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순교 순교자묘 聖地ㅡ이천 호법면 단내리ㅡ단내 순교 성지
단천리 사적지 혹은 단내 사적지는 한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교우촌이고, 김대건 신부님의 사목활동지이며, 1866년 병인박해 때 당시 광주 유수부인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정은 바오로(1804-1866년)와 정 베드로 순교자의 고향이자 유해가 묻혀 있는 묘소이다.
한국 교회 안에 처음으로 신부를 모셔온 순교자 윤유일의 묘가 모셔져 있는 어농리 사적지와 불과 몇 리 떨어져 있지 않은 단천리는 한국에 교회가 세워지던 1784년 이전부터 천주교가 들어와 있었던 유서깊은 교우촌이기도 하다. 또한 이천이 고향인 이문우 성인, 이 호영 성인, 이 아가다 성녀, 조증이 성녀와 조증이 성녀의 남편으로 이천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신 남이관 성인 등 5분의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성지이다.
단내성지에서 기념하는 순교자들은 대부분이 가족 순교자들이고, 또한 남달리 극진한 가족사랑을 보여준 분들이다. 그래서 단내 성지를 가정성화를 위해 순례하는 성가정 성지로 관리하고 있다. 정은 바오로의 집안은 동래 정씨로 그 조부 시절부터 실학 사상의 영향을 입고 일찍이 서학에 접했으며 이미 정은 바오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촌형인 정섭과 정옥이 신앙을 갖고 있었으며 순교의 모범을 보여 준 바 있다.
신유박해가 지나간 3년 후인 1804년에 태어난 정은 바오로 역시 천주교에 입교하고 그 어머니 허 데레사와 부인 홍 마리아 역시 입교했다. 그들이 살던 이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산 밑 마을'은 103위 순교 성인 중 한 사람인 이문우 요한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 단천리는 최초의 방인 신부인 성 김대건 신부가 머물렀던 은이 마을과는 12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기도 하다. 김 신부는 1846년 귀국한 이후 동산 밑 마을을 들러 이곳을 방문, 신자들에게 고해 성사를 준 후 바로 이 묘소 앞 오방이 산모퉁이를 지나 배마실 공소를 거쳐 새벽 어스름에 은이 공소로 돌아갔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의 회오리는 이 마을에도 휘몰아쳤고 포졸들은 정은 바오로를 붙잡기 위해 매봉에 숨어 망을 보았고 당시 63세의 노인이었던 그는 추운 겨울날 낮이면 마을 뒤 '검은 바위' 밑 굴속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내려와 잠을 자고 또 올라갔다. 그러나 결국 그는 포졸들에게 체포됐고 남한산성까지 가파른 산길로 끌려갔다.
이때 그의 종손자 정 베드로가 그의 체포 소식을 듣고 자진하여 천주교인임을 고백하고 함께 잡혀갔다고 한다. 한 달여를 남한산성에 갇혀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은 두 사람은 그 해 음력 12월 8일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를 덮어 숨이 막히게 해 죽이는 백지 사형으로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그들이 순교한 뒤 시체는 남한산성 동문 밖으로 시구문을 통해 던져졌는데 가족들이 몰래 그의 시신을 찾아 이곳에 안장했다. 그러나 종손자 정 베드로는 당시 함께 순교한 수많은 시신들 틈에 섞여 미처 찾아오지 못했다.
단내성지 위치도
▲사제관, 식당
▲성 요셉 상
▲성모 상
▲성당 사무실
▲십자가 화단
▲성가정 광장
단내 성지를 감싸고 있는 와룡산 계곡 하단부에 두개의 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아래의 큰 광장이 성가정 광장이다. 성가정 광장 중앙에는 성가정 성지인 단내 성지를 상징하는 성가정상이 건립되어있다. 성 가정상에서는 가정을 위한 기도, 부부의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자녀를 위한기도 등을 바치며 가정 성화의 은총을 구하게 된다.
▲성 가정상
▲성 가정상
▲五位 성인순교비
▲순교자 묘소, 정 베드로의 묘(좌), 정은 바오로의 묘(우)
단내 성지의 야외광장 우측면을 감싸고 있는 오방이산 끝자락에는 이곳에서 탄생하여 1866년 병인박 해 때 순교하신 정은 바오로와 정베드로 순교자의 묘소가 있다.
▲순교자 정 베드로의 묘 (? -1866)
정 베드로 순교자는 정 바오로 순교자의 종손자로서 단내에서 출생하셨다. 1866년 정 바오로 순교자가 체포되자, 감옥에서 병약한 할아버지를 도와 드리고 함께 순교할 것을 결심한다. 그래서 스스로 관청을 찾아가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체포되어, 정바오로 순교자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순교하셨다.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순교터의 흙을 채취해서 정 바오로 순교자의 묘 옆에 의묘(儀墓)를 조성해 놓았다.
기타 순교자
◆ 성 이문우(李文祐) 요한(1809-1840)
일명 '경천'으로도 불리는 이문우 요한은 경기도 이천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 양친을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했다. 독신생활을 원하였으나 양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순종으로 양어머니의 뜻에 따라 결혼했고, 몇 년 후 아내와 두 어린 자녀가 사망하자 주위에서의 재혼 권유를 거절하고 독신으로 살면서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는 한편 주교를 보좌하며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옥에 갇히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체포된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던 중 11월 11일 자신도 체포되었다. 이 때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고, 오히려 당황해 하는 포졸들을 재촉해서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과 형조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참아낸 끝에 사형을 선고받고,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했다.
