 할 사랑이 에고(ego)의 욕심과 분별심에 의해 가려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주변 사물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삶을 살아가며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에 기뻐하며 사랑을 잃어버림에 슬퍼합니다. 이를 보면 사랑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고자 하는 잠재적 욕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랑이 표현되는 것과 느낌을 이해하기 위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체험의 장인 지구를 찾아 온 지구별 여행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