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하나님의 이름 20.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문성식 2021. 3. 17. 23:42


 

      하나님의 이름

 


20.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모든 것이 어둡게 느껴지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견딜 수 없이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어쩌면 하나님에게조차 잊혀졌다고 느껴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에서 어떻게 헤어 나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삼마”를 앎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70년간 있어야 했습니다.(렘 29:10) 만일 하나님이 거기 계셨더라면 그들은 주님의 집에서 기뻐하는 문지기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스겔을 통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서 어떻게 떠났는지를 들었습니다.(겔 10:18-19;11:22-24) 그들은 그것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70년간의 포로생활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행음을 인하여 심판하셨습니다. 애굽의 포로 생활로부터 바벨론의 포로생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교훈 중에서 그분에 대한 또 다른 진리가 있었는데 곧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절에 나오는 여호와 삼마는 예루살렘에 대해 사용된 것입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삼마(Shammh)라는 단어는 단순히 ‘There’(거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말과 결합되었고 성령께서 그것을 한 이름으로 부르시기 때문에 독특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인격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했다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바로 거기 계시다는 것을 확신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포로로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격려가 되는 말씀일까요?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 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여호와는 거기 계십니다. 여러분의 장래와 여러분의 소망이 되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 열중하십시오.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히기 전에, 세상에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에스겔서에 대한 약간의 배경과, 하나님이 여호와 삼마, 즉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라는 것으로 계시되는 주위 환경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시절에 관한 책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향해 쓰여진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이 아직 망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루살렘이 아직 멸망하기 전에 세 번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첫 번째 침공 때 포로가 되었고 에스겔은 두 번째 침공 때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를 읽을 때, 그가 예언했던 초기에는 예루살렘이 아직 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루살렘이 망하도록 내버려 두실 거라는 사실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질투하는’의 뜻을 가진 ‘콴나’(Qanna)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을 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6절, 34:12-17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때에 질투하십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1-6)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출 34:12-17) 


에스겔의 시대 이전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임재를 나타내시면서 그의 백성들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의 임재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를 정말로 행하시리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떠나시고 하나님의 시온성인 예루살렘이 믿지 않는 바빌로니아인들에게 포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의 안뜰에 나타나신 여호와 삼마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구절을 읽을 때, 하나님을 슬프게 만든 것에 밑줄을 긋고 그것이 무엇인지 써 보십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십시오. (겔 8:3-6, 17-18. 겔 10:3-4,18,19, 겔 11:22-23)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셨다 할지라도, 그는 여호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돌아오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11:22-24절에서 예루살렘을 떠날 준비를 하실 때, 에스겔은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겔 11:13)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응답을 들어 보십시오. 

에스겔 11:16-19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것이 얼마만큼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9-10)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다시 오실 것과 예루살렘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 즉 “주님께서 거기 계십니다.”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오시면 에스겔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그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1과에서 하나님을 묘사해 보라고 요청했던 때를 상기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과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마지막 과제는 여러분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한 번 더 써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1장에서 쓴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주께서 그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여러분이 배운 것들을 유지시키고 그대로 실행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자꾸 자꾸 반복해서 부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여러분이 그분께 온전하게 예배드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하나님에 대한 이름들을 공부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누구였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엄밀하게 말해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칭호라기보다는 성의 이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모습, 그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으로, 최소한 대중적 용어로 볼 때,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신약 성경에 나온 이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임마누엘은 예수님께 붙여진 이름이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드러내는 자로 우리를 지으셨음을 기억하게 해준다.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