◆ 성 이호영 베드로(1803-1838)
이호영은 경기도 이천(利川) 출신으로 신유박해 후 어머니와 과부가 된 누나 이소사(아가타)와 함께 입교했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세상을 떠나자 서울로 이사하여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으며 이 때문에 유방제(柳方濟) 신부로부터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l81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누나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비명 한마디 지르지 않고 참아내어 결국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이 때 결안(結案)의 사학죄인(邪學罪人)이라는 문구에 대해 천주교는 사학이 아니라 정도(正道)이며 거룩하고 참된 도(道)라 수결(手決)할 수가 없다고 버티자 포졸들이 강제로 수결시켰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4년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누나 이소사와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가 1838년 11월 25일(음력 10월 8일) 긴 옥살이 끝에 얻은 병과 옥고로 옥사(獄死)했다. 그때 그의 나이 36세였다. 성녀 이소사 아가타는 누나이다.
◆ 성녀 이소사 아가타(1784-1839)
이 아가타는 경기도 이천(利川)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했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 이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代洗)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다. 183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호영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어려운 형벌과 고문을 참아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1782-1839)
조증이(趙曾伊)는 경기도 이천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좋은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매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6세 때 남이관(세바스티아노)과 결혼했으나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 조 프란치스코와 시부모가 순교하게 되고 남편도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유배되자 이천의 친정으로 내려가 10여 년을 고생하며 살았다. 그후 30세 경 다시 상경하여 먼 친척이 되는 정하상을 도우며 선교사 영입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1832년 남편이 유배에서 풀려나자 남편과 함께 이듬해 입국한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돌보며 공소를 세워 교회와 교우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편을 이천으로 피신시킨 후 자신은 어린 딸과 함께 집을 지키고 있다가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남이관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형리들로부터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고, 형조에서도 가혹한 형벌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마침내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니 그때 나이 58세였다. 성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는 남편이다.
◆ 성 남이관(南履灌) 세바스티아노(1780-1839)
서울의 양반 교우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이관은 18세 때 교우인 조증이 바르바라와 결혼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함께 체포되었다. 아버지 남필용(南必容)은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귀양가 그곳에서 죽었고, 남이관은 경상도 단성(丹城)으로 귀양갔다가 30년만인 1832년 풀려 나와 처가인 이천(利川)에서 살았다. 그후 상경하여 처가가 정하상 바오로와 인척인 관계로 그의 신부 영입운동을 도와 1833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를 맞아들이게 했고, 그에게서 성세와 견진성사를 받은 후 회장으로 임명되어 열심히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남이관은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처가인 이천으로 내려가 숨었다. 그러나 9원 16일에 체포되어 서울 포청으로 압송되었다. 포청에서 간단한 신문을 받은 후 김제준과 함께 국사범으로 간주되어 의금부로 이송되어 여기에서 유진길, 정하상과 함께 신문을 받고, 다시 형조로 이송되어 거기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9월 26일 남이관은 8명의 교우와 함께 60세의 나이로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했다.
▲정은 바오로의 묘
▲정은 바오로의 묘 (1804-1866)
정은 바오로 순교자는 단내에서 1804년에 출생하셨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신자들의 지도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으며, 남한산성에서 백지사(白紙死)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하신 후 두 아들인 일동과 수동 형제가 시신을 단내성지로 모셔와 안장하였다.
▲순교자 광장
성가정 광장 위에는 이곳에서 사목활동을 하셨던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이 굽어보고 있는 순교자 광장이 있다. 순교자 광장에는 치옥석으로 제작된 돌제대를 중심으로 단아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야외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약 1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순교자 광장에서는 규모가 큰 행사때 미사가 봉헌된다.
▲성 김대건 상
▲성지 성당
▲성지 성당
▲성지 성당
▲성지 성당 내부
▲성지 성당 제대
▲성지 성당 제대
▲감실
▲김대건 성인 유해
▲성지 성당 정문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1처
▲십자가의 길 2처
▲십자가의 길 3처
▲십자가의 길 4처
▲십자가의 길 5처
▲십자가의 길 6처
▲십자가의 길 7처
▲십자가의 길 8처
▲십자가의 길 9처
▲십자가의 길 10처
▲십자가의 길 11처
▲십자가의 길 12처
▲십자가의 길 13처
▲십자가의 길 14처
◆십자가의 길 14 처 (The Via Dolorosa)
제1지점 :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은 곳.
제2지점 :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제3지점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 예수가 여인들을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제11지점 :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곳.
제12지점 :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한 곳.
제13지점 :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가 묻힌 곳
▲굴바위
검은 바위에서 와룡산 능선을 타고 30분을 걸으면 정바오로 순교자의 가족들이 가산을 몰수당한채 추방되어 피난생활을 하던 굴바위에 도착한다. 검은 바위에서 굴바위에 이르는 길은 굶주림과 추위와 두려움에 시달리며,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신앙을 충실히 지켰던 선조 신앙인들을 묵상하며 순례하도록 되어있다.
▲굴 바위
▲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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