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예수의 사람

문성식 2022. 3. 3. 07:58


 
      예수의 사람 교회는 그리스도와 같이 성령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스도 체현(體現)의 연장이 교회입니다. 그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교회는 아직 참된 의미의 교회는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형제적 사랑으로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선교를 통하여 많은 신자를 양산해냈고 또 내고 있지만 참으로 형제적 사랑에 사는 신자, 그만큼 마음이 열린 신자를 얼마나 만들어 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얼마 전에 제가 교회 신자들의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이야기한 일이 있습니다. 문제는 '누가 신자입니까?' 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대체로 세례를 받은 사람, 성당에 잘 다니는 사람, 특히 주일 미사 참례를 잘하는 사람, 아침·저녁 기도를 잘 드리는 사람, 교무금과 연보(捐補)를 잘 내는 사람과 같은 경우를 신자로 봅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자요, 어쩌면 훌륭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기다 더 욕심을 낸다면, 신자 재교육 운동이나 피정에 자주 참여하고, 이런 일에 적극적인 사람, 그리고 자기 소속 본당에서 사목위원, 반장으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 그 외에 교리도 잘 알고, 성격도 잘 알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신자라고 간주할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분들이 신자이고 또한 훌륭한 신자라는 데 동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이와 같이 통념적으로 세례 받고 교회에 잘 나가고 주일을 잘 지키고, 교회의 규율을 잘 지키고, 성경, 교리를 잘 알고, 헌금을 잘 내고 등등을 좋은 신자 규범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예수 시대의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과 같은 개념으로 누가 신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있지 않나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 때는 할례를 받은자, 안식일을 비롯한 율법을 잘 알고 지키는 자, 회당에 성금을 잘하는 자 등이 훌륭한 신자였습니다. 이들은 바로 이렇게 스스로 훌륭하다고 자부하였기에 선민의식에 젖어 있었고, 또 하느님 나라의 시민 자격을 지녔다고 자신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좋은 신자, 열심한 신자들도 같은 선민의식과 자신감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교역자들인 우리 자신이 이같이 자부하고 또한 자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관념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태도를 취하였습니까? 그는 어떤 사람이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늘나라의 시민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닮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중에서도 가난한 이, 죄인, 창녀, 간음한 여인 등 보잘것없고, 버림받고, 억눌린 이들을 사랑할 줄 알 뿐 아니라, 그들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원수까지도 용서해 줄 줄 알고, 마침내는 예수와 같이 진리를 위해 몸 바치고 이웃을 위해 모든 이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바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처럼, 참된 형제애에 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을 빌리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필립 2,5)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의 사람, 곧 참된 의미의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결국 우리는 사랑을 살 때에 참으로 신자입니다. 그리고 형제적 사랑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성령의 일하심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의 유일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할 줄 알고, 그 사랑으로 모든 이를,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고, 억눌린 이들을 우리가 가슴에 품을 줄 알 때입니다. 그들과 고통을 나눌 줄 알 때입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의 전인적 해방을 위해서 헌신할 때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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