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그리스도인의 삶.
▶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제 3 장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 제1절 도덕률.
제 3 장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1949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 입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하여 주어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 2,12-13).
제1절 도덕률.
1950 도덕률은 하느님의 지혜의 작품이다. 성서적 의미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그분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도덕률의 규범은 엄격하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바는 감미롭다.
1951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이다. 도덕률은 인간들 사이에, 그들의 선익을 위해 또 그들의 목적에 비추어, 창조주의 권능과 지혜와 선으로 세워진 합리적 질서를 전제로 한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영원법’에서 비롯한다.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성은 선언하고 확증한다. “이성이 내리는 이러한 규정을 바로 법이라 한다.”1)
살아 있는 존재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에게서 법을 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고 식별할 능력이 있는 이성을 가진 동물인 인간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분께 기꺼이 복종하면서 그의 자유와 이성을 사용해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해야 합니다.2)
1952 도덕률은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이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모든 법의 근원이며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법, 자연법, 옛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그리고 국법과 교회법 등이 그러하다.
1953 도덕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그분은 법의 마침이시다.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십니다”(로마 10,4).
I. 자연법.
1954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게 하는 타고난 도덕의식의 표현이다.
자연법은 모든 인간 개개인의 마음에 적혀 있고 새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을 행하도록 명하고 죄짓는 것을 금하는 인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인간 이성의 이러한 명령도, 그것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자유가 복종해야 하는 더 높은 이성의 목소리이자 또한 해석자가 아니라면, 법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3)
1955 하느님 법[神法]인 자연법은4)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자연법은 도덕 생활을 규제하는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규범들을 표명하고 있다. 자연법의 주축은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열망과 복종이며, 타인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이다. 자연법의 주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다. 이 법을 자연법(lex naturalis)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비이성적인 존재들의 본성과 연관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법을 규정하는 이성이 인간 본성(natura)에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이 ‘진리’라고 하는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지 않고, 도대체 다른 어디에 씌어 있겠는가- 모든 정의로운 법은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으며, 거기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건너간다. 법이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인장(印章)이 마치 반지에서 밀랍으로 건너가는 것 같아도 그대로 반지에 남아 있듯이 법은 인간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5)
자연법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지성의 빛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해서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인식한다. 이 빛, 곧 이 법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6)
1956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며, 각자의 이성으로 확증된다. 자연법은 그 규정들에서 보편적이며, 그 권위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자연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된다.
참된 법이 있으니, 그 법은 올바른 이성이다. 이 법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이 법은 불변하고 영원하며, 그 규정은 의무감을 촉구하고, 그 금지령은 과오를 방지한다. ……이 법은 변질시켜서도 아니 되고, 그 일부를 폐지해서도 아니 된다. 이 법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다.7)
1957 자연법은 매우 다양하게 적용된다. 자연법은 장소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생활 조건들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가 다양함에도 자연법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피할 수 없는 차이점들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 원칙들을 제시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1958 자연법은 불변하고 역사의 변동을 거치면서도 그대로이다.8) 사상과 풍속의 흐름 속에서도 존속하며, 그 사상과 풍속의 진보를 뒷받침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한 채로 남아 있다. 설령 자연법의 원칙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을 파기할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릴 수도 없다. 자연법은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 안에서 언제나 되살아난다.
주님, 당신의 법이, 죄악으로도 말살할 수 없는 인간 마음에 쓰인 법이, 도둑질을 처벌한다는 것은 틀림없사옵니다.9)
1959 창조주의 매우 훌륭한 작품인 자연법은,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도덕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된다. 또 자연법은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된다. 결국, 자연법은 국법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국법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 국법은 자연법의 원칙들을 살펴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자연법에 실질적이거나 법률적인 요소들을 더하기도 한다.
1960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규범들을 분명하게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어렵지 않게,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을 가지고, 오류의 혼동 없이”10)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죄인인 인간에게 은총과 계시가 필요하다. 자연법은 성령의 활동에 따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토대를 계시된 법과 은총에 제공해 준다.
II. 옛 법.
1961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당신의 법을 계시해 주셨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강생을 준비하셨다. 모세의 율법은 이성으로써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는 여러 진리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진리들은 구원의 계약 안에서 공포되고 권위있게 확인되었다.
