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부방이 생기던 날 ◆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면서 우리 가족은 달동네 후미진 곳에 있는 방 한 칸에서 살게 되었다.
옷장과 살림도구가 가득한 방 아랫목에는 사업 실패의 충격으로 쓰러진 아버지가 누워 계셨고,
어머니와 우리 네 형제는 비좁은 공간에서 이불 두 개로 그럭저럭 겨울을 났다.
하지만 여름이 되자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들었다.
사춘기였던 나의 학교 성적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반발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어머니는 처음으로 내 종아리를 때리고는 서럽게 우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는 한마디를 내뱉고 집을 뛰쳐 나가 버렸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내 방을 갖고 싶단 말예요.
책상도 없이 냄새 나는 방에서 어떻게 공부를 하냐구요."
막상 집을 나왔으나 갈 곳이 없었고,
어머니의 슬픈 얼굴이 자꾸 떠올라 결국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방문을 연 나는 낯설은 구깃구깃한 황토색 커튼이 방의 삼분의 일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커튼을 열어 본 순간 나는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커튼으로 가린 작은 공간에는 책상 대신 키 작은 밥상과 푹신한 방석 하나.
그리고 국어책, 수학책, 영어책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밥상 위에는 어머니의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니가 다시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면 이렇게라도 니 방을 만들어 주고 싶구나.
지금은 비록 방 같지도 않은 거지만 언젠가는 꼭 니 방을 만들어 주마.
미안하다 엄마가..."
내 방을 갖고 싶다는 막내의 투정에 엄마는 얼마나 가슴 아프셨을까.
나는 엄마의 그 편지를 지금까지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어머니의 그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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