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빛이 되어
요즘 우리 사회는 아주 어둡습니다. 국민 대부분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실망과 좌절, 허탈감에 빠져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바라지만, 그것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회복의 길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큰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결국은 불신의 심화라는 수렁 속에 자꾸만 빠져들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참으로 어둠을 밝히는 빛이 필요합니다.
빛은 어디서 옵니까?
언젠가 대신학교에서 알마(Alma)축제 미사를 봉헌했을 때의 일입니다. 성당에 입당할 때 제대 뒤에 걸린 큰 십자가가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역시 오늘 우리가 찾는 빛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교회는 이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세상 속에서 이 그리스도는 살아야 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살 때에 교회는 오늘의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난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소명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렇게까지 닮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 속에서 진리,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서 있습니까?
이기적인 세상 속에서 벗을 위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는 사랑에 살 수 있습니까? 이 사랑에 우리가 산다면 이것이 오늘을 밝히는 빛이요, 길이요, 생명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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