1962 옛 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이다. 그 윤리적 명령들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십계명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소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곧 그 계명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하고 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길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을 악에서 보호하려고 모든 사람의 양심에 하느님께서 주신 빛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서 읽지 못하던 그것을 율법의 돌 판에 새겨 주셨습니다.11)
1963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거룩하고,12) 영적이며,13) 좋은14) 율법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후견인과 같이15)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는 못했다. 율법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예속의 법이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율법은 특별히 사람의 마음속에서 “욕망의 법”을16) 형성하고 있는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반면에 율법은 여전히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이다. 율법은 선택된 민족과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하고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율법은 하느님 말씀으로서 영원히 지속되는 가르침을 제시해 준다.
1964 옛 법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율법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교육이며 예언입니다.”17)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실 해방의 업적을 예언하고 예고해 주었으며, 성령에 따르는 삶을 표현하기 위한 표상들과 ‘예형’과 상징들을 신약에 제공해 주었다. 끝으로, 율법은 지혜서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으로 보충되어, 새 계약과 하늘 나라를 지향하게 된다.
구약의 체제 아래서도, 사랑과 성령의 은총으로 가득 찬 사람들,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이고 영원한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는 사람들이……있었다. 그러한 갈망 때문에 그들은 새 법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약 아래서도 역시 새 법의 완전성과는 아직 거리가 먼 육적인 사람들, 벌에 대한 두려움과 현세에 관한 약속들을 들려줌으로써 그 도덕적인 행실을 북돋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하여간 옛 법은 사랑을 명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 주신”(로마 5,5)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했다.18)
III. 새 법, 곧 복음의 법.
1965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이거나 또는 계시된 법인 하느님의 법을 이 세상에서 완성한 것이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이며, 특별히 산상 설교에 표현되어 있다. 복음의 법은 또한 성령의 업적이니, 성령을 통하여 이 법이 사랑의 내적인 법이 된다. “보라, 그날이 온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히브 8,8.10).19)
1966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신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총이다. 이 법은 사랑을 통해 작용하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우리 주님의 산상 설교를 이용하며, 이를 행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려고 성사들을 활용한다.
마태오 성인의 복음에서 읽게 되는, 우리 주님께서 설파하신 산상 설교를 경건한 마음과 통찰력으로 묵상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대헌장’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설교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도하기에 적합한 규범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20)
1967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며,21)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 참행복 안에서 복음의 법은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한다. 약속은 한층 드높여져 하느님 나라를 향한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의 법은 이러한 새 희망을 신앙으로 받아들일 마음을 지닌 사람들, 곧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를 향한 놀라운 길을 제시한다.
1968 복음의 법은 율법의 계명들을 완성한다. 주님의 산상 설교는 옛 법의 윤리적 규정들을 폐지하거나 과소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그 규정 안에 감추어져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요구들을 분출하게 한다. 산상 설교는 옛 법의 신적이며 인간적인 진리를 모두 드러낸다. 산상 설교는 새로운 외적 규정을 첨가하지 않지만, 행동의 근원인 마음을 개선하도록 인간을 이끈다. 마음은 인간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중에서 선택하고,22)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심화되며, 이러한 덕들과 더불어 다른 덕성들이 다져지는 본래의 자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여23) 인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을 본받게 하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24)
1969 새 법은 자선, 기도, 단식 등의 종교적 행위들을 실천하게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행위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25) 향하게 하는 행위들인 것이다. 새 법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이다.26)
1970 복음의 법은 또한 ‘두 길’27) 가운데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것을28) 명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29) 복음의 법은 이 황금률 안에 요약되어 있다.
복음의 법 전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30) 예수님의 새 계명에31) 들어 있다.
1971 주님의 산상 설교에 사도들이 가르친 윤리적 교리 교육을 합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로마 12─15장, 1코린 12─13장, 콜로 3─4장, 에페 4─5장 등이다. 이러한 교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권위로써 전달하는 것인데, 특별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하여 성령의 주요한 선물인 사랑으로 힘을 얻는 덕들에 관한 설명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로마 12,9-13). 이러한 교리 교육은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비추어 양심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32)
1972 새 법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른다. 또한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도33) 하는데, 이는 새 법이 의식적(儀式的)이고 법률 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를 요구하던 옛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사랑의 자극을 받아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마침내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는 종”의 신분에서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시어”(요한 15,15) 그리스도의 벗이라는 신분으로, 나아가 상속을 받을 아들의 신분으로34) 우리를 드높여 주기 때문이다.
1973 새 법에는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의 계명과 복음적 권고의 전통적 구별은 그리스도인 삶의 완성인 사랑과 관련지어서 정립된다. 계명은 사랑과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며, 권고는 사랑에 어긋나지는 않아도 사랑을 발전시키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다.35)
1974 복음적 권고는, 더 많이 베풀어 주지 못하여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생생하고 충만한 사랑을 드러낸다. 복음적 권고는 사랑의 열정을 증언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민첩한 자세를 갖추게 한다. 새 법의 완전성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으로써 이루어져 있다. 더 직접적인 길과 더 용이한 방법을 깨닫게 하는 복음적 권고들은 각 사람이 자기 소명에 따라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나 복음의 권고들을 모두 지키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다만 사랑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각 개인과 때와 기회와 능력의 다양성에 따라, 당사자에게 적합한 권고만이 지켜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덕과 계명과 권고, 한마디로 모든 법과 그리스도인다운 행위의 여왕이 되는 사랑 그 자체가 그 모든 것에 자리와 순위, 때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36)
간추림.
1975 성경에 따르면, 율법은 사람들에게, 약속된 행복에 인도하는 길을 제시하고 악의 길을 금하는 하느님의 부성적 가르침이다.
1976 “법은 한 공동체를 맡은 사람이 반포한, 공동선을 지향하는 이성의 명령이다.”37)
1977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마침이시다.38)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치시고 베풀어 주신다.
1978 창조주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연법에 따라서 하느님의 지혜와 선의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격의 존엄성을 나타내며,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를 이룬다.
1979 자연법은 불변하며, 역사 속에서 존속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하다. 자연법은 도덕규범 확립의 기초이며 국법의 필수적 토대이다.
1980 옛 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이다. 옛 법의 윤리적인 명령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1981 모세 율법에는 인간이 이성으로 자연히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진리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 진리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계시해 주셨다.
1982 옛 법은 복음을 위한 일종의 준비이다.
1983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받은 성령의 은총으로서, 이 은총은 사랑을 통해 작용한다. 새 법은 주님의 산상 설교 안에 표현되어 있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 성사들을 활용한다.
1984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 곧 하늘 나라의 참행복으로 그 약속들을 성취하며, 인간 행위의 근원인 마음을 새롭게 해 줌으로써 그 계명들을 완성한다.
1985 새 법은 사랑의 법이며, 은총의 법이고, 자유의 법이다.
1986 새 법은 그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한다. “교회의 성덕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서 복음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제시하신 여러 가지 권고로써 증진된다.”39)
▶ 제 1 부 인간의 소명: 성령 안의 삶.
▶ 제 3 장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 제1절 도덕률.
제 3 장 하느님의 구원: 법과 은총.
1949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 입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하여 주어진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 2,12-13).
제1절 도덕률.
1950 도덕률은 하느님의 지혜의 작품이다. 성서적 의미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그분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도덕률의 규범은 엄격하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바는 감미롭다.1951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이다. 도덕률은 인간들 사이에, 그들의 선익을 위해 또 그들의 목적에 비추어, 창조주의 권능과 지혜와 선으로 세워진 합리적 질서를 전제로 한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영원법’에서 비롯한다.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성은 선언하고 확증한다. “이성이 내리는 이러한 규정을 바로 법이라 한다.”1)
살아 있는 존재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에게서 법을 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고 식별할 능력이 있는 이성을 가진 동물인 인간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분께 기꺼이 복종하면서 그의 자유와 이성을 사용해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해야 합니다.2)
1952 도덕률은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이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모든 법의 근원이며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법, 자연법, 옛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그리고 국법과 교회법 등이 그러하다.
1953 도덕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그분은 법의 마침이시다.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십니다”(로마 10,4).
I. 자연법.
1954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게 하는 타고난 도덕의식의 표현이다.자연법은 모든 인간 개개인의 마음에 적혀 있고 새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을 행하도록 명하고 죄짓는 것을 금하는 인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인간 이성의 이러한 명령도, 그것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자유가 복종해야 하는 더 높은 이성의 목소리이자 또한 해석자가 아니라면, 법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3)
1955 하느님 법[神法]인 자연법은4)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자연법은 도덕 생활을 규제하는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규범들을 표명하고 있다. 자연법의 주축은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열망과 복종이며, 타인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이다. 자연법의 주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다. 이 법을 자연법(lex naturalis)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비이성적인 존재들의 본성과 연관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법을 규정하는 이성이 인간 본성(natura)에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이 ‘진리’라고 하는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지 않고, 도대체 다른 어디에 씌어 있겠는가- 모든 정의로운 법은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으며, 거기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건너간다. 법이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인장(印章)이 마치 반지에서 밀랍으로 건너가는 것 같아도 그대로 반지에 남아 있듯이 법은 인간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5)
자연법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지성의 빛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해서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인식한다. 이 빛, 곧 이 법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6)
1956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며, 각자의 이성으로 확증된다. 자연법은 그 규정들에서 보편적이며, 그 권위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자연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된다.
참된 법이 있으니, 그 법은 올바른 이성이다. 이 법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이 법은 불변하고 영원하며, 그 규정은 의무감을 촉구하고, 그 금지령은 과오를 방지한다. ……이 법은 변질시켜서도 아니 되고, 그 일부를 폐지해서도 아니 된다. 이 법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다.7)
1957 자연법은 매우 다양하게 적용된다. 자연법은 장소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생활 조건들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가 다양함에도 자연법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피할 수 없는 차이점들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 원칙들을 제시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1958 자연법은 불변하고 역사의 변동을 거치면서도 그대로이다.8) 사상과 풍속의 흐름 속에서도 존속하며, 그 사상과 풍속의 진보를 뒷받침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한 채로 남아 있다. 설령 자연법의 원칙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을 파기할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릴 수도 없다. 자연법은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 안에서 언제나 되살아난다.
주님, 당신의 법이, 죄악으로도 말살할 수 없는 인간 마음에 쓰인 법이, 도둑질을 처벌한다는 것은 틀림없사옵니다.9)
1959 창조주의 매우 훌륭한 작품인 자연법은,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도덕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된다. 또 자연법은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된다. 결국, 자연법은 국법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국법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 국법은 자연법의 원칙들을 살펴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자연법에 실질적이거나 법률적인 요소들을 더하기도 한다.
1960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규범들을 분명하게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어렵지 않게,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을 가지고, 오류의 혼동 없이”10)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죄인인 인간에게 은총과 계시가 필요하다. 자연법은 성령의 활동에 따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토대를 계시된 법과 은총에 제공해 준다.
II. 옛 법.
1961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당신의 법을 계시해 주셨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강생을 준비하셨다. 모세의 율법은 이성으로써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는 여러 진리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진리들은 구원의 계약 안에서 공포되고 권위있게 확인되었다.1962 옛 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이다. 그 윤리적 명령들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십계명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소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곧 그 계명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하고 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길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을 악에서 보호하려고 모든 사람의 양심에 하느님께서 주신 빛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서 읽지 못하던 그것을 율법의 돌 판에 새겨 주셨습니다.11)
1963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거룩하고,12) 영적이며,13) 좋은14) 율법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후견인과 같이15)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는 못했다. 율법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예속의 법이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율법은 특별히 사람의 마음속에서 “욕망의 법”을16) 형성하고 있는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반면에 율법은 여전히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이다. 율법은 선택된 민족과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하고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율법은 하느님 말씀으로서 영원히 지속되는 가르침을 제시해 준다.
1964 옛 법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율법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교육이며 예언입니다.”17)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실 해방의 업적을 예언하고 예고해 주었으며, 성령에 따르는 삶을 표현하기 위한 표상들과 ‘예형’과 상징들을 신약에 제공해 주었다. 끝으로, 율법은 지혜서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으로 보충되어, 새 계약과 하늘 나라를 지향하게 된다.
구약의 체제 아래서도, 사랑과 성령의 은총으로 가득 찬 사람들,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이고 영원한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는 사람들이……있었다. 그러한 갈망 때문에 그들은 새 법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약 아래서도 역시 새 법의 완전성과는 아직 거리가 먼 육적인 사람들, 벌에 대한 두려움과 현세에 관한 약속들을 들려줌으로써 그 도덕적인 행실을 북돋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하여간 옛 법은 사랑을 명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 주신”(로마 5,5)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했다.18)
III. 새 법, 곧 복음의 법.
1965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이거나 또는 계시된 법인 하느님의 법을 이 세상에서 완성한 것이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이며, 특별히 산상 설교에 표현되어 있다. 복음의 법은 또한 성령의 업적이니, 성령을 통하여 이 법이 사랑의 내적인 법이 된다. “보라, 그날이 온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히브 8,8.10).19)1966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신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총이다. 이 법은 사랑을 통해 작용하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우리 주님의 산상 설교를 이용하며, 이를 행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려고 성사들을 활용한다.
마태오 성인의 복음에서 읽게 되는, 우리 주님께서 설파하신 산상 설교를 경건한 마음과 통찰력으로 묵상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대헌장’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설교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도하기에 적합한 규범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20)
1967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며,21)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 참행복 안에서 복음의 법은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한다. 약속은 한층 드높여져 하느님 나라를 향한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의 법은 이러한 새 희망을 신앙으로 받아들일 마음을 지닌 사람들, 곧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를 향한 놀라운 길을 제시한다.
1968 복음의 법은 율법의 계명들을 완성한다. 주님의 산상 설교는 옛 법의 윤리적 규정들을 폐지하거나 과소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그 규정 안에 감추어져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요구들을 분출하게 한다. 산상 설교는 옛 법의 신적이며 인간적인 진리를 모두 드러낸다. 산상 설교는 새로운 외적 규정을 첨가하지 않지만, 행동의 근원인 마음을 개선하도록 인간을 이끈다. 마음은 인간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중에서 선택하고,22)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심화되며, 이러한 덕들과 더불어 다른 덕성들이 다져지는 본래의 자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여23) 인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을 본받게 하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24)
1969 새 법은 자선, 기도, 단식 등의 종교적 행위들을 실천하게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행위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25) 향하게 하는 행위들인 것이다. 새 법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이다.26)
1970 복음의 법은 또한 ‘두 길’27) 가운데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것을28) 명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29) 복음의 법은 이 황금률 안에 요약되어 있다.
복음의 법 전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30) 예수님의 새 계명에31) 들어 있다.
1971 주님의 산상 설교에 사도들이 가르친 윤리적 교리 교육을 합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로마 12─15장, 1코린 12─13장, 콜로 3─4장, 에페 4─5장 등이다. 이러한 교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권위로써 전달하는 것인데, 특별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하여 성령의 주요한 선물인 사랑으로 힘을 얻는 덕들에 관한 설명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로마 12,9-13). 이러한 교리 교육은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비추어 양심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32)
1972 새 법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른다. 또한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도33) 하는데, 이는 새 법이 의식적(儀式的)이고 법률 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를 요구하던 옛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사랑의 자극을 받아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마침내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는 종”의 신분에서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시어”(요한 15,15) 그리스도의 벗이라는 신분으로, 나아가 상속을 받을 아들의 신분으로34) 우리를 드높여 주기 때문이다.
1973 새 법에는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의 계명과 복음적 권고의 전통적 구별은 그리스도인 삶의 완성인 사랑과 관련지어서 정립된다. 계명은 사랑과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며, 권고는 사랑에 어긋나지는 않아도 사랑을 발전시키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다.35)
1974 복음적 권고는, 더 많이 베풀어 주지 못하여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생생하고 충만한 사랑을 드러낸다. 복음적 권고는 사랑의 열정을 증언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민첩한 자세를 갖추게 한다. 새 법의 완전성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으로써 이루어져 있다. 더 직접적인 길과 더 용이한 방법을 깨닫게 하는 복음적 권고들은 각 사람이 자기 소명에 따라 실천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누구나 복음의 권고들을 모두 지키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다만 사랑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각 개인과 때와 기회와 능력의 다양성에 따라, 당사자에게 적합한 권고만이 지켜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덕과 계명과 권고, 한마디로 모든 법과 그리스도인다운 행위의 여왕이 되는 사랑 그 자체가 그 모든 것에 자리와 순위, 때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36)
간추림.
1975 성경에 따르면, 율법은 사람들에게, 약속된 행복에 인도하는 길을 제시하고 악의 길을 금하는 하느님의 부성적 가르침이다.1976 “법은 한 공동체를 맡은 사람이 반포한, 공동선을 지향하는 이성의 명령이다.”37)
1977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마침이시다.38)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치시고 베풀어 주신다.
1978 창조주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연법에 따라서 하느님의 지혜와 선의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격의 존엄성을 나타내며,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를 이룬다.
1979 자연법은 불변하며, 역사 속에서 존속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하다. 자연법은 도덕규범 확립의 기초이며 국법의 필수적 토대이다.
1980 옛 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이다. 옛 법의 윤리적인 명령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1981 모세 율법에는 인간이 이성으로 자연히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진리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 진리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계시해 주셨다.
1982 옛 법은 복음을 위한 일종의 준비이다.
1983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받은 성령의 은총으로서, 이 은총은 사랑을 통해 작용한다. 새 법은 주님의 산상 설교 안에 표현되어 있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 성사들을 활용한다.
1984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 곧 하늘 나라의 참행복으로 그 약속들을 성취하며, 인간 행위의 근원인 마음을 새롭게 해 줌으로써 그 계명들을 완성한다.
1985 새 법은 사랑의 법이며, 은총의 법이고, 자유의 법이다.
1986 새 법은 그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한다. “교회의 성덕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서 복음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제시하신 여러 가지 권고로써 증진된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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